《그림자 기사와 마법사의 계약》, 로맨스 판타지

2025. 9. 11. 09:19나의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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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게 깔린 밤, 그림자 성의 거대한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 문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은 단 한 명의 방문자를 환영하는 듯했다. 은 낡은 망토를 두른 채 거대한 성의 복도를 걸었다. 그녀의 걸음은 무겁고 조심스러웠지만, 그 속에는 결코 꺾이지 않을 강인함이 숨어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이 성의 주인이자 잔혹한 마법사로 알려진 케이를 만나는 것이었다.

엘이 성에 온 이유는 명확했다. 고향 마을을 휩쓴 원인 모를 역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소문으로는 케이의 마법만이 그 역병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그녀에겐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촛불 하나가 희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서재에 도착했다. 웅장한 책장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그의 은발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턱선이 돋보였다. 바로 케이였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죽으러 온 건가, 아니면 무언가를 구걸하러 온 건가?"

목소리는 차갑고 서늘했지만,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엘은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존경하는 마법사님, 제 고향은 멸망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부디, 저희를 구원할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케이의 차가운 시선이 엘에게 향했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검은 밤과 같았지만, 그 속에서 잠시 흔들리는 빛을 엘은 놓치지 않았다.

"구걸하는 자들은 많았지. 하지만 그들은 늘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려 했어. 너는 무엇이 다르지?"

엘은 조용히 망토를 벗었다. 드러난 그녀의 목에는 역병의 징표인 붉은 반점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저 역시 역병에 걸렸습니다. 제가 구하려는 것은 제 자신의 삶이 아니라, 제 마을 사람들의 삶입니다."

케이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엘을 완전히 뒤덮었고, 엘은 숨을 멈췄다. 그녀는 두려웠지만, 그에게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재미있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남을 구하려 하다니. 계약을 제안하겠다. 나는 역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대신 너는 내게 평생을 봉사해야 한다. 내 그림자로 살아야 해. 나의 모든 명령에 복종하고, 나의 비밀을 지키며,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엘은 잠시 고민했다. 평생을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유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는 이미 잿더미가 되어버린 마을과 희미해져 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케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차갑고도 아름다웠다.

"좋아. 계약은 성립되었다. , 이제 넌 나의 것이야."

케이의 손이 엘의 이마에 닿았다. 순간, 푸른빛이 번쩍이며 둘 사이를 감쌌다. 엘의 몸에 있던 역병의 징표가 사라졌고, 동시에 그녀의 심장에는 차가운 마법의 낙인이 새겨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케이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이제부터 넌 이 성의 그림자 기사다. 내가 널 부를 때까지, 넌 성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지내야 한다."

엘은 케이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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