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락에서 피어난 검혼(劍魂) - 비운의 천재, 류진의 회귀록

2025. 11. 28. 22:12나의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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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혈하(血河)를 건너온 그림자

"너는 결국 이 세상의 이단아로 남을 것이다. 네 검은 빛이 아닌 어둠을 택했으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이었다. 류진(柳眞). 강호에서 '멸혼검(滅魂劍)'이라 불리며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그는, 지금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향한 비난, 배신, 그리고 마지막에 터져 나온 절망적인 포효. 피가 강물을 이루었고, 친우들의 시신이 발밑에 뒹굴었다.

류진은 자신의 검 '패혼(破魂)'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목부터 팔 전체가 산산이 부서진 듯한 고통이 몰려왔지만, 이미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많은 정파 무림인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증오와 광기로 일그러져 있었다.

"류진! 네놈의 잔학무도함은 오늘로서 끝이다! 네가 흡수한 마도(魔道)의 힘은 결국 너를 파멸로 이끌었구나!"

정파의 맹주, '청명검' 서문해가 굳은 얼굴로 외쳤다. 류진은 피 섞인 침을 뱉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 마도? 내가 그 더러운 피를 뒤집어쓰고 싸운 것은... 너희들의 위선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 멍청한 것들아. 진정한 재앙이 무엇인지 너희는 아직 모른다!"

그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3년 전, 강호 전체를 뒤흔든 '묵룡교(墨龍敎)'의 재앙. 그들의 음모를 막기 위해 류진은 모두가 꺼리는 금기(禁忌)의 무공을 익혔고, 그 과정에서 그의 몸과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되었다. 그는 묵룡교의 수장, '묵령(墨靈)'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돌아온 것은 영웅의 칭호가 아닌, 이단아와 마인(魔人)이라는 낙인이었다. 정파의 수뇌부는 그의 강력한 힘을 두려워했고, 그를 이용해 묵룡교를 처리한 후, 잔인하게 토사구팽을 결정했다.

서문해의 검이 섬광을 일으키며 류진의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 류진은 피할 수 없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그의 온몸의 기력은 이미 소진된 상태였고, 더 이상 싸울 이유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아... 나의 삶은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는가. 만약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위선과 배신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검이 몸을 꿰뚫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류진의 정신은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검을 부수기 위해 달려드는 정파 무인들의 비열한 미소였다.


1장: 열두 살, 다시 주어진 기회

차가운 아침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습기 찬 흙냄새와 풀 내음. 익숙하지만 잊고 지낸 감각들이었다.

류진은 경련과 함께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익숙한 침상이 아니었다. 낡았지만 깨끗한, 자신이 어린 시절 묵었던 묵가(墨家) 객잔의 다락방이었다.

'여... 여기가 어디지?'

온몸을 짓누르던 부상과 고통은 사라지고, 대신 어린아이의 몸 특유의 어색하고 가벼운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작고 마디가 덜 여문 손. 손목에는 피를 흘려 얻었던 흉터나, 금기의 무공 수련으로 인한 기이한 문양도 없었다.

놀라움과 혼란 속에서, 그는 방 한쪽에 걸린 구리 거울을 찾아 몸을 일으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열두 살, 아직 무공을 제대로 배우기 전의 어리고 앳된 소년이었다.

류진은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묵룡교의 재앙이 시작되기 15년 전. 그가 묵가 객잔의 하인으로 일하며 무공의 기초를 막 다지기 시작했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회귀(回歸)... 시간이 되돌아온 것인가? 내가 패혼검의 마지막 힘으로 염원했던 것이 이루어진 건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생생한 통증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절망적인 죽음을 겪고, 삶의 기로로 되돌아왔다.

기억 속의 모든 것이 명확했다. 멸혼검 류진으로서 겪었던 30년의 삶. 배신당했던 순간들. 그를 파멸로 이끈 모든 잘못된 선택들. 이 모든 것이 생생한 교훈으로 그의 어린 정신 속에 박혀 있었다.

류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좋다. 하늘이 내게 다시 기회를 주셨다면... 이번 생은 결코 지난날의 어리석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 위선적인 정파의 더러운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강해져서, 나를 배신하고 조롱했던 모든 자들에게 철저하게 복수할 것이다!'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어린 소년의 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생사를 경험한 노련한 검객의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

첫 번째 목표는 명확했다. 지난 생에서 그를 가장 파멸적으로 이끌었던 '금기의 무공'을 다시 수련하는 대신, 더욱 근본적이고 완벽한 무공 체계를 다지는 것. 그리고 지난 생에서 놓쳤던, 묵룡교의 음모를 미리 파헤치고 그들의 성장을 막는 것이었다.

그때, 다락방 아래층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꼬마! 밥은 다 됐냐? 아침부터 배가 고파 죽겠네!"

묵가 객잔을 운영하는 묵영감의 거친 목소리였다. 류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제 그는 다시 이 비루한 객잔의 하인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했다.


2장: 검의 근본을 다시 세우다

류진은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완벽히 숨긴 채, 겉으로는 어리숙한 객잔의 소년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천하제일 검객의 지식과 경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기초'를 다지는 일이었다. 지난 생의 류진은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너무 빠르게 강해지는 것에만 몰두해 기초를 소홀히 했다. 특히, 그가 익혔던 '멸혼검법'은 빠른 성장을 대가로 내공의 근본을 훼손하는 단점이 있었다.

'강함의 본질은 무너짐 없는 근본에 있다. 지난 생의 나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힘은 결국 모래성과 같다.'

그는 객잔의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잠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새벽녘, 모두가 잠든 시간에 객잔 뒤편의 낡은 창고에서 류진은 자신만의 수련을 시작했다.

그가 익히기 시작한 무공은 '무명공(無名功)'이었다. 멸혼검 류진이 되기 전, 그가 우연히 얻었지만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버려두었던, 이름 없는 행공법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느리고 효율이 떨어져 보여서 외면했지만, 회귀한 지금, 그는 이 무명공이 얼마나 위대한 무공인지 깨달았다.

무명공은 내공을 축적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으나, 축적된 내공을 극도로 순수하고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흙탕물 대신 맑은 샘물을 채우는 것과 같았다.

류진은 묵영감에게 버려진 낡은 목검을 얻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검술 자세, '정(正)'의 자세만을 반복했다. 하루에 수천 번, 검을 찌르고 베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

"꼬마야! 넌 검을 들고 뭘 하는 거냐? 밥이나 해!"

묵영감이 그를 보고 혀를 찼지만, 류진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에는 이미 천하의 고수들을 넘어선 경지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단순히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검의 무게 중심은... 이렇게. 내공의 흐름은... 막힘없이 기해(氣海)에서 팔로. 모든 동작은 일직선으로.'

그의 몸은 열두 살이었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검의 이치를 깨달은 대검호였다.

수련 1개월 후.

류진의 검은 여전히 투박했다. 하지만 그의 자세는 완벽했다. 목검을 쥔 그의 손에는 미세한 떨림도 없었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의 몸 전체의 근육과 내공이 조화롭게 움직였다.

수련 6개월 후.

묵영감은 류진에게 이상한 변화를 느꼈다. 객잔의 무거운 물통을 옮기거나, 굵은 장작을 팰 때, 류진은 더 이상 낑낑거리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에는 낭비되는 힘이 없었고, 오히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어느 날, 객잔에 들른 한 젊은 무사가 류진의 수련을 비웃었다.

"하하! 저 꼬마는 아직도 저런 초식만 반복하고 있군. 저래서야 언제 강해진다는 말이냐!"

류진은 묵묵히 낡은 나무통을 나르고 있었다. 그때, 젊은 무사가 갑자기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이봐 꼬마. 네가 든 그 목검으로 내 칼집이라도 한번 쳐봐라. 제대로 맞추면 내가 네게 은자 한 닢을 주지."

류진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자세는 완벽한 '정'의 자세. 찌르기, 가장 단순한 동작이었다.

젊은 무사는 가소롭다는 듯 허리춤에 찬 칼집을 내밀었다.

"자, 어디 한번 찔러... 억!"

다음 순간, 젊은 무사는 자신의 손에 든 칼집이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은 얼얼했고, 칼집은 땅에 떨어져 부서졌다.

류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낡은 나무통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젊은 무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땅에 떨어진 칼집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단순한 찌르기였지만, 그 순간 느껴졌던 것은 마치 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힘의 응축'이었다. 완벽한 자세, 완벽한 내공 전달, 그리고 검의 근본을 꿰뚫는 '이해'에서 나오는 일격이었다.

'저... 저건... 천하의 명검술가들조차 도달하기 힘든, '극도(極度)의 정(靜)에서 나오는 동(動)' 아닌가?'

그 젊은 무사는 류진의 뒤통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는 깨달았다. 저 소년의 검은 단순히 강해지는 단계를 밟는 것이 아니라, 검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3장: 우연을 가장한 만남, 그리고 정보

회귀 후 1년. 류진은 이제 열세 살이 되었다. 그의 내공은 이전 생에서 같은 나이에 비해 턱없이 적었지만, 순수도와 응축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의 몸은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잠재력은 이미 수많은 고수들을 능가했다.

묵가 객잔은 강호의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지만, 때때로 중요한 정보를 가진 인물들이 들르곤 했다. 류진은 지난 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 강호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사건들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만천상회(萬千商會)'의 상주가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만천상회는 강호의 모든 물자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상회였으며, 그들의 정보력은 무림의 어떤 문파보다 뛰어났다. 특히 상회의 2인자이자 정보 총책임자인 '벽란(碧蘭)'은 훗날 묵룡교의 음모를 알게 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류진은 벽란과의 만남을 '우연을 가장'하여 만들어야 했다. 섣불리 접근하면 오히려 경계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벽란이 묵가 객잔에 묵는 날. 류진은 일부러 그녀가 머무는 방 근처에서 청소를 하다가, 그녀가 가장 아끼는 비단 주머니를 떨어뜨려 찢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봐, 꼬마! 너 지금 뭘 한 거야! 이 주머니는...!" 벽란의 호위 무사가 화를 버럭 냈다.

벽란은 고고한 자태로 류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비록 차가웠지만, 류진은 그 안에서 미약한 연민을 읽어냈다.

류진은 바닥에 엎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상주님. 이 천을 제가 어떻게든 고쳐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것은 이 비루한 몸과... 약간의 시간뿐입니다."

벽란은 흥미롭다는 듯 류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류진의 깊은 눈빛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감지했다.

"흥. 고쳐? 네가 어떻게 이 '천금사(千金絲)'를 고칠 수 있겠니. 대신,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렴. 네가 아는 가장 신기한 강호의 소문이라도 좋아."

류진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주님. 강호의 소문은 뜬구름과 같고, 진실은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저는 소문이 아닌, '경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벽란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경고? 재미있네. 해보렴."

류진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몸을 숙여 벽란에게 속삭였다.

"제가 드리는 경고는... 서쪽 '검은 안개 골짜기'에 대한 것입니다. 최근 그곳에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산적 떼가 아닙니다. 그들은 '피와 어둠'을 숭상하는 듯한 기이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만천상회의 물자 운송 경로가 그곳을 지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주님, 부디... 경로를 바꾸십시오. 그것이 상주님의 안전과 상회의 재산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벽란은 잠시 침묵했다. '검은 안개 골짜기'. 그곳은 강호에서 악명 높은 흉지였지만, 물자 운송의 최단 경로이기도 했다. 그리고 류진이 말한 '피와 어둠'을 숭상하는 기이한 흔적... 이것은 그녀가 최근 조사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집단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했다.

"너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이냐?" 벽란이 차갑게 물었다.

류진은 미소를 지었다. 열세 살 소년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파에 지친 듯한 씁쓸한 미소였다.

"제 눈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상주님. 제 경고를 무시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훗날, 제 말이 옳았음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누구였는지 기억해 주십시오."

류진은 벽란이 더 이상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재빨리 자리를 피해 객잔의 부엌으로 돌아갔다.

벽란은 한참 동안 류진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비범함과,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정확한 정보.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소년은 단순한 하인이 아니며, 그가 건넨 경고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진실'이라는 것을.

그녀는 호위 무사에게 조용히 명령했다.

"당장 서쪽 '검은 안개 골짜기' 인근의 모든 운송 경로를 변경하라. 그리고... 저 소년의 뒤를 조용히 조사해라. 하지만 절대 그에게 접근하거나 해를 입혀선 안 된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류진은 부엌에서 묵묵히 칼을 갈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벽란. 그녀는 지난 생에 내게 가장 먼저 도움을 주었던 인물. 이번 생에서는 내가 먼저 그녀를 도울 것이다. 그리고 만천상회의 정보망... 그것이 내가 강호에서 다시 일어서는 첫 번째 발판이 될 것이다.'

절망적인 죽음에서 돌아온 류진의 새로운 행보가 막 시작된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멸혼검'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움직이는, 냉철하고 비정한 '암영검(暗影劍)'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4장: 정보의 거미줄, 만천상회의 거래

류진이 벽란 상주에게 경고를 건넨 지 한 달이 지났다. 묵가 객잔은 여전히 평화로웠지만, 류진의 귀에는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는 만천상회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만약 벽란이 자신의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반응이 올 터였다.

예상대로, 일주일 후 벽란이 다시 묵가 객잔을 찾았다. 이번에는 이전처럼 화려한 상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평범한 행상인 차림이었고, 호위 무사도 단 한 명만 대동했다. 그녀는 류진이 혼자 있는 객잔 뒤편의 장작 패는 곳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꼬마야. 네 말이 옳았다."

벽란의 목소리는 낮고 진중했다. 류진은 장작을 패던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냉정했다.

"상주님께서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나는 네 경고를 듣고 운송 경로를 즉시 변경했다. 그리고 며칠 후, 원래 우리가 지나려 했던 검은 안개 골짜기에서 대규모 습격이 발생했다. 습격당한 다른 상회는 짐승에게 물어뜯긴 듯한 끔찍한 모습으로 전멸했다더군."

벽란의 얼굴에 희미한 두려움이 스쳤다. 그녀는 류진이 열세 살 소년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했다.

"그들은 단순한 산적 떼가 아니었다. 상주님 말씀대로, 그 흔적은... 인간의 짓이라고 보기 어려웠어. 너는 도대체 누구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지?"

류진은 목검을 집어 들고 낡은 마당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는 조용히 목검을 한번 휘둘렀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 검에서 느껴지는 압력은 벽란의 호위 무사조차 숨을 멈추게 만들었다.

"상주님. 저는 단지 묵가 객잔의 잡일꾼입니다. 저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시는 것이 상주님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류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시 이곳에 오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상주님, 이제 거래를 시작하시죠."

벽란은 류진의 놀라운 배짱과 확신에 찬 태도에 잠시 넋을 잃었다. 어린 소년이 거대 상회의 2인자에게 '거래'를 제안하다니. 그러나 류진의 정보가 그녀의 목숨과 상회의 막대한 재산을 구했다는 사실이 모든 오만함을 짓눌렀다.

"좋다. 거래를 하자. 너는 내게 정보를 제공하고, 나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 네가 원하는 대가가 무엇이냐?"

류진은 벽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첫째, 돈은 원하지 않습니다. 만천상회의 재력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입니다."

벽란의 호위 무사가 비웃음을 흘리려다 류진의 차가운 눈빛에 움츠러들었다.

"둘째, 저는 만천상회의 정보망을 이용할 권리를 원합니다. 제가 원하는 지역과 인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은밀하게 수집하여 저에게 전달해주십시오. 물론, 그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저는 상주님께 만천상회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에 대한 선제적인 경고를 드릴 것입니다."

벽란은 깊이 고민했다. 정보망은 만천상회의 심장과도 같았다. 그것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극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류진이 제공한 정보의 가치는 이미 증명되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정보망을 이용할 권리라... 네가 원하는 정보는 무엇이냐?"

"지금은 강호의 무림 문파들에는 관심 없습니다. 오직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수상한 세력에 대한 정보. 특히, 최근 몇 년간 사라지거나 암약하는 은둔 고수들의 행적금기시된 무공의 전수자에 대한 정보입니다."

류진은 묵룡교의 초기 핵심 세력들을 추적하려 했다. 지난 생, 그들은 이름 없는 은둔 고수들을 납치하거나 매수하여 금기의 힘을 익히게 했고, 그것이 훗날 묵룡교의 핵심 무력이 되었다.

"알겠다. 너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네가 제공하는 정보가 거짓이거나, 네가 만천상회를 해치려 한다면... 그때는 너의 목숨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상주님. 저는 '패배'를 싫어합니다. 저의 정보가 곧 상주님의 안위가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정보는 이미 전달했습니다. 이제 제가 원하는 정보를 주십시오. '북방 설원' 인근에서 최근 3년간 사라진 다섯 명의 검수(劍手)에 대한 모든 기록입니다."

류진의 말에 벽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섯 검수는 강호에서도 극소수만이 아는 은둔 고수들이었으며, 만천상회가 극비리에 그 행방을 추적하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류진은 그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검수'라는 직업까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너... 정말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벽란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류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허리춤에서 작은 옥패 하나를 꺼내 류진에게 건넸다.

"이 옥패는 만천상회의 최상위 기밀 통로를 상징한다. 이것을 보여주면 내가 직접 고용한 정보원이 네게 접근할 것이다. 이 옥패를 잃어버리지 마라. 그리고 이 거래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네가 맹세한 것처럼, 나 역시 네 정체를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

류진은 옥패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옥패의 감촉이 그의 손에 닿았다. 이 옥패는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라, 그가 다시 강호의 정점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계단이었다.


5장: 암영을 위한 검술, '허무무진(虛無無盡)'

만천상회의 정보망을 얻은 류진은 이제 객잔의 잡일꾼이 아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령관과 같았다. 그는 객잔의 좁은 다락방에서 수많은 정보 기록들을 분석했다. 지난 생에서 자신이 몰랐던, 묵룡교의 초기 조직 과정과 그들의 목표가 서서히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묵룡교는 단순히 강호를 파괴하려는 광신도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천하의 질서 자체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 했다. 그들의 지도자, 묵령은 단순한 마인(魔人)이 아니라, 강호의 질서에 깊은 회의를 품은 이단적인 천재였다.'

정보를 바탕으로, 류진은 자신의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가 선택한 무공은 지난 생의 '멸혼검법'과 완전히 달랐다.

그의 수련은 '허무무진(虛無無盡) 검결'을 완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허무무진 검결은 류진이 지난 생의 모든 검술 지식을 종합하고, 무명공의 순수한 내공을 기반으로 창안해낸 검술이었다. 이 검술은 이름처럼 **'존재하지 않는 듯한 움직임'**과 '끝없는 변화'를 추구했다.

  1. 제1결: 무영(無影): 검을 휘둘러도 소리가 나지 않고, 잔영이 남지 않는다. 마치 검이 공기를 가르지 않고 녹아드는 듯한 경지. 이는 암습과 기습에 최적화된 은밀한 검이었다.
  2. 제2결: 공진(空震): 검의 타격 부위에 내공을 극한으로 응축시킨 후, 표면이 아닌 내부에서 진동을 일으켜 파괴한다. 살상을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
  3. 제3결: 무애(無涯): 끊임없이 변화하는 검로(劍路). 상대가 예측하는 모든 경로를 비껴가며, 정해진 초식이 없는 듯 무한히 이어지는 공격.

류진은 낡은 다락방에서 이 검술을 연마했다. 그의 목검은 더 이상 나무통을 깨부수는 위력으로 휘둘러지지 않았다. 대신, 목검이 허공을 가를 때, 목검 끝에서 '무(無)'의 기운이 느껴졌다.

  • 1년 후 (류진 14세): 그의 검은 바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객잔 마당의 흙먼지조차 그가 검을 휘두르는 방향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묵영감은 류진이 검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기에 단순한 아이들의 놀이로 치부했다.
  • 2년 후 (류진 15세): 류진은 '공진'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단단한 바위를 목검으로 살짝 쳤다. 잠시 후, 바위는 겉모양을 유지한 채 내부에서부터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이는 류진의 내공이 목표물의 내부 결에 완벽하게 침투하여 공명(共鳴)을 일으켰다는 증거였다.

그의 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강호의 일류 고수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류진은 자신이 필요할 때까지 이 힘을 완벽히 숨길 작정이었다.


6장: 옥패의 주인을 찾아서

류진이 만천상회의 정보를 이용해 묵룡교의 초기 세력을 하나씩 파헤치던 중, 결정적인 정보를 얻게 되었다.

묵령의 첫 번째 수족이자, 훗날 강호를 피로 물들였던 **'혈마수(血魔手)'**가 당시에는 이름 없는 무관에서 은둔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본명은 '진환(秦煥)'이었으며, 북방 설원에서 사라졌던 다섯 검수 중 한 명이었다.

'진환. 그는 지난 생에 수많은 정파 고수들의 피를 말렸던 악귀. 묵룡교의 잔혹한 수법은 모두 진환의 손에서 나왔다. 그가 묵령에게 완전히 물들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

류진은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더 이상 객잔에 머무를 수 없었다. 묵영감에게 작별 인사를 고할 때, 류진은 처음으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묵영감은 그에게 무공은 가르쳐주지 못했지만, 정직함과 인내심을 가르쳐주었다.

"꼬마야. 어디 가는 거냐? 너 없으면 누가 이 객잔 일을 한단 말이냐!" 묵영감이 투박하게 물었다.

"영감님. 저는 제 갈 길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영감님께 짐이 될 수 없습니다." 류진은 품속에서 은자 열 냥이 든 주머니를 꺼내 묵영감에게 건넸다.

"이건... 지난 3년간의 노임입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묵영감은 류진의 눈빛에서 단호함과 낯선 냉기를 읽었다. 그는 류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알겠다. 네 눈빛이 예사롭지 않구나. 하지만 약속해라. 아무리 강호가 험할지라도, 네가 가는 길을 잃지 마라. 남을 돕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남을 해치는 일은 하지 마라."

류진은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영감님."

류진은 옥패를 들고 벽란이 알려준 비밀 접선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강호의 중심부인 **'운강성(雲江城)'**에 있는 만천상회의 거점이었다.

운강성의 만천상회 거점에 도착한 류진은 조심스럽게 옥패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만천상회의 최고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의 상인이 그를 비밀스러운 방으로 안내했다.

"벽란 상주님께 보고받았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암영(暗影)'이라 부르겠습니다."

류진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빛이 아닌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 바로 자신이 추구하는 바였다.

"저는 암영입니다. 상인장. 지금부터 제가 원하는 것은 '진환'이라는 인물의 정확한 은신처와 그의 최근 무공 수련 상태입니다. 모든 정보를 오늘 밤까지 정리해 주십시오."

상인장은 류진의 요구에 당황했지만, 옥패의 위력과 벽란의 엄명을 알기에 즉시 움직였다.

류진은 운강성 외곽의 조용한 객잔에 머물며 진환에 대한 정보를 기다렸다. 밤이 깊어질 무렵, 상인장이 작은 두루마리를 가지고 나타났다.

"암영님. 진환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현재 운강성 외곽의 '청풍무관(淸風武館)'에서 무관 사범으로 은둔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의 수련은 매우 기이합니다. 밤마다 무관 뒤편의 절벽에서 피를 이용한 듯한 수상한 의식을 치르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피를 이용한 의식... 벌써 묵령의 마공에 깊이 물들기 시작했군.'

류진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진환이 완전히 마인이 되기 전, 그를 제거하는 것. 이것이 묵룡교의 재앙을 막기 위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7장: 새벽의 결투, 혈마수를 겨누다

운강성 외곽, 청풍무관.

류진은 깊은 밤, 짙은 어둠을 틈타 무관의 담을 넘었다. 그의 몸놀림은 마치 그림자가 땅에 스며들듯 완벽한 '무영(無影)'이었다. 열다섯 살 소년의 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난 생 멸혼검 류진이 갈고닦았던 극한의 잠입술이었다.

만천상회의 정보대로 진환은 무관 뒤편의 절벽에서 수상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류진은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진환의 모습을 관찰했다.

진환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늙은 무사였다. 그는 절벽 아래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속에서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검은 피가 흥건했고, 그 피 위에 쓰여진 알 수 없는 부적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진환의 손끝에서는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고, 그것은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저것이 묵룡교의 마공, 혈혼술(血魂術)의 초기 형태인가. 생명력을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사악한 술법.'

류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진환이 혈혼술을 완성하기 전에 제거해야 했다. 그가 마공에 완전히 물들게 되면, 지난 생의 류진조차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 될 터였다.

류진은 품속에서 준비한 단검 하나를 꺼냈다. 목검이 아닌 실제 날카로운 무기였다. 이 단검은 객잔을 떠나기 전 묵영감이 기념이라며 준 낡은 사냥칼이었다.

류진은 극한으로 내공을 압축시키며 진환에게 접근했다. 그의 발걸음은 흙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았고, 그의 숨소리는 멈춘 듯 고요했다. '무영(無影)'의 경지였다.

진환은 마공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는 본래 북방의 일류 검수였다. 그의 감각은 예리했다.

"누구냐!"

진환은 의식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이미 핏발이 서 있었고,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류진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섬뜩한 살기(殺氣)를 느꼈다.

류진은 진환이 시선을 돌린 바로 그 순간, 약 10장의 거리를 찰나에 좁혔다. 단검을 쥔 그의 손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류진은 자신의 검결 중

🌑절망의 나락에서 피어난 검혼(劍魂) - 비운의 천재, 류진의 회귀록

8장: 정파의 가면, 만독궁의 그림자

혈마수 진환을 제거한 류진은 중원(中原)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중원은 강호의 중심지이자 정파 무림의 맹주 격인 '화산파'와 '소림사' 등이 위치한 곳이었다. 류진은 만천상회와의 암묵적인 계약을 통해 중원의 외진 지역에 작은 은거지를 마련하고, 정보를 기다렸다.

이번 목표는 지난 생, 묵룡교의 독약과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여 강호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핵심 인물, **'독왕(毒王)'**이었다. 독왕의 본명은 '천기(天奇)'였으며, 그는 정파 무림에서 존경받는 **'의선문(醫仙門)'**의 장로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는 류진이 지난 생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의선문 장로라니. 위선도 정도가 있지.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독(毒)을 다루는 자를 내부에 숨겨두고 강호를 기만하다니.'

류진은 만천상회를 통해 천기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수집했다. 천기는 뛰어난 의술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특히 정파 고수들의 난치병을 치료하며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묵룡교에 필요한 독약 재료를 은밀하게 확보하고 있었다.

류진은 의선문에 잠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의선문은 겉으로는 온화했지만, 중원의 정파 거점 중 하나였고 경계가 삼엄했다.

'천기를 만나려면, 그가 거절할 수 없는 '거래'를 제안해야 한다.'

류진은 일부러 중원의 무림 고수들이 자주 모이는 주점에서 자신의 '특출난 능력'을 은밀하게 노출했다.

그는 주점에서 정파의 한 문파 소속으로 보이는 무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최근 수련 도중 기이한 독에 중독되어 고통받고 있었는데, 어떤 의원도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류진은 그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그대들의 고통은 **'벽산초(碧山草)'**의 독에 의한 것이며, 이 독은 일반적인 해독제로는 치료되지 않는다. 이 독은 내공과 섞여 기혈을 응고시키는 특징이 있다. 해독하려면 **'풍혈(風穴)'**을 이용해 외부에서 독을 강제로 뽑아낸 후, 삼 년 이상 묵은 **'천심목(天心木)'**을 달여 마셔야 한다."

류진은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생, 그가 묵룡교와 싸우면서 익혔던 '독에 대한 역지식'이었다.

무사들은 처음에는 어린 소년의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류진이 말한 독의 증상이 정확했고, 그들이 사용했던 해독제에 대한 분석이 너무나 논리적이었기에 시험 삼아 류진의 말을 따랐다.

결과는 놀라웠다. 류진의 처방대로 독을 뽑아내고 천심목을 달여 마시자, 며칠 동안 고통받던 무사들의 상태가 거짓말처럼 호전되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강호에 퍼졌다. 정파의 무사들을 치료한 '독에 정통한 신비로운 소년'의 이야기였다. 이 소문은 곧바로 의선문의 천기 장로의 귀에도 들어갔다.

천기는 처음에는 비웃었다. 하지만 소년이 말한 '벽산초'의 독의 특성과 해독법에 대한 정보는 천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극비 정보와 일치했다.

'저 아이를 만나야 한다. 만약 그 아이가 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혹은 나보다 더 뛰어난 독술의 재능을 가진 자라면, 묵령께 바쳐야 한다.'

천기는 즉시 사람을 보내 류진을 의선문으로 초대했다.


9장: 독왕과의 대면, 위선의 절정

류진은 의선문으로 향했다. 의선문의 웅장하고 청명한 분위기는 류진의 지난 생 기억 속 위선적인 정파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문도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류진을 반겼지만, 그의 눈에는 그들의 미소 뒤에 숨겨진 오만함과 무지함이 보였다.

천기는 의선문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청심당'에서 류진을 맞이했다. 천기는 흰 도포를 입고 있었으며,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의선(醫仙)'의 모습 그 자체였다.

"어린 친구. 네가 최근 정파 무사들의 난치병을 치료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늙은 의원으로서 참으로 기특하고 놀랍다." 천기가 온화하게 말했다.

류진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지만, 그의 눈빛은 천기의 손가락 끝의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아주 희미한 '특정 약재의 냄새'를 분석하고 있었다.

"장로님. 저는 의술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독에 대한 지식이 남들보다 조금 있을 뿐입니다. 장로님이야말로 진정한 의선이십니다." 류진은 천기를 추켜세웠다.

천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곧이어 본색을 드러냈다.

"좋다. 네 독에 대한 지식이 놀랍다는 것은 이미 인정했다. 하지만, 독은 강호에서 금기시되는 사술(邪術)이다. 너의 그 재능을 정파를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느냐? 너는 내 제자가 되어 정파의 의술을 배우고, 너의 독에 대한 지식을 좋은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내가 너를 의선문의 후계자로 키워주마."

이는 천기의 유혹이자 함정이었다. 류진을 자신의 감시 아래 두고, 독에 대한 그의 지식을 이용하여 묵룡교에 편입시키려는 속셈이었다.

류진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장로님의 제안은 영광입니다. 하지만 저는 의술에는 뜻이 없습니다. 제가 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단 하나, **'독을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독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류진의 말에 천기의 온화했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무슨 망발이냐! 독은 강호의 공적(公敵)이다!" 천기가 소리쳤다.

류진은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오직 천기만이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장로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밤마다 의선문의 가장 깊숙한 약재 창고에서 **'신경 마비 독'**을 정제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독의 주재료가 바로 정파에서 금기시하는 **'혈소사(血蘚絲)'**라는 것도요. 의선문의 장로께서 그런 사악한 약재를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강호를 구하기 위함이 아닐 것입니다."

천기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온화한 미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포와 살기가 들어섰다. 류진이 말한 '혈소사'와 '신경 마비 독'은 그와 묵룡교 지도부만이 아는 극비 정보였다.

"네... 네놈! 정체가 뭐냐!" 천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류진은 이제 가면에 가려진 그의 본모습을 보고 만족했다.

"저는 그저 장로님께 **'거래'**를 하러 온 사람입니다. 저는 장로님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장로님은 저에게 묵룡교 지도부의 명단과 그들의 연락망을 넘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선문의 장로께서 마도(魔道)의 독을 다룬다는 소문이 하룻밤 사이에 강호 전체에 퍼질 것입니다. 장로님의 명성, 그리고 묵룡교의 초기 계획은 모두 파탄나겠죠."

류진은 냉철했다. 동정심도, 감정도 없었다. 오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완벽한 전략뿐이었다.

천기는 경악과 분노로 몸을 떨었지만,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모든 약점을 꿰뚫고 있었다.

"하... 하하하! 어린 놈이 어디서 이런 배짱과 정보를 얻었느냐! 좋다! 네놈의 요구를 들어주마. 하지만 네놈이 내게 원하는 정보를 얻은 후, 나를 죽이려 든다면..."

"걱정 마십시오. 장로님.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장로님은 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저는 장로님의 생명을 보장해 드릴 것입니다. 단, 묵룡교의 마공 수련을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만약 단 한 번이라도 마공의 기운이 감지된다면... 그때는 장로님의 목숨이 아니라, 의선문 전체의 명예가 사라질 것입니다."

류진은 천기에게 무서운 압박을 가했다. 이 거래는 류진이 묵룡교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하고, 정파의 위선을 이용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

천기는 결국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그는 류진에게 묵룡교 초기의 조직도와 연락책,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다음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

류진은 정보를 확인한 후, 의선문을 떠났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남긴 것은 독왕의 공포와 정파 무림에 대한 깊은 불신이었다. 류진의 손에는 이제 묵룡교의 심장부로 침투할 수 있는 강력한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공진(空震)'을 사용했다. 심장을 노리는 대신, 진환의 명치 아래, 내공이 모이는 단전(丹田)을 목표로 했다.

단검이 진환의 옷자락에 닿았다. 휙! 소리조차 나지 않는 찌르기였다.

진환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단검은 그의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진환은 단검 끝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을 감지했다.

"크윽!"

류진의 내공이 단검을 통해 진환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진환은 외상을 입지 않았지만, 내부에 강력한 공명파(共鳴波)가 발생했다. 그의 단전은 겉모습은 멀쩡했으나 내부의 기맥(氣脈)이 미세하게 손상되기 시작했다.

진환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손바닥으로 단전 부위를 감쌌다. 그의 눈에 류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

"네... 네놈은 누구냐! 네가 어떻게 내 기맥을...!" 진환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의 수련은 극비였는데, 어린 소년이 자신을 암습하다니. 게다가 그 소년의 검술은 너무나 기이했다. 날카로운 살의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움직임 자체가 완벽한 살상기였다.

류진은 단검을 거두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무애(無涯)' 검결의 자세를 취했다. 정해진 초식이 없는, 무한한 변화의 자세.

"진환. 네놈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묵령의 마공은 결국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게 묵룡교의 정보를 넘기고 죽음을 택해라."

진환은 류진의 말에 경악했다.

"묵룡교...? 네놈이 어떻게 그 이름을... 감히 어린 놈이 어디서 강호의 소문을 주워듣고 나를 농락하려 드는가! 죽어라!"

진환은 자신의 검, '혈광검(血光劍)'을 뽑아 들었다. 검은 이미 붉은 피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맹렬하게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혈혼 일격(一擊)!"

진환의 검은 류진의 예상대로 매우 빠르고 강력했다. 지난 생, 그를 피의 악귀로 만들었던 바로 그 힘이었다.

하지만 류진은 냉정했다. 진환의 검술은 빠르고 강력했지만, 류진의 눈에는 **'다음 동작'**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였다. 류진은 지난 30년간 진환과 수십 번 싸워봤던 경험이 있었다.

류진은 진환의 검이 지나가는 경로의 아주 미세한 틈을 노렸다. 류진의 단검은 마치 벌레의 움직임처럼 진환의 공격 경로를 피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쉬이익!

이번에도 류진은 피부 깊숙이 찌르지 않았다. 단지 진환의 근육 표면에 '공진'의 내공을 주입했다. 진환은 검을 휘두르다 말고 온몸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고통에 무릎을 꿇었다.

"이... 이런 검술은...! 존재할 수 없어!"

진환은 공포에 질렸다. 자신의 공격은 막히지 않았는데, 몸은 내부에서부터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마비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소년은 너무나 어렸지만, 그를 상대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이미 죽은 후의 시간을 다투는 듯한 느낌이었다.

류진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연민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진환. 너는 이미 나의 검 끝에서 세 번이나 죽었다. 나는 네놈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묵룡교의 지도부 명단과 그들의 거점을 말해라."

"닥쳐! 감히 마인(魔人)이 되려는 자에게 겁을 주려 하다니! 네놈도 함께 피로 물들 것이다!" 진환은 남아있는 모든 내공을 쥐어짜 내며 미친 듯이 포효했다.

류진은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허무무진, 종결."

류진의 단검이 진환의 심장을 향해 솟구쳤다. 찌르는 동작이었지만, 너무나 빨랐기에 진환의 시선은 단검이 도착한 후에야 그 궤적을 쫓을 수 있었다.

스윽.

단검은 정확히 심장을 관통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류진은 내공을 폭발적으로 심장에 주입하며 '공진'을 최고조로 일으켰다.

진환은 고통스러운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내부에서 폭발한 것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의 눈은 절망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류진을 응시하며 굳어버렸다.

진환의 손에 들려있던 '혈광검'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검은 피가 흥건한 땅을 적셨다.

류진은 진환의 시체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한때 강호의 이름난 검수였던 자가, 사악한 마공에 물들어 자신의 손에 죽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앞으로 묵룡교의 모든 핵심 인물들을 이렇게 그림자 속에서 제거해야 했다.

류진은 단검을 뽑아 진환의 옷자락으로 깨끗이 닦아낸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이 새벽의 암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진환의 몸에서 묵룡교와 관련된 모든 서류와 물건을 회수한 후, 조용히 절벽을 내려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운강성을 빠져나온 류진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음 목표에 대한 정보가 가득 차 있었다.

'진환의 죽음은 묵룡교에게 첫 번째 경고가 될 것이다. 이제 그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야 한다. 묵룡교의 두 번째 핵심 인물은... 정파 무림의 중심부에 은둔해 있는 '만독궁(萬毒宮)'의 잔당이다.'

류진은 다시 한번 만천상회의 정보망을 가동시킬 준비를 하며, 다음 행선지인 무림의 중심, 중원(中原)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8장: 정파의 가면, 만독궁의 그림자

혈마수 진환을 제거한 류진은 중원(中原)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중원은 강호의 중심지이자 정파 무림의 맹주 격인 '화산파'와 '소림사' 등이 위치한 곳이었다. 류진은 만천상회와의 암묵적인 계약을 통해 중원의 외진 지역에 작은 은거지를 마련하고, 정보를 기다렸다.

이번 목표는 지난 생, 묵룡교의 독약과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여 강호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핵심 인물, '독왕(毒王)'이었다. 독왕의 본명은 '천기(天奇)'였으며, 그는 정파 무림에서 존경받는 '의선문(醫仙門)'의 장로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는 류진이 지난 생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의선문 장로라니. 위선도 정도가 있지.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독(毒)을 다루는 자를 내부에 숨겨두고 강호를 기만하다니.'

류진은 만천상회를 통해 천기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수집했다. 천기는 뛰어난 의술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특히 정파 고수들의 난치병을 치료하며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묵룡교에 필요한 독약 재료를 은밀하게 확보하고 있었다.

류진은 의선문에 잠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의선문은 겉으로는 온화했지만, 중원의 정파 거점 중 하나였고 경계가 삼엄했다.

'천기를 만나려면, 그가 거절할 수 없는 '거래'를 제안해야 한다.'

류진은 일부러 중원의 무림 고수들이 자주 모이는 주점에서 자신의 '특출난 능력'을 은밀하게 노출했다.

그는 주점에서 정파의 한 문파 소속으로 보이는 무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최근 수련 도중 기이한 독에 중독되어 고통받고 있었는데, 어떤 의원도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류진은 그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그대들의 고통은 '벽산초(碧山草)'의 독에 의한 것이며, 이 독은 일반적인 해독제로는 치료되지 않는다. 이 독은 내공과 섞여 기혈을 응고시키는 특징이 있다. 해독하려면 '풍혈(風穴)'을 이용해 외부에서 독을 강제로 뽑아낸 후, 삼 년 이상 묵은 '천심목(天心木)'을 달여 마셔야 한다."

류진은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생, 그가 묵룡교와 싸우면서 익혔던 '독에 대한 역지식'이었다.

무사들은 처음에는 어린 소년의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류진이 말한 독의 증상이 정확했고, 그들이 사용했던 해독제에 대한 분석이 너무나 논리적이었기에 시험 삼아 류진의 말을 따랐다.

결과는 놀라웠다. 류진의 처방대로 독을 뽑아내고 천심목을 달여 마시자, 며칠 동안 고통받던 무사들의 상태가 거짓말처럼 호전되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강호에 퍼졌다. 정파의 무사들을 치료한 '독에 정통한 신비로운 소년'의 이야기였다. 이 소문은 곧바로 의선문의 천기 장로의 귀에도 들어갔다.

천기는 처음에는 비웃었다. 하지만 소년이 말한 '벽산초'의 독의 특성과 해독법에 대한 정보는 천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극비 정보와 일치했다.

'저 아이를 만나야 한다. 만약 그 아이가 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혹은 나보다 더 뛰어난 독술의 재능을 가진 자라면, 묵령께 바쳐야 한다.'

천기는 즉시 사람을 보내 류진을 의선문으로 초대했다.


9장: 독왕과의 대면, 위선의 절정

류진은 의선문으로 향했다. 의선문의 웅장하고 청명한 분위기는 류진의 지난 생 기억 속 위선적인 정파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문도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류진을 반겼지만, 그의 눈에는 그들의 미소 뒤에 숨겨진 오만함과 무지함이 보였다.

천기는 의선문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청심당'에서 류진을 맞이했다. 천기는 흰 도포를 입고 있었으며,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의선(醫仙)'의 모습 그 자체였다.

"어린 친구. 네가 최근 정파 무사들의 난치병을 치료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늙은 의원으로서 참으로 기특하고 놀랍다." 천기가 온화하게 말했다.

류진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지만, 그의 눈빛은 천기의 손가락 끝의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아주 희미한 '특정 약재의 냄새'를 분석하고 있었다.

"장로님. 저는 의술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독에 대한 지식이 남들보다 조금 있을 뿐입니다. 장로님이야말로 진정한 의선이십니다." 류진은 천기를 추켜세웠다.

천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곧이어 본색을 드러냈다.

"좋다. 네 독에 대한 지식이 놀랍다는 것은 이미 인정했다. 하지만, 독은 강호에서 금기시되는 사술(邪術)이다. 너의 그 재능을 정파를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느냐? 너는 내 제자가 되어 정파의 의술을 배우고, 너의 독에 대한 지식을 좋은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내가 너를 의선문의 후계자로 키워주마."

이는 천기의 유혹이자 함정이었다. 류진을 자신의 감시 아래 두고, 독에 대한 그의 지식을 이용하여 묵룡교에 편입시키려는 속셈이었다.

류진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장로님의 제안은 영광입니다. 하지만 저는 의술에는 뜻이 없습니다. 제가 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단 하나, '독을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독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류진의 말에 천기의 온화했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무슨 망발이냐! 독은 강호의 공적(公敵)이다!" 천기가 소리쳤다.

류진은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오직 천기만이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장로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밤마다 의선문의 가장 깊숙한 약재 창고에서 '신경 마비 독'을 정제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독의 주재료가 바로 정파에서 금기시하는 '혈소사(血蘚絲)'라는 것도요. 의선문의 장로께서 그런 사악한 약재를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강호를 구하기 위함이 아닐 것입니다."

천기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온화한 미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포와 살기가 들어섰다. 류진이 말한 '혈소사'와 '신경 마비 독'은 그와 묵룡교 지도부만이 아는 극비 정보였다.

"네... 네놈! 정체가 뭐냐!" 천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류진은 이제 가면에 가려진 그의 본모습을 보고 만족했다.

"저는 그저 장로님께 '거래'를 하러 온 사람입니다. 저는 장로님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장로님은 저에게 묵룡교 지도부의 명단과 그들의 연락망을 넘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선문의 장로께서 마도(魔道)의 독을 다룬다는 소문이 하룻밤 사이에 강호 전체에 퍼질 것입니다. 장로님의 명성, 그리고 묵룡교의 초기 계획은 모두 파탄나겠죠."

류진은 냉철했다. 동정심도, 감정도 없었다. 오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완벽한 전략뿐이었다.

천기는 경악과 분노로 몸을 떨었지만,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모든 약점을 꿰뚫고 있었다.

"하... 하하하! 어린 놈이 어디서 이런 배짱과 정보를 얻었느냐! 좋다! 네놈의 요구를 들어주마. 하지만 네놈이 내게 원하는 정보를 얻은 후, 나를 죽이려 든다면..."

"걱정 마십시오. 장로님.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장로님은 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저는 장로님의 생명을 보장해 드릴 것입니다. 단, 묵룡교의 마공 수련을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만약 단 한 번이라도 마공의 기운이 감지된다면... 그때는 장로님의 목숨이 아니라, 의선문 전체의 명예가 사라질 것입니다."

류진은 천기에게 무서운 압박을 가했다. 이 거래는 류진이 묵룡교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하고, 정파의 위선을 이용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

천기는 결국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그는 류진에게 묵룡교 초기의 조직도와 연락책,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다음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

류진은 정보를 확인한 후, 의선문을 떠났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남긴 것은 독왕의 공포와 정파 무림에 대한 깊은 불신이었다. 류진의 손에는 이제 묵룡교의 심장부로 침투할 수 있는 강력한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10장: 묵룡교의 심장부, 그림자 계략

독왕 천기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류진의 예상보다 훨씬 방대하고 중요했다. 묵룡교는 이미 강호의 주요 거점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초기 지도부는 '삼대호법'과 '오대장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정파나 명문가 출신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특히 류진의 관심을 끈 것은 묵룡교의 본거지가 중원의 깊은 산속, 외진 곳이 아닌, 천하 제일의 무력을 자랑하는 '소림사'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장소에 숨어들어 정파의 감시를 완전히 피하려는 묵령의 교활한 전략이었다.

류진은 천기가 제공한 비밀 연락망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천기의 연락책은 한 달에 한 번, '청산객잔'에서 묵룡교의 고위 간부인 '흑영호법(黑影護法)'과 접선하도록 되어 있었다.

'흑영호법. 지난 생, 그가 묵룡교의 정보와 암살을 총괄했던 잔인한 자다. 그를 제거하는 것보다, 그를 이용해 묵룡교의 내부를 뒤흔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류진은 흑영호법을 '만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

먼저, 그는 만천상회의 정보망을 이용해 흑영호법이 평소 강한 권력욕과 명예욕을 가지고 있으며, 묵룡교의 2인자가 되기를 끊임없이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흑영호법이 독왕 천기를 은근히 무시하며 그의 공로를 가로채려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튿날, 류진은 청산객잔으로 향했다. 그는 낡은 비단옷을 입고, 얼굴에는 어린 나이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해묵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천기에게서 받은 '비밀 증표'를 보여주자, 객잔의 주인이 그를 조용히 2층의 밀실로 안내했다.

밀실에는 덩치 크고 위압적인 풍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바로 흑영호법이었다. 그의 눈빛은 사납고 잔혹했지만, 류진이 나타나자 살짝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네놈이 천기 장로의 새로운 연락책이냐? 어린 놈이 감히 이런 자리에 왔군. 천기는 늙어 정신을 놓았나?" 흑영호법이 류진을 경멸하듯 내려다봤다.

류진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호법님. 저는 장로님의 '새로운 연락책'이 아닙니다. 저는 장로님을 제거하고, 그 자리와 공로를 차지하러 온 '암영(暗影)'입니다."

흑영호법은 잠시 말을 잃었다가, 곧이어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이 어린 놈이 겁도 없이! 너 같은 꼬마가 감히 독왕을 제거하고 이 자리에 앉겠다니! 네놈의 무공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류진은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흑영호법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살짝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공진(空震)' 검결의 극히 일부를 이용해 내공을 탁자로 흘려보냈다.

지이잉—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흑영호법은 자신의 손이 올려진 탁자 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이하고 강력한 '공명파'를 감지했다. 탁자는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내부의 나무 조직은 이미 미세하게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흑영호법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공포스러운 힘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류진은 조용히 말했다.

"호법님. 천기는 이미 저에게 제거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매우 은밀하게 처리되었으며, 의선문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밀 정보와 독약 제조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호법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흑영호법의 눈빛은 이미 탐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기가 제거되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엄청난 공로가 될 수 있었다.

"제안? 말해봐라."

"호법님은 저를 '묵령교주의 비밀리에 발탁된 독술 천재'로 교주께 보고해야 합니다. 저는 독왕의 모든 공로를 승계하고, 묵룡교의 핵심 간부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호법님께는 천기를 제거한 공로와 저를 발탁한 공로를 모두 드리겠습니다. 저는 독술만 할 뿐, 무림의 권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묵룡교 내에서 독약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호법님께서 저를 보호하고 지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독약 개발을 통해 호법님의 입지를 교주님 앞에서 최고로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류진의 제안은 흑영호법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는 권력을 원했고, 류진은 그에게 천기를 제거했다는 완벽한 공로와, 묵룡교에게 가장 필요한 '독'을 제공할 수 있는 재능을 선사했다. 류진은 스스로 무력과 권력을 포기하고 오직 독술에만 몰두하겠다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흑영호법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좋다! 네놈의 배짱과 재능을 인정하겠다! 네 이름은... '암영'이라 하였느냐? 지금부터 너는 묵룡교의 비밀 '제2독왕'이며, 나의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천기를 제거하고 가져온 정보를 내게 넘겨라. 내가 직접 교주께 보고하겠다!"

류진은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함정이었다. 류진은 천기에게서 받은 정보 중, 묵룡교 전체에 필수적이지만 가짜 정보와 위장된 독약 처방을 흑영호법에게 넘겼다. 진정한 핵심 정보는 류진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흑영호법. 네 권력욕이 네 목을 죄는 밧줄이 될 것이다. 나는 네 등에 숨어 묵룡교의 핵심부로 침투하겠다.'


11장: 묵룡교 내부의 첫 균열

흑영호법의 보고는 묵룡교 교주, '묵령'의 큰 관심을 끌었다. 묵령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왕 천기를 제거하고 새로운 독을 개발할 수 있는 '암영'이라는 존재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했다.

며칠 후, 류진은 흑영호법의 인솔 하에 묵룡교의 본거지로 향했다. 소림사 근처의 겉보기에는 평범한 산봉우리였다. 하지만 그 안쪽에는 거대한 지하 동굴이 숨겨져 있었다.

묵룡교의 분위기는 류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끝없는 질투와 권력 다툼이 숨어 있었다.

묵령은 지하 깊숙한 곳의 거대한 홀에서 류진을 맞이했다. 묵령은 겉모습은 강호의 무인이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웠지만, 그의 눈빛은 천하를 삼킬 듯한 광기와 냉철함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네가 바로 '암영'이냐. 천기를 제거하고 스스로 나섰다지. 네놈의 배짱은 높이 사겠다. 늙은 천기에게선 더 이상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네가 그 공백을 채워야 한다." 묵령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류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교주님. 저는 독으로 교주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천기가 만들었던 독은 너무나 투박하고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저는 기혈을 파괴하는 대신, '정신과 내공의 근본을 잠식하는 독'을 개발하여 정파 무림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릴 것입니다."

류진의 말은 묵령의 흥미를 끌었다. 묵룡교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살상이 아닌, 강호의 '질서'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좋다. 너에게 '비밀 독방'과 모든 약재를 지원하겠다. 나의 기대에 부응해라, 암영."

류진은 흑영호법의 보호를 받으며 묵룡교의 공식 일원이 되었다. 그는 곧바로 '독약 개발'에 착수했다. 물론, 류진이 개발하는 독은 묵룡교의 계획을 돕기 위함이 아니었다.

류진은 흑영호법에게서 천기가 개발 중이던 독약 처방과 약재를 넘겨받았는데, 류진은 여기에 미세한 조작을 가했다. 그는 독약의 효능을 약화시키거나, 혹은 묵룡교 간부들의 몸에 서서히 축적되어 만성적인 내상(內傷)을 입히는 '역류 독성'을 추가했다.

흑영호법은 류진이 독약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그는 류진의 공로를 가로채기 위해, 류진이 만든 약을 자신이 직접 교주와 다른 간부들에게 바쳤다.

"이것이 새로운 독왕 암영이 개발한 '혼원산(混元散)'입니다. 정파 무인들의 내공을 순식간에 혼란시키는 획기적인 독입니다!"

묵룡교 간부들은 류진의 독을 복용하거나, 테스트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독의 효능이 조금 약해진 것을 느꼈지만, 흑영호법은 이를 '정밀함을 위한 변화'라고 포장했다.

묵룡교 지도부가 류진이 조작한 독에 서서히 중독되기 시작하면서, 류진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들의 내공은 미세하게 불안정해졌고, 판단력은 흐려졌다. 류진은 묵룡교 내부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밤, 류진은 자신의 독방에서 만천상회의 비밀 연락책과 조용히 접선했다.

"다음 목표는 '적혈검(赤血劍)' 백무량입니다. 그는 묵룡교의 무력 호법이자 흑영호법의 강력한 라이벌입니다. 백무량이 최근 흑영호법이 독을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정보를 확보해 주십시오."

류진은 이제 묵룡교 내부의 권력 암투를 이용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 계획이었다. '암영'의 그림자 계략이 서서히 묵룡교 전체를 덮치기 시작했다.

12장: 내분 조장, 적혈검의 분노

류진이 묵룡교에 침투한 지 두 달. 묵룡교의 지도부는 류진이 제조한 '혼원산'의 역류 독성 때문에 모두 미세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특히 권력에 눈이 먼 흑영호법은 자신의 공로를 과시하기 위해 독을 과다 복용했고, 그의 내공은 가장 불안정했다.

류진은 만천상회로부터 '적혈검' 백무량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었다. 백무량은 무공 실력은 뛰어나지만 성정이 급하고 직선적이며, 흑영호법이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늘 불만스러워했다. 또한 백무량은 최근 묵령이 흑영호법에게만 '암영'이 만든 신약을 독점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류진은 이 균열을 벌리기로 했다.

어느 날 밤, 류진은 자신의 독방에서 정교하게 조작한 '천기의 유서'를 작성했다. 유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묵령 교주는 흑영호법을 가장 신뢰하고 있으며, 흑영호법이야말로 나의 모든 독술과 공로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백무량은 성정이 포악하여 독술을 다루기엔 부족하며, 교주는 백무량을 곧 제거할 것이다. 내가 남기는 마지막 독약 처방은 오직 흑영호법에게만 전수해야 한다."

류진은 이 가짜 유서를 흑영호법이 아닌, 백무량에게 전달되도록 치밀하게 계획했다.

그는 흑영호법의 방에 몰래 잠입하여, 그의 서책 사이에 유서를 숨겼다. 그리고 만천상회 연락책을 통해 백무량의 심복이 흑영호법의 방을 염탐하는 '우연한 기회'를 만들었다.

예상대로, 며칠 후 백무량의 심복이 흑영호법의 방을 뒤졌고, '천기의 유서'를 발견했다. 백무량은 유서를 읽자마자 극도로 분노했다.

"이런 간악한 놈! 흑영호법이 천기를 제거한 후, 천기에게서 이런 유서까지 조작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했단 말인가! 그리고 묵령 교주께서 나를 제거하려 한다니! 이 모든 것이 흑영호법의 농간이다!"

백무량은 이 유서가 '암영'이 아닌 '흑영호법'의 조작이라고 확신했다. 독왕 천기는 이미 죽었고, 흑영호법만이 천기의 유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 다툼 속에서 의심은 진실보다 더 강력했다.

백무량은 즉시 흑영호법에게 따지러 가지 않았다. 그는 무모하지 않았다. 류진이 개발한 독으로 인해 흑영호법의 입지가 교주 앞에서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무량은 류진, 즉 암영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13장: 이중첩자, 암영의 독배

류진의 독방에 백무량이 조용히 찾아왔다. 류진은 그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차를 내주었다.

"암영. 너는 독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지. 허나, 네 독은 이미 묵룡교의 권력 다툼의 중심에 서 있다." 백무량이 날카롭게 말했다.

"호법님. 저는 독이 무림의 힘과 명예를 결정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관심사는 오직 독술의 완벽함뿐입니다." 류진이 담담하게 답했다.

"거짓말 마라! 네가 천기를 제거하고 흑영에게 모든 공로를 바쳤다지. 하지만 네가 만든 독은 완벽하지 않다. 최근 묵룡교 간부들의 내공이 미세하게 불안정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네놈이 흑영호법과 손잡고 우리 모두를 해치려 하는 것이냐!"

백무량은 류진이 흑영호법의 일당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류진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연기하듯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백 호법님. 호법님께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흑영호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약자일 뿐입니다."

"무슨 뜻이냐?"

"천기를 제거한 것은 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공로를 흑영호법이 모두 가로챘습니다. 그는 저를 교주님께 '독술 천재'로 소개했으나, 사실상 저를 독방에 가두고 제가 만든 모든 독을 자신의 공로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독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호법님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것은 흑영호법이 저의 처방에 자신의 사적인 약재를 섞어 독의 순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를 조종하여 교주님 앞에서 자신의 공적을 극대화하려 합니다!"

류진은 흑영호법이 만든 독의 역류 독성이 백무량이 의심하고 있는 '내공 불안정'의 원인이라고 교묘하게 포장했다. 흑영호법이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독을 조작했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백무량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가 발견한 '유서'와 류진의 이 증언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 간악한 놈! 내가 흑영호법을 당장 처단하겠다!"

"잠깐, 호법님!" 류진이 그를 말렸다. "흑영호법은 교주님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무공 실력도 상당합니다. 지금 호법님께서 움직이시면 역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호법님을 돕겠습니다. 저는 흑영호법이 사용하는 모든 약재와 그의 무공의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저를 이용하십시오. 저는 오직 흑영호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입니다."

류진은 백무량에게 '흑영호법의 내공 불안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독약 처방을 제공했다. 물론, 이 독약은 흑영호법을 쓰러뜨릴 만큼 강력했지만, 복용 후 닷새 안에 해독하지 않으면 복용자 자신도 치명적인 내상을 입는 '이중 독'이었다.

류진은 백무량에게 독을 제공하며 충고했다.

"호법님. 이 독은 매우 강력합니다. 흑영호법을 제거한 후, 저에게 반드시 알려주십시오. 이 독의 유일한 해독제가 저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닷새를 넘기면... 호법님의 몸도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백무량은 류진의 말을 신뢰했다. 그는 흑영호법을 제거한 후, 류진의 독을 독점하여 교주 앞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생각이었다. 그는 류진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독약을 받아들었다.


14장: 지략의 끝, 묵령과의 대면 준비

류진의 계략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백무량은 다음 날 아침, 흑영호법이 무공 수련을 하는 틈을 타 독을 음식에 타 먹였다.

독이 발효된 후, 백무량은 흑영호법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내공이 불안정해진 흑영호법은 독 때문에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결국 백무량의 일격에 치명상을 입었다.

흑영호법은 죽기 직전에야 백무량이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류진이 자신을 배신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모든 책임은 천기의 유서와 백무량의 탐욕으로 씌워졌다.

백무량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흑영호법의 시체를 묵령에게 가져갔다.

"교주님! 흑영호법은 권력에 눈이 멀어 천기의 유서를 조작하고, 새로운 독을 독점하여 우리 모두를 위협했습니다! 제가 교주님의 안위를 위해 그를 처단했습니다!"

묵룡교는 흑영호법과 백무량의 싸움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졌다. 묵령은 이 모든 상황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묵령은 백무량의 공로를 인정했지만, 그의 눈빛은 류진에게 향했다. 류진은 조용히 자신의 독방에 머물며 이 모든 일과는 무관하다는 듯 독약 제조에 몰두했다.

묵령은 백무량에게 흑영호법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대신, 묵령은 백무량을 더욱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류진을 호출했다.

"암영. 네가 묵룡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네 독은 이미 두 명의 핵심 간부를 제거했다. 네 독은 무림을 붕괴시키기에 완벽할지 모르나, 우리 조직 내부를 무너뜨리고 있다." 묵령이 류진을 응시했다.

류진은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 죄송합니다. 저의 독은 선악을 가리지 않습니다. 독은 곧 힘이고, 힘은 결국 가장 간절한 자에게 흘러갑니다. 권력욕에 눈이 먼 자들은 스스로 저의 독에 중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독의 본질입니다."

묵령은 류진의 대답에 흥미를 느꼈다. 류진은 독을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묵령은 류진에게서 자신과 같은 '강호의 질서에 대한 회의'를 읽었다.

"흥미롭군. 암영. 너는 독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제 너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겠다. 소림사 인근에 숨겨둔 나의 '비밀 병기'에 대한 관리와 추가적인 독약 개발을 맡아라. 그곳은 묵룡교의 최후의 보루다."

묵령은 류진을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끌어당겼다. 이는 류진의 능력을 최고로 신뢰한다는 증거였지만, 동시에 묵령의 직접적인 감시 아래 놓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류진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묵룡교의 가장 중요한 '비밀 병기'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생, 그 비밀 병기가 정파 무림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묵령. 네가 나를 믿는 것이 네 가장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이제 네 심장부로 들어간다.'

하지만 류진은 깨닫지 못했다. 백무량이 복용한 '이중 독'의 해독 기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그리고 백무량이 류진을 찾아오기 전에, 묵령이 그에게 다른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상황은 류진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15장: 최후의 보루, 백무량의 절규

류진은 묵령의 명을 받아 묵룡교의 비밀 병기가 숨겨진 장소, 소림사 인근의 '천공동(天空洞)'으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석굴이었지만, 그 안에는 묵룡교가 강호 전체를 위협할 만한 거대한 음모의 산물이 숨겨져 있었다.

류진이 천공동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소수의 정예 호위 무사들만 지키고 있었다. 묵령은 류진이 독에만 관심이 있고 무력이나 권력에는 관심이 없다고 확신했기에, 경계를 최소화한 상태였다.

천공동 안으로 들어서자, 류진은 숨을 멈췄다. 동굴 깊은 곳에는 수십 개의 거대한 용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용기 안에서는 기이한 약재들이 끓고 있었는데, 그 악취와 독기는 보통의 무인이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이것은 지난 생 묵룡교가 강호에 퍼뜨려 수많은 무인들을 중독시켰던, '혼돈의 독액'이었다.

류진은 자신의 임무를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독액의 순도를 높이는 작업이었지만, 그는 독액의 근본 구조를 파악하고, 유사시 이를 해독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역(逆) 처방'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때, 천공동 입구에서 격렬한 소란이 일어났다.

"비켜라! 이 놈들아! 암영을 만나야 한다! 당장 암영을 불러내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무량이었다. 류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류진은 독방 문을 열고 나섰다. 백무량은 온몸을 떨고 있었고, 핏발 선 눈은 절망과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내공은 혼란스러웠고, 피부에는 붉은 반점이 돋아나 있었다. 독이 몸 전체에 퍼지기 시작한 증거였다.

"암영! 이 악독한 놈! 네가 나에게 독을 썼지! 오늘이 닷새째다! 해독제를 내놓아라! 당장!" 백무량이 포효했다.

류진은 태연하게 백무량을 바라보았다.

"백 호법님. 제가 드린 독약은 흑영호법을 제거하기 위한 '선물'이었습니다. 제가 분명히 경고 드렸잖습니까. 닷새 안에 해독하지 않으면 스스로 내상을 입게 된다고요. 이것은 흑영호법이 호법님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을 영원히 숨기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닥쳐! 네놈이 나를 속였다! 흑영호법은 네가 제거했지! 너는 나를 이용한 것뿐이다! 해독제를 내놔!" 백무량은 이성을 잃고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백무량의 검, '적혈검'이 류진을 향해 섬광을 일으켰다. 그의 검술은 뛰어났지만, 내상을 입고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나오는 공격은 류진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류진은 '허무무진(虛無無盡)' 검결의 '무애(無涯)' 자세를 취했다. 백무량의 모든 공격 경로를 예측한 류진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몸을 미세하게 비틀어 검을 피했다. 백무량의 검은 류진의 콧날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결코 닿지 않았다.

"백 호법님. 저는 무공에 뜻이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무모하게 달려들지 마십시오."

"무공에 뜻이 없다고? 그럼 이 기이한 검술은 무엇이냐! 네놈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냐!" 백무량은 절망적으로 외쳤다.

류진은 마침내 목검을 들었다. 목검은 묵가 객잔을 떠날 때부터 계속 가지고 다녔던, 낡고 평범한 나무 조각이었다.

류진은 백무량의 다음 공격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백무량이 내공을 폭발시켜 적혈검을 수직으로 내리찍으려는 순간, 류진은 목검을 들어 그의 손목을 가볍게 쳤다.

콰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검이 백무량의 손목을 부순 것이 아니었다. 류진이 '공진'의 내공을 목검을 통해 백무량의 손목 뼈와 근육의 연결 부위에 정확하게 주입하여, 내부에서부터 파괴시킨 것이다.

"크아악!" 백무량은 비명을 지르며 적혈검을 놓쳤다. 검은 땅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

백무량은 무릎을 꿇고 류진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은 완전히 독기에 잠식되기 직전이었다.

"암영... 너... 너는 마인이냐... 아니면... 귀신이냐..."

류진은 백무량의 앞에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그저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입니다. 백 호법님. 묵룡교에 들어온 순간부터, 당신은 이미 파멸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해독제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백무량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류진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류진의 싸늘한 눈빛에 압도되어 쓰러졌다. 독과 내상, 그리고 절망 속에서 백무량은 숨을 거두었다.


16장: 묵령의 의심, 그리고 진실의 꼬리

류진은 백무량의 시체를 처리하고, 천공동을 다시 정리했다. 이 모든 소란이 묵령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다. 묵룡교의 핵심 간부 세 명이 연달아 제거되거나 쓰러졌다. 묵령은 더 이상 류진을 단순한 독술 천재로 보지 않았다.

며칠 후, 묵령은 류진을 자신의 홀로 불렀다. 묵령의 주변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무서운 기운을 내뿜는 두 명의 노인이 지키고 있었다. 묵룡교의 마지막 무력 호법과 장로였다.

"암영. 너는 묵룡교에 평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혼란을 가져왔다. 네가 만든 독으로 세 명의 핵심 간부가 사라지거나 쓰러졌다. 네놈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구나." 묵령이 차가운 눈빛으로 류진을 꿰뚫어 보려 했다.

류진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묵령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정면 돌파밖에 답이 없었다.

"교주님. 저를 의심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혼란은 저의 독 때문이 아니라, 간부들의 '불안정한 마음'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그들의 불안정한 마음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흑영호법과 백무량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이미 내상이 심했습니다. 제가 만든 독은 그저 마지막 불씨였을 뿐입니다."

류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교주님. 저는 이 모든 혼란의 배후에 '만독궁의 잔당' 이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왕 천기가 죽은 후, 그들은 천기가 남긴 독약을 이용해 우리 묵룡교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하려 했을 것입니다. 저는 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천기가 남긴 '혼돈의 독액'에 미세한 조작을 가했습니다."

류진은 천공동의 독액에서 발견했던, 지난 생 자신이 몰랐던 미세한 독성 변화를 짚어냈다. 이 변화는 실제 천기가 아닌, 류진이 직접 만든 역류 독성의 부작용이었지만, 류진은 이를 교묘하게 만독궁 잔당의 소행으로 돌렸다.

묵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묵령은 천기가 완전히 자신에게 충성한다고 믿었지만, 만독궁 잔당의 개입 가능성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묵령은 강호의 위선자들을 극도로 혐오했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의 조직을 조종하는 것을 가장 견디지 못했다.

"만독궁 잔당... 그들이 아직 살아있다니! 네놈의 증거는 무엇이냐?"

"교주님. 제가 개발한 해독제를 만독궁 잔당이 먼저 훔쳐 갔습니다. 그 해독제는 천공동에 있는 '혼돈의 독액'을 해독할 유일한 열쇠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교주님, 제가 직접 그들을 추적하여 해독제를 되찾아 오겠습니다. 그들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모든 독은 무력화될 것입니다."

류진은 묵령에게 '천공동의 독액을 해독할 수 있는 가짜 해독제'가 필요하다는 거짓 정보를 심었다. 이는 묵령이 천공동의 독액이 무력화될 가능성을 걱정하게 만들어, 자신의 추적을 허가하게 만들려는 계략이었다.

묵령은 결국 류진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류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만독궁 잔당이 천공동의 독액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은 묵령에게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좋다. 암영. 네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만약 네가 만독궁 잔당을 제거하고 해독제를 가져온다면, 너는 묵룡교의 2인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나를 기만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네 영혼은 묵룡교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류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묵룡교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지키는 임무를 벗어나, 교주의 신임을 얻고 조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한 것이다.

'묵령. 이제 너와의 승부는 무력 대결이 아닌, 지략의 끝에서 결정될 것이다.'

류진은 묵룡교를 떠나며, 만천상회에게 묵룡교의 비밀 본거지와 천공동의 위치에 대한 마지막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정파 무림이 이 정보를 신속하게 입수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제 묵룡교의 파멸은 시간문제였다. 류진은 홀로 묵룡교의 잔당을 추적하는 척하며, 묵룡교가 정파와 충돌할 때를 기다렸다.

17장: 폭풍 전야, 정파의 움직임

묵룡교를 떠난 류진은 중원의 외곽에 조용히 몸을 숨겼다. 그는 만천상회를 통해 묵룡교의 비밀 본거지 정보와 '천공동'의 위치, 그리고 묵룡교의 핵심 무력 상당수가 독으로 인해 내공이 불안정해졌다는 정보를 정파 무림의 맹주들에게 은밀히 흘려보냈다. 물론 이 정보는 만천상회의 벽란을 거쳐, 마치 정파 내부의 첩자가 알아낸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되었다.

정파 무림은 즉각 동요했다. 특히 묵룡교가 소림사 인근에 거점을 두고 '혼돈의 독액'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정파 맹주, '청명검' 서문해가 주축이 되어 급히 '토벌 연합'이 결성되었다.

류진은 서문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서문해. 지난 생 자신을 가장 앞장서서 배신하고 파멸로 몰아넣었던 위선적인 인물. 이번 생에도 그는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며 선봉에 설 것이다.

'서문해. 네가 이번 토벌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오만에 빠져 방심하는 순간, 너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 주마.'

류진의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했다.

  1. 묵룡교 붕괴: 정파 연합군이 독으로 내상이 있는 묵룡교 간부들을 섬멸하게 만든다. 류진은 이미 묵룡교의 무력을 내부에서부터 약화시켰기에, 묵룡교의 붕괴는 기정사실이었다.
  2. 묵령의 최후: 묵령은 혼자 도주하지 않고, 묵룡교의 본거지에서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묵령은 워낙 강력한 마공을 익혔기에, 정파 연합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다.
  3. 복수 실행: 정파 연합군이 묵룡교와의 전투로 인해 지쳐있을 때, 류진은 '암영'이 아닌 '멸혼검'의 모습으로 나타나 서문해를 비롯한 배신자들에게 복수한다.

류진은 정파 연합군이 묵룡교의 본거지로 진격하는 날을 기다렸다. 그는 무림인들의 동선을 피해, 묵룡교 본거지의 외곽에 숨어 조용히 '허무무진' 검결을 연마했다. 그의 목검은 이미 보이지 않는 검풍을 일으킬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다. 순수한 내공과 완벽한 검리가 결합된 류진의 힘은, 그가 지난 생에서 익혔던 마공의 힘보다 더욱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했다.


18장: 지옥도의 서막, 묵룡교의 최후

마침내, 정파 연합군 수천 명이 묵룡교의 본거지가 숨겨진 산을 포위했다. 청명검 서문해가 선두에 서서 묵룡교의 지하 거점으로 돌입했다.

전투는 류진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묵룡교의 간부들은 혼원산의 역류 독성으로 인해 내공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고, 정파의 맹렬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묵룡교의 초기 무력은 급속도로 붕괴되었다.

그러나 묵령은 달랐다. 묵령은 자신의 마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정파 연합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류진은 멀리서 전투의 양상을 지켜보았다. 피와 비명이 산을 뒤덮었고,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 찼다.

류진은 묵령의 마지막 발악이 정파 연합군의 힘을 최대한 소모시키기를 기다렸다.

전투는 사흘 밤낮으로 이어졌다. 결국, 정파 연합군은 묵룡교의 본거지 지하 홀에서 묵령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묵령은 이미 만신창이였지만, 그의 마공은 여전히 섬뜩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서문해가 최정예 무사들을 이끌고 묵령과 마지막 결전을 벌였다.

'지금이다. 묵령이 서문해의 힘을 최대한 빼놓았을 때, 그리고 서문해가 승리했다는 오만에 취했을 때.'

류진은 어둠을 뚫고 묵룡교의 본거지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는 묵룡교를 향한 복수가 아니었다. 묵룡교는 류진의 손에 의해 이미 파멸했다. 그의 복수는 오직 자신을 배신했던 정파의 위선자들에게 향해야 했다.

지하 홀. 처절한 전투 끝에, 묵령은 서문해의 검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서문해는 묵령의 심장을 꿰뚫으며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우리가 이겼다! 묵룡교는 멸망했다! 천하의 평화는 정파의 승리다!" 서문해는 피투성이가 된 채 검을 치켜들었다.

주변에 남아있는 정파 무사들은 환호했지만, 그들 모두 만신창이였다. 그들이 방심하는 바로 그 순간, 류진이 어둠 속에서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19장: 멸혼검의 재림, 복수의 서곡

지하 홀의 천장이 무너져 내린 틈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비쳤다. 그 빛 아래, 류진이 서 있었다. 낡은 하인의 옷차림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세상을 모두 멸할 듯한 차가운 냉기를 뿜어냈다.

"누구냐!" 서문해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검을 류진에게 겨눴다.

류진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서문해. 3년 전, 나를 '멸혼검'이라 부르며 배신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나는 너희들의 위선을 지키기 위해 마도(魔道)의 오명을 뒤집어썼던 류진이다."

서문해와 남아있던 모든 정파 무사들은 경악했다.

"류진?! 네놈이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냐! 분명히... 분명히 내 검에 죽었을 터인데!" 서문해의 얼굴은 공포로 질렸다.

"죽음? 나는 네놈들의 지옥에서 돌아왔다. 네놈들의 위선이 나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강호의 진정한 악은 묵룡교가 아니라, 바로 너희 정파의 오만과 기만이라는 것을."

서문해는 당황했지만, 이내 분노로 광기를 드러냈다.

"헛소리 마라! 네놈은 이미 마도에 물든 마인이다! 오늘, 내가 다시 한번 네놈을 처단하여 강호의 평화를 지키겠다!"

서문해는 검을 들고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검술은 여전히 빠르고 강력했지만, 묵령과의 전투로 인해 기력이 극도로 소모된 상태였다. 그리고 류진에게는 그의 모든 공격이 훤히 보였다.

류진은 지난 생 자신이 썼던 '패혼(破魂)'검을 대신하여, 품속에서 낡은 목검을 꺼내 들었다.

"네놈의 검은 이제 나를 해할 수 없다. 서문해. 네놈의 검술은 오직 '빛'에만 의존하지만, 나의 검은 '허무(虛無)' 그 자체다."

류진은 목검을 휘둘렀다. 빠르지도, 강력해 보이지도 않는 단순한 일격. 하지만 목검이 서문해의 검과 부딪치는 순간, '공진'의 내공이 폭발했다.

파아앙!

서문해는 자신의 검이 쇠가 아닌 모래처럼 내부에서부터 부서지는 듯한 끔찍한 충격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쳤다. 서문해의 검, '청명검'은 산산조각 났고, 그의 손목 뼈는 목검의 미세한 진동에 의해 가루가 되었다.

"크아악! 이... 이럴 수가! 나의 검이! 나의 내공이!" 서문해는 절규했다.

류진은 쓰러진 서문해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빛은 자비가 없었다.

"3년 전, 너희들은 나를 죽이고 나의 검을 부쉈다. 이번에는 네놈의 검만이 아니라, 네놈의 가장 소중한 '명예'와 '존재'를 부수겠다."

류진은 서문해의 몸에 '공진'의 일격을 연속으로 가했다. 외상은 없었지만, 서문해의 내공이 모이는 모든 기맥과 단전이 미세하게 파괴되었다. 서문해는 모든 무공을 잃고, 영원히 폐인이 되었다.

류진은 폐허가 된 지하 홀을 걸어 나왔다. 남아있던 정파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류진에게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그들은 류진이 묵룡교를 멸망시킨 영웅이 아닌, 자신들을 처단하러 온 진정한 마인이라고 생각했다.

류진은 홀로 묵룡교의 본거지를 떠났다. 그의 복수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강호는 묵룡교의 멸망으로 잠시 평화를 찾겠지만, 류진이라는 '암영검'의 그림자는 이제 정파 무림 전체를 뒤덮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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