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검제 (黑龍劍帝)

2025. 12. 8. 20:24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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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절벽 아래에 묻힌 과거

천하에서 가장 잊혀진 땅, 월산(月山).

그곳은 무인(武人)들에게는 금지된 공간이었다. 솟구친 봉우리들은 마치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웠고, 일 년 중 삼분의 이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 생명이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무인들이 진정으로 월산을 피하는 이유는 단순한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월산의 가장 깊은 골짜기, 일명 '흑혈곡(黑穴谷)'. 그곳은 천 년 전, 마교(魔敎)의 잔존 세력이 최후를 맞이한 저주의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흡!"

어둠이 짙게 깔린 흑혈곡의 바닥, 두 발이 땅에 닿을 틈도 없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이름은 현욱(玄煜).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그는 얇은 검은색 무복(武服) 차림에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현욱의 손에는 날카로운 검이 들려 있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양손에는 굵직한 쇠추가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하나에 오십 근(斤), 도합 백 근의 무게. 그는 그 무게추를 달고도 경공(輕功)의 극의라 불리는 '잔영각(殘影脚)'을 수련하고 있었다.

"하아... 부족해."

현욱이 허공을 박차고 절벽을 오르내릴 때마다 쇠추가 땅을 스쳤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속도는 빛과 같았고, 움직임은 바람 같았다. 일반 무인이라면 백 근의 무게를 짊어지고 걷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터, 현욱은 마치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자유로웠다.

그의 수련은 고행에 가까웠다. 열 살 때부터 시작된 이 지옥 같은 단련은 오직 한 노인, '흑곡거사(黑谷居士)'라 불리는 스승의 지시 때문이었다.

"네 몸에 흐르는 것은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힘이다. 이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너는 마(魔)가 되거나, 혹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네 단전(丹田)의 기(氣)가 안정될 때까지, 너는 너의 힘을 증오하고 경계해야 한다."

스승은 현욱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직 무거운 쇠추를 매달고 달리게 했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토납법(吐納法)만을 가르쳤다. 내공(內功)을 운용하는 비법이나, 무공(武功)의 초식은 단 한 번도 전수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내려와라, 아들아."

묵직한 목소리가 흑혈곡을 울렸다. 현욱의 스승이자 양부인 흑곡거사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에 깎여 주름졌으나, 두 눈만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현욱은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쇠추를 풀자 발목이 공기처럼 가벼워졌다.

"오늘은 좀 빨랐습니다, 사부님."

"빠르다고 전부가 아니다. 네가 지금껏 익힌 것은 그저 기초 중의 기초, 몸을 억누르는 법뿐이다. 진정한 무(武)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흑곡거사는 현욱에게 낡은 목검 하나를 건넸다. 나무랄 데 없이 평범한 목검이었다.

"이제부터 너는 이 목검으로 나를 상대해야 한다. 단, 네 몸의 내공은 단 한 줌도 꺼내지 마라. 오직 네 몸의 움직임과 힘의 반동만을 이용해라."

현욱은 긴장했다. 스승과의 첫 실전 대련.

"예."

현욱이 목검을 잡고 자세를 취하자, 흑곡거사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흑룡이 깨어나는 듯한 살기(殺氣)가 뿜어져 나왔다. 현욱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노인이 감추고 있는 힘은 천하의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순간, 흑곡거사가 움직였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빠른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거대한 산맥이 움직이는 것처럼 묵직하고 예측 불가능했다.

콰앙!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흑혈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현욱은 온몸의 뼈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충격에 휘청였다. 그는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일격은 마치 천지를 가르는 것 같았다.

"겨우 이 정도인가!"

흑곡거사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현욱은 오직 방어에만 집중해야 했다. 공격이 너무 빨라 보이지도 않았다. 현욱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몸이 기억하는 감각과 피할 수 없는 곳만 막아내는 본능뿐이었다.

대련은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다. 현욱은 수십 번을 맞았고, 온몸에 멍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이 모든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었다.

해가 뜨자 흑곡거사가 목검을 거두었다.

"충분하다. 일 년 동안 매일 나를 상대해라. 네가 나를 상처 입히는 그날, 너에게 천하의 진정한 무공을 전수할 것이다."

현욱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은 피범벅이 되었지만, 눈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날 밤, 흑곡거사는 현욱에게 특별한 물건을 하나 건넸다.

"이것은 흑룡검(黑龍劍)의 검집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빈 검집이지만, 네가 진정한 검제(劍帝)의 길을 걸을 때, 이 안에 흑룡의 혼이 담긴 검이 나타날 것이다."

현욱은 검집을 받아들었다. 검집은 차가웠고, 검은색이었으며, 용이 승천하는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부님, 제 부모님은 대체 누구십니까?"

현욱은 매번 묻고 싶었지만 감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용기를 내어 던졌다.

흑곡거사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네 부모는... 천하를 뒤흔들었던 인물들이다. 너는 천하의 모든 무인들에게 쫓기는 운명을 타고났다. 이 검집이 너의 숙명이다. 네가 강해지는 것 외에는 살 방법이 없다."

그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현욱은 검집을 꽉 움켜쥐었다. 알 수 없는 숙명과 거대한 힘이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에 현욱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러야 했다.

제1장: 하산, 그리고 열린 강호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현욱은 매일 스승과 대련했고, 매번 패배했다. 하지만 패배할 때마다 그의 몸은 더욱 단단해졌고, 그의 검은 더욱 예리해졌다. 백 근의 쇠추는 어느덧 그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제 그는 쇠추를 달고도 일반 무인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후우..."

현욱은 목검을 휘둘렀다. 이제 그의 목검은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었다. 목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바람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비록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검술은 이미 일류 고수 반열에 들어섰다.

"오늘도 졌다."

흑곡거사는 현욱의 목검을 가볍게 튕겨냈다. 현욱의 검은 정확히 스승의 미간을 노렸으나, 스승의 목검은 그의 목을 이미 겨누고 있었다.

"일 년 만에 천하의 고수들을 넘어섰구나. 네가 만약 내공을 운용한다면, 천하에 당해낼 자가 몇 없을 것이다."

흑곡거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아직 사부님을 상처 입히지 못했습니다."

"상처 입히는 것만이 승리가 아니다. 너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피하고 막아냈다. 이제 너는 강호로 나갈 자격이 있다."

현욱은 깜짝 놀랐다. 강호(江湖)로 나갈 자격이라니.

"강호로 나가라. 너는 네 부모의 원수를 갚고, 네 숙명을 완수해야 한다. 네 부모의 유산인 '천룡비급(天龍秘笈)'의 나머지 절반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찾지 못하면 네 몸의 힘은 언젠가 널 파멸시킬 것이다."

"천룡비급이라니요?"

"그것은 네 부모가 남긴 무공의 정수다. 네가 지금껏 익힌 토납법과 몸의 움직임은 비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천하의 무림맹(武林盟)이 숨기고 있다."

현욱은 혼란스러웠다. 천하의 무림맹이 자신의 부모와 관련이 있으며, 그들이 자신의 비급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에.

"강호는 흑혈곡과는 다르다. 너는 무림맹, 마교, 그리고 네 부모를 추적하는 수많은 그림자들과 싸워야 한다. 네 힘을 드러내지 마라. 너는 이제 '무명자(無名者)'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름 없는 방랑자가 되어라."

흑곡거사는 현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그리고 이 검집을 절대 잃어버리지 마라. 언젠가 이 검집이 너에게 진정한 검을 선사할 것이다."

그날 오후, 현욱은 흑곡거사에게 절을 올리고 월산을 내려섰다. 십 년간 갇혀 지냈던 세상 밖으로의 첫걸음이었다.

월산을 벗어나자 세상은 현욱이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의 복장은 화려했고, 도시는 활기가 넘쳤으며, 무인들의 기운은 곳곳에 넘실거렸다.

현욱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만청루(萬淸樓)'라는 객잔이었다. 강호의 정보가 모인다는 소문난 곳이었다. 그는 낡은 무복 차림에 얼굴을 가린 채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요즘 강호는 말이 많지 않소. '혈수무제(血手武帝)'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진짜인가?"

옆 테이블에서 덩치 큰 장정 둘이 속삭였다.

"쉿! 조용히 하게. 그분은 무림맹의 일곱 무제(武帝) 중 한 분이셨네. 누가 감히 그분을 해쳤겠나? 하지만 시체가 맞다는군. 모든 피가 빨려나가 미라처럼 변했다지."

"흡혈귀의 소행인가? 아니면 마교의 짓인가?"

"마교의 짓이라기엔 너무 깔끔해. 듣기로는 '천마신궁(天魔神宮)'의 흔적은 아니라고 하더군. 아마도... 천하를 뒤흔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일세."

현욱의 귀가 번쩍 뜨였다. 혈수무제. 무림맹의 무제가 죽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현욱의 관심은 '천마신궁'에 쏠렸다. 스승이 과거 마교의 잔존 세력이 흑혈곡에서 최후를 맞이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거대한 마(魔)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현욱은 조용히 탁자에 은자(銀子) 두 냥을 올려두고 객잔을 나섰다.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천룡비급의 나머지 절반을 찾기 위해 무림맹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것.

제2장: 우연한 조우와 흑룡검의 울림

현욱이 강호에 발을 디딘 지 일주일. 그는 겉으로는 평범한 행상인으로 위장하여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흑룡검의 검집은 허리춤 속에 깊숙이 감춰져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현욱은 '청하(淸河)'라는 작은 도시 근처의 숲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숲 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계집! 얌전히 우리랑 가자. 넌 '벽제단(辟除團)'의 첩자가 아니더냐!"

"무슨 소리냐! 나는 그저 약초를 캐는 소녀일 뿐이다. 당장 비켜라!"

여인의 목소리는 강단이 있었으나, 곧이어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변했다.

현욱은 망설였다. 스승은 힘을 쓰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무고한 사람이 다치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 속에는 다섯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한 명의 소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소녀는 열여섯, 일곱 살 정도로 보였고, 푸른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단검 하나가 들려 있었으나, 이미 힘에 밀려 위기에 처해 있었다.

"흥, 그깟 단검으로 어디를 막으려 하는가!"

사내들 중 하나가 소녀의 단검을 걷어차 날려버렸다. 단검은 나무에 박혔고, 소녀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현욱은 조용히 다섯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몸의 힘과 속도만을 이용했다.

"잠시만."

현욱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사내들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들의 눈에는 현욱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너는 또 누구냐? 우리 '천붕회(天鵬會)'의 일에 끼어들지 마라!"

천붕회는 청하 일대에서 악명을 떨치는 소규모 무장 단체였다.

"나는 지나가던 나그네다. 이 소녀를 놓아주면 없던 일로 하겠다."

"하! 웃기는군. 이 녀석을 쳐라!"

두 명의 사내가 동시에 현욱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주먹에는 어설프지만 독랄한 내력(內力)이 실려 있었다.

현욱은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는 이미 상대방의 공격 경로와 약점이 보였다. 그는 백 근의 쇠추를 달고 수련한 몸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했다.

팟! 퍽!

현욱의 주먹은 상대방의 주먹과 부딪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가락 끝이 상대방의 관절을 스쳐 지나갔다. 정확히 힘이 가장 집중되는 순간, 현욱은 상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힘을 더해 공격했다.

두 명의 사내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그들은 관절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현욱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닌 순수한 육체의 힘과 절묘한 타이밍은 이미 천하 제일이었다.

"이, 이럴 수가!"

남은 세 명의 사내가 당황했다. 그들은 동시에 검을 뽑아 현욱을 겨눴다.

"함께 공격해라! 이 녀석은 고수다!"

세 개의 검이 현욱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현욱은 흑혈곡에서 스승의 맹렬한 검격을 일 년간 막아냈다. 이들의 검격은 현욱에게는 마치 느린 동작처럼 느껴졌다.

현욱은 몸을 뒤로 젖히며 첫 번째 검을 피했고,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두 번째 검을 회피했다. 세 번째 검이 그의 옆구리를 스치려는 순간, 현욱은 왼손으로 세 번째 사내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악!"

현욱은 잡은 손목을 비틀어 검을 빼앗았고, 그 검을 이용해 나머지 두 사내의 검을 쳐냈다. 쨍그랑! 두 사내의 검은 산산조각 났다.

현욱은 검을 휘둘러 그들의 목에 살짝 상처를 냈다. 피가 솟구치자 사내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꺼져라. 다시는 약자를 괴롭히지 마라."

현욱의 말에 사내들은 혼비백산하여 숲 속으로 도망쳤다.

현욱은 그제야 뒤를 돌아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욱을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소?"

"아... 예,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인."

소녀는 절을 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현욱은 소녀의 이마에 맺힌 땀과 떨리는 몸을 보고 그녀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짐작했다.

"나를 은인이라 부르지 마시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오."

"제 이름은 설화(雪花)입니다. 은인의 성함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나는 무명자(無名者)다."

현욱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 했다. 그때, 그의 허리춤에 감춰두었던 흑룡검의 검집에서 희미한 검은 빛이 흘러나왔다.

"어... 이건?"

설화의 눈이 검집에 고정되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현욱에게 다가와 검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검집... 어디서 나신 건가요? 검은 용의 문양, 그리고 이 서늘한 기운..."

현욱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왜 그러시오?"

설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검집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흑룡검'의 검집이 아닙니까? 저희 문파의 비록에 따르면, 흑룡검은 천 년 전 천마신궁을 봉인했던 신물이라고..."

현욱은 숨을 들이켰다. 스승이 말한 '흑룡검'이 설화라는 소녀의 입에서 나왔고, 그 검이 마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누구시오? 벽제단의 첩자가 아니라면?"

설화는 현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청룡문(靑龍門)'의 문주, 설화입니다. 그리고 저희 청룡문은 천 년 전 흑룡검의 검을 지키던 문파의 후예입니다."

청룡문. 현욱은 강호의 무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문이었다. 하지만 그 청룡문의 문주가 어찌하여 이 외딴곳에서 약초를 캐고, 천붕회의 공격을 받고 있었단 말인가.

"청룡문 문주가 왜 이런 곳에 있소?"

설화의 얼굴이 슬픔으로 뒤덮였다.

"저희 문파는... 며칠 전, 알 수 없는 세력의 공격을 받아 멸문했습니다. 저 혼자 간신히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이 검집에 관련된 비밀이었습니다."

현욱은 직감했다. 강호에 새로운 폭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소녀는 자신의 숙명과 깊이 얽혀 있음을.

제3장: 청룡문의 비밀과 추격자

"멸문이라니... 누가 감히 청룡문을 공격했소?"

현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청룡문은 비록 무림맹의 중심 세력은 아니었으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파(正派)의 일원이었다.

설화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고, 사용하는 무공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았고,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들은 저희 문파의 '천룡도보(天龍圖譜)'를 노렸습니다."

천룡도보. 현욱의 머릿속에 스승이 말했던 '천룡비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천룡도보? 그것이 천룡비급과 관련이 있소?"

설화는 현욱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천룡비급이라니요? 저희 문파에는 대대로 '천룡도보'라는 비전만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흑룡검의 힘을 다루는 법을 기록한 그림 문서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도보를 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제가 미리 감춰두었거든요."

현욱은 직감했다. 자신의 부모가 남긴 천룡비급은 아마도 두 개의 문서로 나뉘어져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흑곡거사에게 전해진 무공의 기초(현욱이 익힌 토납법과 움직임), 다른 하나는 청룡문에 보관된 무공의 정수(흑룡검을 다루는 법).

"지금 그 도보는 어디에 있소?"

"청룡문의 은신처에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곳으로 돌아가면 그들에게 잡힐 것이 뻔합니다."

현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소녀는 자신의 숙명과 흑룡검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쥐고 있었다. 이 소녀를 보호하는 것이 곧 자신의 길을 찾는 것임을 깨달았다.

"좋소. 내가 당신을 보호하겠소. 대신 당신은 나에게 천룡도보의 비밀을 알려주시오. 나 또한 그 도보와 흑룡검의 비밀을 알아야 할 운명에 놓인 사람이다."

현욱은 자신의 허리춤에 감춰진 흑룡검의 검집을 설화에게 보여주었다.

설화는 검집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그녀는 현욱의 눈에서 진실을 보았다. 이 청년은 단순히 고수가 아니라, 흑룡검의 주인이 될 숙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무명자님. 저는 당신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추격자들이 곧 이곳에 올 것입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도보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문파에 전해 내려오는 '벽제단(辟除丹)' 제조법도 노리고 있습니다."

벽제단. 무림에서 해독제로 명성이 높은 영약이었다.

"벽제단 제조법까지? 그들은 대체 누구란 말이오?"

"그들을... 저는 '구천마룡단(九天魔龍團)'이라 부릅니다. 천마신궁의 그림자들이라고 합니다."

구천마룡단! 천마신궁의 잔존 세력. 현욱은 스승의 경고를 떠올렸다. 마교의 그림자들이 강호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숲 속에서 일제히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수십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숲을 가로지르며 현욱과 설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왔군."

현욱은 설화를 자신의 등 뒤에 세웠다. 그는 굳게 다짐했다. 아무리 스승의 경고가 있었을지라도, 이제는 자신의 힘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고.

"설화 낭자, 눈을 감으시오."

현욱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십 년 동안 쇠추로 억눌러왔던 그의 단전 깊은 곳에서, 칠흑 같은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맑은 기운이 아니었다. 마치 깊은 밤의 어둠처럼, 혹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거대한 힘이었다.

그 기운이 전신을 돌아 기경팔맥(奇經八脈)을 타고 흐르자, 현욱의 온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붉게 물들었고, 그의 몸은 단숨에 천하의 고수들을 뛰어넘는 경지로 도약했다.

"흡... 이것이 내 힘인가."

현욱은 목검 대신 아까 빼앗은 검은색 강검(鋼劍)을 들었다.

"구천마룡단의 잔당들! 더 이상 천하를 더럽히지 마라!"

현욱이 외치자, 검은 복면을 쓴 수십 명의 구천마룡단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고,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은 사악한 마기(魔氣)를 뿜어냈다.

"네놈은 누구냐! 우리의 사냥에 방해하지 마라!"

구천마룡단의 선두에 선 자가 현욱에게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현욱은 검은 기운이 휘감긴 검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깊고 웅장하며, 마치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흑룡의 포효와 같았다.

"나는 흑룡검제(黑龍劍帝)의 계승자. 너희 마교의 잔당을 베어낼 자다!"

현욱은 외침과 동시에 움직였다. 그의 검은 흑룡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밤하늘을 갈랐다.

첫 번째 초식. '흑룡멸천(黑龍滅天)'.

현욱의 검 끝에서 검은 기운이 폭발하며 열 명의 무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들이 막을 틈도 없이, 열 명의 무사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의 몸에는 끔찍한 검은 검기(劍氣)의 상처가 남았고, 그들의 단전은 모조리 파괴되었다.

이것이 현욱이 처음으로 사용한 흑룡의 힘이었다. 억눌려 있던 천룡비급의 힘은 마교의 마기에 반응하여, 그들을 섬멸하기 위해 폭발한 것이다.

남은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감히 눈앞의 청년이 천마신궁의 힘을 능가하는 마(魔)와 같은 기운을 뿜어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현욱은 숨을 골랐다. 내공을 해방하자 온몸에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 힘은 너무나도 짜릿하고 강력했다.

"다음은 너희 차례다."

현욱이 다시 한번 검을 들자, 구천마룡단의 무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감히 정면 대결을 포기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현욱은 그들을 모두 추격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아직 해방된 힘에 완전히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강해 보이는 선두 무사 한 명만을 추격했다.

"놓치지 않는다!"

현욱은 경공의 잔영각에 내공을 더해 빛처럼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구천마룡단의 선두 무사는 도망치면서도 현욱의 추격을 감지하고 소름이 돋았다.

"저, 저것은 인간의 속도가 아니야! 악마인가!"

무사는 절망적인 외침과 함께 숲 속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현욱은 그를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추격했고, 마침내 깊은 협곡 앞에서 무사를 따라잡았다.

무사는 현욱을 향해 마지막 발악을 시도했다. 그의 검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현욱의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

현욱은 가볍게 검을 피하고, 자신의 강검을 무사의 가슴에 정확히 찔러 넣었다.

"크헉!"

무사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현욱은 그의 복면을 벗겨냈다. 그 얼굴은 의외로 평범한 중년 무사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붉은색의 작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 문신은...?"

"네놈... 결국 흑룡의 계승자였나... 크크크... 네 힘은 결국 너를 파멸시킬 것이다. 네 부모가 그러했듯이... 천하가 너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무사는 마지막 저주를 퍼붓고 숨을 거두었다.

현욱은 강검을 빼내고 핏자국이 묻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떨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들이 자신과 설화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현욱은 무사의 품속에서 작은 은패(銀牌) 하나를 발견했다. 은패에는 '멸(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멸..."

멸(滅). 파멸의 단어. 현욱은 이 은패가 구천마룡단의 중요한 증거임을 직감했다.

그때, 현욱의 뒤에서 설화가 달려왔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현욱을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무명자님! 괜찮으신가요?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괜찮소. 이 힘은... 내가 통제해야 할 또 다른 나의 모습이오."

현욱은 은패를 주머니에 넣고 설화에게 말했다.

"이제 청룡문의 은신처로 가야겠소. 천룡도보를 확보하고, 무림맹과 구천마룡단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하오."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현욱에 대한 강렬한 신뢰와 의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은 밤하늘 아래, 숙명이 이끄는 강호의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현욱은 흑룡검의 검집을 꽉 움켜쥐었다. 그 검집은 그의 숙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강호는 이제 잠에서 깨어난 흑룡의 포효로 뒤덮이기 시작할 것이다. 현욱의 발걸음은 곧 천하를 뒤흔들 거대한 폭풍의 전조였다.

 

제4장: 천룡도보, 흑룡의 부활 현욱과 설화는 구천마룡단의 추격을 피해 월산을 등진 방향, 북쪽으로 이틀 밤낮을 걸었다. 현욱은 내공을 해방한 이후로 몸에 남아있는 흑룡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토납법을 수련했다. 그 힘은 마치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격렬했지만, 그 강렬함 속에 현욱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가 있었다.

"무명자님, 괜찮으신가요? 얼굴빛이 좋지 않습니다." 설화는 현욱의 뒤를 따르며 걱정스레 물었다. 현욱의 주변 공기는 희미하게 서늘했고, 그의 눈빛은 깊은 밤의 어둠을 담고 있었다. "괜찮소. 다만... 내가 가진 힘이 나를 압도하려 하는군. 스승님의 경고가 이해가 됩니다." 현욱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내공을 해방하는 것은 마치 통제 불가능한 댐의 수문을 연 것과 같았다.

설화는 묵묵히 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현욱의 어둠 속에서 청룡문이 수호했던 전설 속의 흑룡을 보았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경외감이었다. "저희 청룡문의 은신처는 멸문될 때를 대비해 마련한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하룻밤 거리의 '운무협(雲霧峽)'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운무협이라... 그곳이라면 무림맹의 눈을 피하기 좋겠군."

다음 날 새벽, 두 사람은 마침내 운무협 깊은 곳에 위치한 작은 폭포 뒤의 은밀한 동굴 입구를 발견했다. 동굴 입구는 폭포수가 막고 있어 밖에서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설화는 익숙한 손길로 폭포 뒤의 바위를 밀어 입구를 열었고, 두 사람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작은 석실 하나가 마련되어 있었다. 습기가 차 있었지만, 잘 정돈된 선반과 오래된 목함들이 청룡문의 마지막 흔적임을 알려주었다.

"이곳입니다. 저희 문주들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설화는 석실 한쪽에 놓인 평범한 돌탁자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팍에 숨겨왔던 작은 청옥(靑玉) 조각을 꺼내 탁자의 홈에 끼워 넣었다. 치익-! 돌탁자는 마찰음과 함께 옆으로 밀려났고, 그 아래에 숨겨진 비밀 공간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고 긴 비단 두루마리 하나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저것이... 천룡도보입니다." 설화의 목소리는 경건함으로 떨렸다.

현욱은 숨을 삼키고 두루마리에 다가섰다. 비단은 짙은 남색이었고, 펼치지 않아도 그 안에서부터 고대의 신비로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현욱이 두루마리에 손을 대자, 그의 허리춤에 감춰진 흑룡검의 검집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검집에 새겨진 희미했던 검은 용 문양이 칠흑 같은 빛을 발하며 동굴 내부를 순식간에 어둠으로 뒤덮었다.

"아아... 검집이!" 설화는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현욱은 검집을 꺼내 들었다. 검집은 뜨겁게 달아올라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맥동했다. 그 맥동에 반응하듯, 현욱의 단전에 억눌려 있던 흑룡의 기운이 다시 한번 솟아올라 검집과 공명했다.

콰아앙! 공명과 함께 두루마리가 스스로 펼쳐졌다. 그 안에는 글자 대신 복잡하고 기괴한 형상의 그림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그림들은 인간의 경락(經絡)과 기(氣)의 흐름을 상징하는 듯했고, 그 중심에는 흑룡이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듯한 거대한 문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문양을 보는 순간, 현욱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십 년간 억지로 억눌렀던 자신의 몸의 힘, 흑룡의 기운을 다스리는 모든 비밀이 그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

"이것은... 힘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힘을 용(龍)처럼 휘두르는 법이군요." 현욱은 무아지경에 빠져 도보의 첫 페이지에 집중했다. 그림은 정교했고, 현욱이 스승에게 배운 토납법과 경공이 이 비급의 '입문' 단계였음을 깨달았다. 그림의 첫 장은 '용각(龍脚)'의 운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경공에 내공을 더하여 용의 발톱처럼 허공을 박차는 극한의 보법이었다.

"무명자님, 천룡도보를 완전히 익히시면 흑룡검의 진정한 주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설화는 현욱의 잠재된 힘이 마교의 그림자를 완전히 소멸시키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였다.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폭포수 소리 너머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바위가 깨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궁! 동굴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외부의 방벽을 무자비한 힘으로 부수고 있었다.

"누, 누가 온 거지요? 이 은신처는 아무도 모를 텐데!" 설화가 두려움에 떨었다.

현욱은 펼쳐진 도보를 재빨리 걷어 설화에게 맡겼다. 흑룡의 기운이 그의 전신을 다시 한번 감싸기 시작했다. "구천마룡단이 다시 온 것 같지 않소. 저 기운은... 마(魔)의 기운이 아니오. 정파(正派)의 기운이오. 하지만 그 힘은 흑곡거사님과 맞먹을 정도로 강하군." 현욱은 무사의 품에서 얻은 은패 '멸'을 떠올렸다. 마교뿐 아니라, 무림맹 또한 자신을 쫓고 있다는 스승의 경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콰앙! 마침내 동굴 입구를 막던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 났다. 폭포수가 들이치며 동굴 안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입구에는 단 한 명의 무인이 서 있었다. 그는 흰색 비단 무복 차림에, 허리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보검(寶劍)을 차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중년이었지만, 깨끗하고 단정했으며,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청룡문의 문주, 설화 아가씨와... 그리고 흑룡의 잔재를 지닌 자가 여기 숨어 있었군."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깊은 내공이 실려 동굴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너희가 이곳에 숨긴 '천룡도보'를 내놓아라."

현욱은 강검을 단단히 쥐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정파의 무인 같아 보이는데, 왜 청룡문을 공격하고, 마교 잔당처럼 행동하시오?"

흰옷의 무인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든 상관없다. 나는 무림맹의 '칠대 무제' 중 한 명이었던, 혈수무제 대인의 사제(師弟)다. 내 이름은 '천검왕(天劍王)', 명예를 잃은 자의 그림자이지." 천검왕! 강호에서 검술의 극의를 이룬 몇 안 되는 고수 중 하나. 그가 바로 무림맹의 고위 무인이자, 현욱의 부모가 남긴 비급을 노리는 또 다른 추격자였다.

"내 사형은 마교 잔당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 마교의 잔당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너희가 가진 천룡도보이며, 그 도보에 담긴 힘은 천 년 전 천마신궁을 봉인한 힘이 아니라, 마교가 창조한 궁극의 '마공(魔功)'이라는 것이 무림맹의 판단이다." 천검왕의 눈빛이 현욱에게 고정되었다. "네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 그것이 곧 마공의 증거다. 네놈의 부모가 천하의 무인들에게 쫓겼던 이유도 바로 그 마공 때문이었다."

현욱은 충격을 받았다. 스승은 억누를 힘이라 했고, 설화는 신물이라 했지만, 천검왕은 그것을 '마공'이라 단정했다. 현욱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흑룡의 기운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거짓말 마시오! 나는 마공을 익히지 않았소!" "네 힘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무림맹은 더 이상 강호에 혼란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네놈을 베어, 그 마공의 근원을 제거하겠다!"

천검왕이 손을 들자, 허리춤의 보검이 스스로 검집에서 뽑혀 나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그 검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도보를 가지고 먼저 탈출하시오, 설화 낭자!" 현욱은 설화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설화는 망설였지만, 현욱의 강렬한 눈빛을 보고 천룡도보가 담긴 두루마리를 품에 안고 동굴의 다른 출구로 몸을 숨겼다.

현욱은 흑룡의 기운을 전신에 끌어올렸다. 붉게 물든 눈빛은 천검왕을 향했다. "천하의 무림맹이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고, 남의 비급을 강탈하려 드는군. 이것이 정파의 정의인가?"

"정의는 강자가 세우는 법이다." 천검왕의 검이 움직였다. 그의 검은 단순한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의 속도를 넘어섰고, 검이 움직이는 궤적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터져 나왔다. '천검십이식(天劍十二式)'의 첫 번째 초식, '섬광천뢰(閃光天雷)'. 현욱은 막을 수 없었다. 흑곡거사와의 일 년간의 대련으로 단련된 현욱의 본능만이 그를 살렸다.

파앙! 현욱은 몸을 뒤로 젖히며 겨우 검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무복은 천검왕의 검기(劍氣)에 의해 찢어졌고, 어깨에는 깊은 상처가 났다.

"겨우 피하다니, 대단하군. 하지만 네놈의 마공은 아직 미숙하다. 죽어라!" 천검왕의 두 번째 검격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검이 열 개의 잔상을 만들며 현욱의 전신을 봉쇄했다. 현욱은 피할 곳이 없었다.

현욱은 절체절명의 순간, 천룡도보에서 언뜻 보았던 '용각'의 그림을 떠올렸다. 경공을 운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발끝에 흑룡의 기운을 응축하여 땅을 박차는 극한의 반동을 이용하는 무공이었다.

"흡!" 현욱은 발끝에 흑룡의 기운을 집중했다. 콰앙! 그의 발이 땅을 박차자, 동굴 바닥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현욱은 열 개의 잔상을 뚫고 천검왕의 눈앞으로 순식간에 도달했다. 그의 속도는 천검왕의 검보다 빨랐다.

현욱의 강검이 흑룡의 기운을 휘감고 천검왕의 심장을 겨냥했다. "흑룡멸천!" 천검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토록 미숙한 청년이 자신의 천검십이식을 뚫고 들어오다니! 그는 급히 검을 회수하여 현욱의 강검을 막아냈다.

쨍그랑! 두 개의 검이 부딪치는 순간, 흑룡의 검은 기운과 천검왕의 푸른 검기가 폭발하며 동굴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동굴 천장에서 돌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

현욱은 힘의 반동으로 뒤로 밀려났고, 천검왕 또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천검왕의 눈빛은 경악으로 가득했다. "이 힘은... 천마신궁의 마공이 아니다! 이토록 순수한 파괴력은... 대체 무엇이냐!" 그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현욱의 흑룡 기운이 그의 내공에 깊은 충격을 주었음을 의미했다.

현욱은 숨을 헐떡였지만, 승기를 잡았음을 알았다. 천검왕은 자신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욱은 자신의 생명을 건 힘의 해방으로 그 믿음을 부수었다.

"당신은 나의 원수가 아니오. 하지만 나의 길을 막는다면, 당신이 누구든 베어낼 것이다." 현욱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다시 한번 천검왕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그 순간, 동굴 밖에서 또 다른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번에는 세 명의 강력한 기운. 마교의 기운이 아니었고, 천검왕과 같은 정파의 기운도 아니었다. 그 기운은 낯설었지만, 피 냄새와 함께 강력한 살기(殺氣)를 뿜어냈다.

"이런, 지체할 시간이 없군. '사도련(邪道聯)'의 놈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천검왕은 상황이 복잡해졌음을 직감했다. 무림맹과 마교 외에, 사파(邪派) 세력까지 끼어든 것이다.

천검왕은 현욱을 노려보았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다, 흑룡의 잔재여. 하지만 명심해라. 무림맹은 네놈이 강호에 혼란을 가져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천검왕은 빠르게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밖에서는 새로운 사파 무인들과 천검왕의 교전 소리가 들려왔다.

현욱은 긴장이 풀려 무릎을 꿇었다. 온몸의 흑룡 기운이 사그라들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때, 설화가 다시 돌아와 현욱을 부축했다.

"무명자님! 저... 다른 출구로 나가려 했는데, 사파 무인들이 이미 협곡을 포위했습니다!" "사파 무인들까지..."

현욱은 낡은 석실을 둘러보았다. 천룡도보의 비밀을 풀 열쇠는 찾았지만, 강호는 그에게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마교, 무림맹, 그리고 이제 사파까지. 모든 세력이 천룡비급의 비밀을 노리고 현욱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현욱은 설화에게서 천룡도보를 받아 들었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 수 없소. 사파 무인들이 동굴로 들어오기 전에, 이 도보를 해석해야 하오. 이 도보만이 나를, 그리고 강호를 구할 유일한 희망일지 모르오." 현욱은 흑룡검의 검집을 다시 꽉 움켜쥐었다. 검집은 이제 막 깨어난 흑룡처럼 웅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은신처를 빠져나와 운무협의 짙은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현욱은 깨달았다. 강호는 그에게 '무명자'로 남을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흑룡의 힘을 완전히 다스리는 '흑룡검제'가 되어, 천하의 모든 위협에 맞서 싸워야 했다.

 

제5장: 운무협의 혈투, 흑룡의 발톱 운무협(雲霧峽)은 그 이름처럼 일 년 내내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 지형을 파악하기 힘든 곳이었다. 현욱과 설화는 이 짙은 안개가 일시적으로 사파 무인들의 추격을 지연시켜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협곡 깊숙이 숨어들었다.

"사도련(邪道聯)의 놈들은 개개인의 무공은 강하나, 조직적인 움직임에는 약합니다. 이 안개 속에서는 그들의 장기가 봉쇄될 것입니다." 설화는 청룡문 문주의 딸답게 강호의 세력 판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현욱에게 동굴에서 챙겨 온 청룡문의 비상 약재와 벽제단의 재료 일부가 담긴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무명자님, 상처가 깊습니다. 일단 이것으로 응급처치를 하십시오." 현욱은 어깨의 깊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약재로 닦아냈다. 천검왕의 검기는 예상보다 독랄했지만, 흑룡의 기운이 본능적으로 상처의 확산을 막고 있었다.

"이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소. 사도련이 협곡을 포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오. 그들이 오기 전에 천룡도보의 첫 페이지라도 익혀야 하오." 현욱은 천룡도보를 펼쳤다. 비단에 그려진 복잡한 그림들이 안개 속에서도 뚜렷하게 빛났다. 그림의 첫 장, '용각(龍脚)'에 대한 현욱의 이해는 이미 대련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반동'의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용각... 발끝에 흑룡의 기운을 모아, 땅의 반동이 아닌, 내력의 폭발로 허공을 박차는 보법..." 현욱은 눈을 감고 그림이 지시하는 대로 호흡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십 년간 쇠추를 달고 달린 단련이 그의 몸을 극한의 기운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었다. 내공의 운용은 서툴렀지만, 그 폭발력만큼은 천하 제일이었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는 동안, 설화는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안개는 걷히지 않았으나, 희미하게 땅을 밟는 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섞인 살기(殺氣)가 협곡을 감싸기 시작했다.

"무명자님! 왔습니다! 셋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운이... 일반 무인이 아닙니다." 설화의 경고에 현욱은 눈을 떴다. 아직 용각의 극의를 익히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낭자는 내가 싸우는 동안 잠시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기시오. 사도련의 목표는 우리가 아닐 수도 있소. 그들은 어쩌면 천검왕을 추격하고 있을지 모르오."

설화가 몸을 숨기자마자, 세 명의 사파 무인이 안개를 헤치고 현욱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남루한 검은 무복을 입었지만, 눈빛은 탐욕과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곡도(曲刀)와 갈고리 같은 기괴한 무기가 매달려 있었다.

"찾았다, 흑룡의 잔재! 천검왕 놈은 놓쳤지만, 네놈이라도 잡으면 대가를 받을 수 있겠지!" 선두에 선 사내는 손에 든 갈고리를 휘두르며 짐승처럼 웃었다. 그의 갈고리에는 이미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사도련의 놈들! 너희가 노리는 것이 무엇이든, 오늘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이다." 현욱은 강검을 들었다. 흑룡의 기운이 그의 검에 깃들어 검은 빛을 뿜어냈다.

세 사내는 동시에 현욱에게 달려들었다. 사도련의 무공은 정파처럼 정교하지 않았고, 마교처럼 사악하지도 않았으나,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한 잔인함과 흉포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현욱은 천검왕과의 대련에서 깨달은 바를 실전에 적용했다. 그는 흑룡의 기운을 내력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육체의 힘과 폭발적인 반동에만 집중했다.

"용각!" 현욱의 발이 땅을 박차자,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그의 몸이 안개 속을 가로지르는 검은 섬광처럼 변했다. 첫 번째 사내는 현욱이 피사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감지했지만, 반응할 틈도 없었다.

팟! 현욱의 강검이 사내의 갈고리를 쳐냈다. 일반적인 검술이었다면 충돌했을 때 현욱의 팔이 부러졌겠지만, 흑룡의 기운이 순수한 '힘'을 극대화하여 갈고리를 산산조각 냈다. 동시에 현욱의 검날이 사내의 목덜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크아악!"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남은 두 사내는 경악했다. 자신들이 셋이면서도 상대의 속도에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포 속에서 더욱 잔인하게 변했다. "합격(合擊)이다! 놈의 기운이 검은색이다! 마공을 익힌 놈이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두 사내는 곡도를 교차하며 현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공격은 현욱의 몸을 조이는 거미줄처럼 교묘했다. 현욱은 흑곡거사에게서 배운 방어의 극의를 펼쳤다. 그는 내공을 쓰지 않고 오직 몸의 움직임만으로 두 사내의 곡도를 피했다. 검은 그림자처럼 두 곡도 사이를 누비는 현욱의 몸놀림은 백 근의 쇠추로 단련된 극한의 유연함과 민첩함의 결과였다.

"틈이다!" 두 사내가 검을 교차하며 균형을 잃는 찰나의 순간, 현욱은 다시 한번 용각을 터뜨렸다.

콰앙! 현욱의 몸이 폭발적인 속도로 두 사내의 중심을 돌파했다. 그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그의 흑룡 기운이 담긴 주먹이 한 사내의 명치(明致)를, 다른 사내의 복부(腹部)를 강타했다.

퍽! 푸욱! 현욱의 주먹은 마치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는 쇠망치와 같았다. 내공을 쓰지 않았으나, 순수한 육체의 힘이 흑룡의 기운을 만나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만들어냈다. 두 사내는 동시에 피를 토하며 안개 속으로 쓰러졌다. 그들은 다시 일어설 힘조차 잃었다.

현욱은 헐떡이며 강검을 땅에 꽂았다. 승리했으나,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흑룡의 힘은 아직 현욱의 몸을 완전히 익숙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놈들이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다." 현욱은 쓰러진 사내들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자의 품을 뒤졌다. 사파 무인들이 무언가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면, 분명 증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손에 낡은 종이 한 장이 잡혔다. 종이에는 붓글씨로 몇 가지 지명이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천룡'이라는 단어와 '벽제단'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지명들 중 가장 위에 적힌 이름은 '만청루(萬淸樓)'였다. 현욱이 강호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정보를 얻었던 바로 그 객잔이었다.

"만청루... 그곳에 사도련의 거점이 있다는 말인가?" 현욱은 만청루가 단순한 객잔이 아니라, 무림의 정보를 취합하고 거래하는 사파의 비밀 조직일 가능성을 직감했다.

그때, 안개 속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닌, 다섯 명 이상의 무리였다. 사도련의 추가 무인들이 도착한 것이다.

"무명자님!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설화가 나타나 현욱을 부축했다. 그녀는 현욱의 지친 몸을 보고 망설이지 않았다.

"이제 그만 싸우십시오. 저희가 천룡도보를 해석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목표가 도보라면, 잠시 그들을 피해 힘을 기르는 것이 맞습니다."

현욱은 잠시 고민했다. 이들을 모두 상대한다면 체력은 바닥날 것이고, 무림맹과 구천마룡단의 추격까지 염두에 둔다면, 지금은 무모한 싸움이었다.

"좋소. 도보를 해석할 장소를 찾아야 하오. 이 운무협을 벗어납시다." 현욱은 쓰러진 사파 무인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손목과 발목을 강하게 꺾어 무력화시켰다. 잔인하지만, 강호의 생존법이었다.

두 사람은 짙은 안개 속에서 운무협의 외곽을 향해 다시 경공을 시작했다. 현욱은 용각의 움직임을 최대한 흉내 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불안정했지만, 그의 속도는 일반적인 경공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무명자님?" "강호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안전한 곳으로. 모두가 피하는 그곳으로 가야 하오." 현욱은 문득 스승의 흑곡이 떠올랐다. 천하의 무인들이 마교의 저주를 피해 발을 들이지 않는 금지된 공간.

"월산(月山)으로 돌아갈 수는 없소. 하지만 월산과 가장 가까운, 그리고 무림맹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소." 현욱은 사파 무인의 종이 조각을 주머니에 넣으며 결심했다.

"강호는 우리가 숨을 곳을 주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준비해야 하오. 낭자, 우리는 '북천(北天)'으로 갑시다." 북천. 월산의 서쪽에 위치한 척박하고 황량한 땅. 그곳은 한때 천마신궁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으나, 지금은 무림의 모든 세력에게서 잊혀진 죽음의 땅이었다. 현욱은 그곳에서 천룡도보를 완성하고, 흑룡검제의 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두 사람은 안개 속을 벗어나 북천을 향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현욱의 뒤를 따르는 설화는 문득 현욱의 뒷모습에서 흑곡거사가 말했던 '흑룡검제'의 강렬하고 고독한 그림자를 보았다. 천하의 무림이 그를 마공의 계승자로 몰아세우고 있었으나, 설화의 눈에는 현욱이야말로 강호를 구할 유일한 희망으로 비쳤다. 강호의 폭풍은 이제 북천을 향해 그 중심을 옮겨가고 있었다.

 

제6장: 북천의 고독, 검제의 수련 운무협을 벗어난 현욱과 설화의 여정은 험난했다. 북천(北天)은 월산(月山)의 서쪽 끝에 위치한 땅으로, 춥고 건조했으며, 바위와 자갈만이 가득한 황량한 황무지였다. 강호의 무인들은 이곳을 '기(氣)가 말라붙은 땅'이라 하여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이곳이 바로 현욱에게 숨을 쉴 공간과 힘을 기를 시간을 제공해 줄 유일한 피난처였다.

며칠간의 고된 행군 끝에, 두 사람은 북천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석회암 동굴 지대를 발견했다. 동굴 지대는 복잡하게 얽혀 미로를 이루고 있었고, 그 깊숙한 곳에 현욱과 설화는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이곳이라면 당분간 추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사도련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설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현욱의 어깨에 남은 상처를 다시 살폈다.

"고맙소, 낭자. 당신 덕분에 이 상처가 더 악화되지 않았소." 현욱은 설화가 건넨 청룡문의 귀한 약재와 벽제단의 재료로 만든 연고를 발랐다. 그의 회복력은 이미 비범했으나, 흑룡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해방된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현욱은 석실 중앙에 천룡도보(天龍圖譜)를 펼쳤다. 두루마리는 북천의 서늘한 기운 속에서 더욱 검고 깊은 빛을 발했다.

"이 천룡도보를 완전히 익혀야만, 내 몸의 이 힘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오. 스승님은 이 힘을 증오하고 경계하라 하셨지만, 천검왕은 이것을 마공이라 부르며 나를 없애려 했소. 이 힘의 진실을 알아야 하오."

설화는 현욱의 옆에 앉아 도보를 함께 응시했다. "저희 문파의 비록에 따르면, 흑룡검과 도보는 천마신궁의 사악한 마기(魔氣)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벽사(辟邪)'의 무공이라 했습니다. 도보의 힘은 악을 멸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으나, 그 힘이 너무나 강렬하여 수련자의 몸을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했습니다."

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스승이 자신에게 토납법과 육체 단련만을 가르쳐 힘을 '억눌러야' 했던 이유였으리라. 억눌림이 없었다면, 현욱의 몸은 이미 흑룡의 힘에 의해 파멸되었을 것이다.

그는 도보의 두 번째 그림에 집중했다. 두 번째 초식은 '흑룡파(黑龍破)'였다. 단순히 발을 박차는 '용각'과는 달리, 이것은 단전의 흑룡 기운을 검에 실어 폭발시키는, 진정한 '검기(劍氣)'의 운용법이었다.

"흑룡파... 단전의 흑룡 기운을 기경팔맥을 거쳐 검 끝으로 응축하라..." 현욱은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시작했다. 흑룡의 기운이 그의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랐다. 그 기운은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격렬했고, 마치 현욱의 몸을 뚫고 나가려는 듯 사납게 요동쳤다.

현욱은 고통 속에서 절규했다. 온몸의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붉게 물들었던 그의 눈빛은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무명자님! 진정하십시오!" 설화가 불안감에 소리쳤다.

현욱은 설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의식은 흑룡의 폭력적인 힘과 현욱 본연의 이성 사이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흑룡의 기운은 현욱의 검에 실리려는 대신, 그의 정신을 지배하려 들었다.

그때, 현욱의 허리춤에 감춰진 흑룡검의 검집이 강렬하게 떨리더니, 그의 손에 쥐여 있던 강검(鋼劍)을 향해 짙은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검집은 흑룡의 힘을 '흡수'하거나 '제어'하려는 듯, 마치 덫처럼 기운을 감싸 안았다.

현욱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검집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흑룡의 기운을 다루기 위해 필수적인 '제어 장치'라는 것을. 이 검집이 없다면, 흑룡의 힘은 통제 불가능한 마공이 될 터였다.

현욱은 강검 대신, 흑룡검의 검집을 움켜쥐었다. 검집의 차가운 금속 감촉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던 흑룡의 기운을 일순간 진정시켰다. 마치 거대한 댐의 수문을 닫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후우... 후우..." 현욱은 헐떡이며 몸을 진정시켰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석실 바닥에는 검은 기운의 잔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무명자님, 대체 무슨 일이..." 설화는 창백해진 얼굴로 현욱에게 다가섰다.

"이 검집이... 이 검집이 흑룡의 힘을 담는 그릇이오. 도보의 초식이 요구하는 것은 이 힘을 검집을 통해 '정제'하고 '운용'하는 것이었소." 현욱은 천룡도보의 그림을 다시 보았다. 그림 속에는 검을 휘두르는 인물 옆에, 검은 용 문양의 검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는 무공을 익힐 때 검집을 항상 가까이 두거나, 검집을 이용해 기운을 조절해야 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현욱은 며칠 동안 흑룡파 수련에 몰두했다. 수련은 여전히 고통스러웠으나, 검집을 제어 수단으로 사용하자 힘의 폭주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마침내 그의 검 끝에서 짙은 검은 검기, 흑룡파가 뿜어져 나왔다. 검기는 일반적인 내공의 기운을 훨씬 능가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강호의 상황은 현욱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 천하 사대 무림맹의 중심, 장안(長安) —

무림맹의 최고 수뇌부가 모이는 '무제당(武帝堂)'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천검왕이 보낸 급보 때문이었다. "천검왕이 마공의 계승자를 발견하고, 그가 천룡도보를 탈취했다고 보고했소. 그 힘은 사파의 사도련 무인들마저 격퇴할 정도의 강력한 힘이라 했소." 무림맹의 맹주 '벽력왕(霹靂王)'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무림맹을 이끄는 다섯 명의 무제(武帝)들이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천룡도보... 천 년 전 마교와 흑룡검제가 함께 남긴 저주의 유산. 결국 다시 세상에 나타났군." 풍신무제(風神武帝)가 차가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상하오. 사도련의 수뇌부, '구천마룡단'의 움직임이 너무나 노골적이오. 천검왕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마교 잔당이 아닌, 정체불명의 새로운 사파 세력처럼 움직인다고 했소." 또 다른 무제인 '만궁후(萬弓侯)'가 의문을 제기했다.

"마교의 잔당이든, 새로운 세력이든, 그 힘이 강호에 혼란을 가져올 것은 분명하오. 당장 '벽력대(霹靂隊)'를 북천 방면으로 파견하시오. 마공 계승자와 천룡도보를 확보하고, 그 근원을 뿌리째 뽑아야 하오." 벽력왕은 결단을 내렸다.

그 시각, 북천의 석실에서 현욱은 천룡도보의 수련을 마무리하며 검집을 꽉 움켜쥐었다. 흑룡파의 힘은 이제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욱의 마음은 무거웠다. 만약 무림맹이 자신을 마공의 계승자로 단정 짓고 추격해 온다면, 그는 천하의 정파 전체와 홀로 맞서야 할 운명이었다.

"낭자, 이제 이 도보를 해석하는 동시에, 강호의 정보를 수집해야 하오. 만청루의 비밀을 파헤치고, 천검왕이 왜 나의 부모를 마공 계승자라 단정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하오." 현욱은 흑룡의 기운이 담긴 검집을 허리춤에 차고 석실을 나섰다. 그의 눈빛은 북천의 황량한 바람처럼 차가웠으나, 그 속에는 자신의 숙명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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