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을 짊어진 자: 최후의 유산
1부. 삭막한 도시의 그림자
이 도시는 죽은 것들의 묘지이자, 살아남은 것들의 감옥이었다.
길거리를 굴러다니는 녹슨 금속 조각처럼, 가륜(可輪)은 도시의 톱니바퀴 속에서 의미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가능한 바퀴’라는 뜻이었으나, 그의 삶은 멈춰버린 시계추와 같았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지만, 이 거대한 회색 도시 '아케디아'에서는 비현실적인 희망처럼 느껴졌다.
아케디아는 100년 전 '대혼란' 이후 재건된 인류 최후의 거대 도시였다. 표면적으로는 질서와 기술이 지배했지만, 그 이면에는 엄격한 계급 제도와 잊혀진 과거가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가륜은 최하층인 '섹터 7'의 주민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낡은 전자제품 수리공이었다. 그의 눈은 항상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그 속에는 남다른 통찰력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고장 난 기계가 아니라, 이 도시의 '고장 난 부분'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다.
어느 날 밤, 평소처럼 버려진 자재를 찾으러 외곽의 폐공장에 들어선 가륜은 우연히 낡은 금속 상자를 발견했다.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인 상자를 열자, 차가운 푸른빛을 내는 조각 하나와 함께, 수백 년 전의 언어로 기록된 고대의 양피지가 나왔다. 양피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파멸의 시대가 다시 오리니, '최초의 유산'을 짊어진 자가 시대를 끝낼 것이다. 그 조각은 열쇠이며, 그 이름은...
가륜이 마지막 문장을 읽으려는 순간, 폐공장의 문이 폭발하듯 열렸다. 검은 제복을 입은 '감시국'의 정예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감시국은 도시의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시민들을 통제하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차가운 금속 같았고, 총구는 망설임 없이 가륜을 향했다.
"움직이지 마라! '최초의 유산'을 즉시 내려놓아라!" 요원들의 우두머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가륜은 본능적으로 상자를 품에 안고 뒷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손에 넣었는지 몰랐지만, 그것이 이 도시의 절대 권력인 감시국이 필사적으로 찾는 것임은 분명했다. 밤의 장막 속, 아케디아의 미로 같은 뒷골목에서 가륜의 필사적인 도주가 시작되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그는 자신이 단순한 수리공의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졌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이 도시 전체의 질서를 뒤엎을 수 있는 '파멸의 씨앗'일지도 몰랐다.
2부. 지하 미로의 조력자
가륜은 간신히 감시국 요원들을 따돌리고, 섹터 7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 위치한 지하 통로로 몸을 숨겼다. 이곳은 아케디아가 재건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구시가지의 잔해로, 공식적으로는 폐쇄된 위험 구역이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녹슨 철근의 냄새가 뒤섞인 어둠 속, 그의 손에 쥔 푸른 조각이 희미하게 빛을 냈다.
"네가... 그 조각을 가진 자로군."
차가운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가륜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빛을 피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인물은 놀랍게도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몸에 딱 맞는 검은색 방호복을 입고 있었고, 한쪽 눈에는 고성능 스캔 장치가 장착된 고글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수연(琇姸). 그녀는 아케디아의 모든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고스트 웹'이라는 해커 조직의 리더였다. 수연은 고글을 통해 가륜이 가진 조각을 스캔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마. 우린 네가 누군지, 그리고 네가 뭘 가졌는지 알고 있어. 네가 들고 있는 건 '코드-오메가', 아니, 그들이 '최초의 유산'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 조각이야."
수연은 가륜을 낡은 지하 벙커로 안내했다. 그곳은 단순한 해커들의 은신처가 아니었다. 벙커 내부에는 고대 문서와 아케디아 건설 당시의 설계도로 추정되는 자료들이 빼곡했고, 중앙에는 첨단 서버 장치들이 끊임없이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아케디아는 겉보기와 달리 완벽한 도시가 아니야. 대혼란 이후, 권력을 잡은 세력은 도시를 재건하면서 '과거'를 지웠지. 네가 가진 이 유산은 도시의 창립자인 '아르카디우스'가 남긴 비밀이야. 그들은 이 조각이 도시를 파멸시킬 수 있다고 믿어." 수연은 서버 화면에 띄워진 복잡한 암호문과 가륜의 조각이 일치하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가륜은 혼란스러웠다. "파멸이라고? 이게 대체 뭔데? 그냥 오래된 조각 아니야?"
수연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이건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아케디아의 중앙 시스템인 '제우스'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물리적 바이러스이자 열쇠야. 이 조각이 활성화되면, 도시의 엄격한 계급 제도와 통제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게 돼. 아케디아가 숨기려 했던 진실, 즉 도시의 건립 자체가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역사가 드러나게 될 거야."
그 순간, 벙커의 경보 시스템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젠장, 감시국이 여기까지 추적했어. 네가 조각을 활성화시키기 전에 그들이 먼저 널 제거하려 할 거야. 가륜, 이제 도망은 끝났어. 선택해야 해. 넌 이 조각을 버리고 평범한 수리공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감시국은 널 영원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아니면... 이 파멸을 짊어지고, 이 도시를 바로잡는 열쇠가 될 수도 있고."
감시국 요원들의 발자국 소리가 지하 통로를 따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륜은 품속의 차가운 푸른 조각을 꽉 쥐었다. 그는 평생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숨 쉬어 왔지만,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이 거대한 도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바퀴'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3부. 각성하는 파동
운명은 가장 좁고 어두운 길목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법이다.
"젠장, 감시국의 '사냥개들'이 벌써 여기까지 내려왔어!"
수연은 서버 랙 뒤에서 몸을 숨기며 외쳤다. 그녀의 고글에는 지하 통로 지도가 빠르게 스캔되고 있었다. 벙커 입구에서 둔탁한 폭발음이 울렸다. 감시국 요원들은 망설임 없이 방벽을 부수고 있었다.
"저들은 너와 조각을 확보하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저항하면 사살당할 거야." 수연은 가륜에게 소형 EMP 수류탄을 던져주었다. "이걸로 시간을 벌게. 난 서버를 정리하고 탈출 경로를 확보할게!"
가륜은 EMP 수류탄을 꽉 쥐었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기계를 수리할 줄은 알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전투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도시의 그림자였을 뿐, 전사가 아니었다.
쾅!
마침내 감시국 요원들이 벙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완벽한 방탄 장비와 에너지 충격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요원들이 수연의 해킹 흔적을 무시하고 가륜에게 곧바로 조준했다.
"가륜! 던져!" 수연이 소리쳤다.
가륜은 겨우 EMP 수류탄을 던졌고, 둔탁한 충격파가 요원들의 무기와 고글을 일시적으로 먹통으로 만들었다. 그 잠깐의 혼란 속에서 수연은 재빨리 서버에서 핵심 데이터를 추출한 후, 가륜을 향해 손짓했다.
"이쪽이야! '잃어버린 섹터'로 가는 구 통풍로가 있어!"
그들이 좁은 통풍구로 몸을 던지려던 순간, 무장이 회복된 감시국 요원 하나가 섬광탄을 터뜨리며 그들을 쫓아왔다. 가륜은 눈이 멀어 방향 감각을 잃었다. 등 뒤에서 충격총의 재충전되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그때, 가륜의 품속에 있던 푸른 조각, '코드-오메가'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가륜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본능적으로 조각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열쇠라면...!"
그 순간, 푸른 조각에서 섬광과 함께 강력한 파동이 방출되었다. 그 파동은 물리적인 충격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계의 '코드'를 뒤흔드는 에너지였다. 파동이 감시국 요원을 덮치자, 요원의 에너지 충격총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녹아내렸고, 그의 방탄복 표면에는 고대의 상형문자 같은 패턴이 섬광처럼 번쩍였다가 꺼졌다. 요원은 마치 수백 년의 세월을 한 번에 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졌다.
수연은 경악한 채 가륜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그 조각, 네가 조각의 능력을 끌어냈어! 이건 단순한 열쇠가 아니야, '시간의 오류'를 일으키는 능력이야!"
가륜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손에 쥔 조각은 이제 차가운 금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몸속 깊은 곳과 연결된 듯 격렬하게 맥동했고, 그의 의지에 따라 푸른빛의 보호막을 얇게 형성하고 있었다.
"우린 이제... 안전하지 않아." 가륜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가 능력을 쓸 때마다 느껴지는 엄청난 피로감과 함께, 그의 머릿속에는 낯선 고대 도시의 파노라마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연은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다. "좋아.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놈들은 더 많은 병력을 데려올 거야. '코드-오메가'가 감시국에 노출됐으니, 아케디아의 모든 시스템이 널 추적할 거야. 우리는 숨겨진 곳으로 가야 해."
그녀는 가륜의 팔을 잡고 통풍구로 향했다. "아케디아의 진실이 봉인된 곳. 도시 건립 이전의 모든 것이 묻힌 곳. 바로 '잃어버린 섹터'로 가야 해. 그곳에 네가 가진 조각의 나머지 부분이 있을 거야."
두 사람은 어둠 속의 좁은 통풍구로 기어들어갔다. 뒤에서는 감시국 요원들이 폐허를 수색하는 소리가 울렸다. 가륜은 이제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었다. 그는 도시의 파멸을 짊어진 자, 그리고 그 파멸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 잠재력을 각성한, 운명의 중심에 선 자가 되었다. 그의 심장과 푸른 조각이 같은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4부. 잃어버린 구역, 잊혀진 예언자
모든 위대한 도시는 거짓말 위에 세워진다. 그 거짓말을 파헤치는 순간, 도시는 무너진다.
낡은 통풍구는 가파르고 비좁았다. 가륜과 수연은 숨 막히는 먼지와 퀴퀴한 공기를 마시며 한참을 기어갔다. 통풍구 끝에서 수연은 자신의 고글을 이용해 비밀번호를 해독했고, 육중한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섹터 7의 폐허와는 차원이 달랐다. '잃어버린 섹터(Sector 0)'는 아케디아의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대혼란 이전 문명의 거대한 박물관 같았다. 정교한 석조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공기 정화 시스템이 100년 넘게 가동되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러나 이 잊혀진 구역의 중심에는 기묘하게 뒤틀린 에너지장이 불안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이 '제로 포인트'야." 수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케디아의 모든 전설과 공포가 시작된 곳. 감시국은 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
그들이 제로 포인트로 다가섰을 때, 희미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오랜만입니다, 유산의 계승자여."
가륜과 수연은 동시에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인물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었다. 그는 아케디아의 현대적인 옷이 아닌, 고대의 수도사 같은 흰 천을 두르고 있었고, 그의 눈은 깊은 슬픔과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구시죠?" 가륜이 푸른 조각을 감추며 물었다.
노인은 미소 지었다. "나는 이실(貳實)이라고 하네. 진실을 기록하는 자. 혹은, 이 도시의 가장 오랜 예언자라 부를 수도 있지. 나는 아르카디우스 곁에서 코드를 기록했던 자들의 후예이며, 네가 가진 '코드-오메가'의 완성본을 지키고 있었다네."
이실은 벽에 걸린 낡은 태피스트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가륜이 발견한 푸른 조각과 똑같은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 문양들이 합쳐져 하나의 거대한 장치, 즉 아케디아의 중앙 시스템 '제우스'의 축소판 같은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자네가 감시국 요원을 제압하는 것을 멀리서 보았네. 자네의 몸이 가진 파동은 조각의 힘을 끌어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지." 이실은 가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코드-오메가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야. 그것은 '시간과 인과율의 균열'을 일으키는 장치일세. 네가 각성했을 때, 주변의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가 존재해 온 '시간' 자체에 오류를 일으킨 것이지."
가륜은 충격에 휩싸였다. 시간의 오류라니. 그것은 그가 수리하던 기계의 고장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었다.
"저는 그 힘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가륜이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겠지. 그래서 자네에게 훈련이 필요하네." 이실은 잃어버린 섹터 중앙의 제로 포인트로 걸어갔다. "이곳은 아케디아의 근원 에너지가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곳일세. 여기서 자네는 조각과 하나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해. '시간의 흔적'을 읽고, 그 흔적을 조작하는 법을. 감시국이 이실험에 성공하기 전에 말이야."
그때, 수연이 이실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감시국이 뭘 실험한다는 거죠?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시 통제가 아닌가요?"
이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감시국, 아니, 그들을 이끄는 '집행관 크로노스'는 코드-오메가를 단순히 파괴하려는 것이 아닐세. 그들은 이 힘을 역이용하여 시간을 되돌리려 하고 있어. 대혼란을 막고 완벽한 아케디아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오류'를 지우려 하는 것이지. 그 오류 중 하나가 바로 이 유산을 가진 자네들일세."
이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섹터 0의 천장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수연의 고글에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떴다.
"이실님, 안돼요! 감시국의 최정예 특수팀 '시간의 파수꾼'이 섹터 0에 진입하고 있어요. 집행관 크로노스가 직접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집행관 크로노스. 아케디아의 모든 시민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도시의 가장 강력한 권력자. 그는 단순히 무력을 사용하는 인물이 아니라, 아르카디우스의 기술을 가장 깊이 연구한 과학자이자 전략가였다.
가륜은 푸른 조각을 움켜쥐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수리공이 아닌, 아케디아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부터 도시의 시간을 지켜야 하는 '예언자'의 길목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이실이, 옆에는 수연이 있었다. 그들의 운명을 건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5부. 시간의 파수꾼과 첫 번째 균열
훈련은 생존을 위한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다가올 파멸에 맞설 유일한 방패다.
섹터 0 전체에 감시국 특수팀 '시간의 파수꾼'이 진입하고 있었다. 그들의 제복은 일반 요원과 달리 은색으로 빛났고, 그 움직임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빨랐다. 그들을 이끄는 집행관 크로노스의 위압감은 공기를 짓누르는 듯했다.
"시간이 없네." 이실이 가륜을 제로 포인트의 중심, 불안정한 에너지장 앞으로 밀어 넣었다. "자네의 몸은 이미 코드-오메가에 동화되기 시작했네. 문제는 통제일세. 감시국이 오기 전에, 이 힘의 '감각'을 익혀야 해."
수연은 벙커의 보안망을 해킹해 섹터 0 내부의 통로 몇 군데를 일시적으로 봉쇄했지만, 이는 고작 몇 분의 시간을 벌어줄 뿐이었다.
"크로노스가 직접 옵니다. 그자는 단순히 총을 쏘는 요원이 아니에요. 그가 가진 기술은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수연이 불안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가륜, 자네가 가진 능력은 과거의 코드를 현재에 강제로 불러오는 것일세. 감시국 요원에게 썼을 때, 그들의 장비가 녹은 것은 그 장비의 '제조 시간'을 앞당겨 노화시켰기 때문이지." 이실은 급히 설명했다. "지금 눈을 감고, 조각의 맥동에 집중하게. 그 푸른빛은 단순히 에너지가 아니라, '시간의 흔적'일세. 그것을 느끼고, 원하는 만큼만 조절해야 하네."
가륜은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품속의 조각이 마치 그의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그 맥동을 따라 자신의 내부로 집중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오직 푸른 조각의 떨림과 함께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수천 개의 시계추가 동시에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주 먼 과거의 속삭임 같기도 했다.
그때, 제로 포인트로 통하는 마지막 방벽이 폭발했다. 연기와 함께 집행관 크로노스가 나타났다. 그의 은빛 제복은 흠집 하나 없었고, 그의 눈은 냉철하고 섬뜩했다.
"이실. 그리고... 가륜. 드디어 만났군." 크로노스는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바닥에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를 냈다. "대혼란을 막을 유일한 열쇠를, 파멸의 씨앗을 쥐고 있는 자. 가륜, 순순히 조각을 내놓는다면, 너의 죄는 감형될 것이다."
"코드-오메가는 당신들의 소유물이 아니오!" 수연이 외쳤지만, 크로노스는 그녀를 무시했다.
"시간 낭비군." 크로노스는 손을 들었고, 그의 장갑에서 얇고 푸른 레이저가 발사되었다. 그것은 무기를 겨누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좌표'를 설정하는 장치였다. 레이저가 가륜의 앞을 스쳐 지나가자, 그가 서 있던 바닥의 시간이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순식간에 삭아버리며 먼지로 변했다.
"가륜, 눈을 떠!" 이실이 다급하게 외쳤다.
가륜은 눈을 번쩍 떴다. 크로노스의 기술을 보자, 공포가 아닌 분노가 치밀었다. 저들은 시간을 장난감처럼 이용해 도시를 통제하고 파괴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조각을 크로노스에게 겨누는 대신, 크로노스 근처의 낡은 석조 기둥에 힘을 집중했다.
"시간... 흔적!"
푸른빛의 파동이 기둥을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작위적인 폭발이 아니었다. 가륜의 의지에 따라, 기둥의 외벽이 불과 3초 만에 100년 전 대혼란을 겪었을 때처럼 심각하게 부식되었다. 부식된 부분이 무너지면서 돌먼지가 크로노스의 시야를 가렸다.
"통제... 성공이네!" 이실이 안도했다.
크로노스는 코트를 펄럭이며 먼지를 털어냈다. 그는 놀라기보다는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완벽한 통제는 아니지만, 감동적이군. 겨우 몇 분 만에 이 정도라니. 네가 바로 아르카디우스가 남긴 '파동의 원점'이로군."
크로노스는 손에 든 소형 장치를 조작했다. 섹터 0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실, 네가 숨긴 '완성된 코드'의 위치는 알고 있다. 네놈들과 이 낡은 구역 전체를 통째로 100년 전으로 돌려보내 주지."
천장에서 거대한 잔해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연은 서둘러 가륜에게 외쳤다. "제로 포인트의 에너지가 불안정해지고 있어요! 크로노스가 시간을 조작해서 이 구역 자체를 붕괴시키려 해요! 어서 피해야 해요!"
이실은 가륜에게 작은 금속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가륜, 나는 여기서 시간을 끌겠네. 자네는 수연과 함께 이곳을 떠나게. 이 카드는 아케디아 최상층, '집행관의 탑'으로 향하는 비밀 경로의 좌표네. 완성된 코드는 그곳에 숨겨져 있다네. 자네가 가진 조각과 완성된 코드가 합쳐지기 전에는, 크로노스를 막을 수 없을 걸세."
"하지만 이실님은..." 가륜이 망설였다.
"가게! 유산은 자네의 몫이네! 도시의 시간을 구하게!" 이실은 크로노스를 향해 고대의 언어로 예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가륜은 마지막 순간, 이실을 뒤로하고 수연과 함께 잔해가 쏟아지는 통로로 뛰어들었다. 뒤에서는 크로노스의 차가운 웃음소리와 이실의 웅장한 목소리가 뒤섞이며 폭발음과 함께 묻혀버렸다. 가륜의 손에 쥔 금속 카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아케디아의 심장부, 집행관의 탑이었다.
5부. 시간의 파수꾼과 균열의 경계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기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언제든 조작될 수 있다.
'시간의 파수꾼' 팀이 잃어버린 섹터(Sector 0)에 진입했다는 수연의 경고는 가륜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벙커와 달리 이곳은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섹터 0의 고대 석조 구조물들은 그들의 은신처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네." 이실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제로 포인트의 불안정한 에너지장 앞으로 걸어갔다. "가륜, 나는 잠시 동안 감시국의 추적 시스템을 기만할 수 있지만, '집행관 크로노스'는 달라. 그는 조각의 파동을 읽을 수 있지. 자네는 당장 여기서 조각의 능력을 흡수하고 안정화시켜야 하네."
"하지만 어떻게...?" 가륜이 당황했다.
"자네가 가진 조각은 제로 포인트의 근원 에너지와 동기화되어야 하네." 이실은 가륜을 제로 포인트의 빛나는 에너지장 근처로 이끌었다. "두려워하지 마. 네가 진정한 '가능한 바퀴(可輪)'가 될 순간일세. 조각을 손에 쥐고, 자네의 의지를 조각에 집중하게.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파멸인가, 구원인가? 그 의지가 파동을 통제할 열쇠일세."
가륜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눈앞에서 제로 포인트의 불안정한 에너지가 춤추는 듯 요동쳤다. 그는 푸른 조각을 두 손으로 꽉 쥐고, 자신의 모든 감각을 조각에 집중했다.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욕구가 아니었다. 그는 이 도시의 불합리한 통제와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았다.
파멸이 아닌, 정화. 도시를 재건할 기회.
그의 의지가 확고해지자, 푸른 조각이 맹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제로 포인트의 에너지 일부가 조각을 통해 가륜의 몸으로 빨려 들어오는 듯한 강렬한 전류가 느껴졌다. 마치 수많은 시간이 그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현기증과 함께,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석조 벽에 금이 가는 '미래의 흔적'이 보였다.
바로 그때, 잃어버린 섹터의 입구에서 집행관 크로노스의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실!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인과율의 오류는 즉시 제거되어야 한다. 가륜, 스스로 조각을 포기한다면, 최소한의 고통은 면하게 해주마."
크로노스는 검은색 강화 전투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는 고대 아르카디우스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은빛 지팡이, '시간의 규율'이 들려 있었다. 그의 뒤에는 세 명의 '시간의 파수꾼'이 완벽한 진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실은 재빨리 가륜과 크로노스 사이에 방어막을 쳤다. "크로노스! 네 계획은 도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조작하여 영원한 통제를 확립하려는 것뿐이다!"
"헛소리." 크로노스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이실의 방어막에 시간의 규율을 겨눴다. 규율 끝에서 발사된 붉은 에너지 파동이 방어막을 순식간에 관통했다. 이실은 고통스러워하며 주저앉았다.
"가륜! 지금이야!" 수연이 외쳤다.
가륜은 눈을 떴다. 전류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는 크로노스와 파수꾼들이 그에게 조준하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을 정확히 보았다.
조작.
가륜은 각성한 조각의 힘을 집중하여 크로노스 앞에 놓인 작은 돌기둥에 투사했다. 돌기둥은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륜의 눈에는 돌기둥이 크로노스가 발사할 에너지에 의해 파괴되는 미래가 겹쳐 보였다. 파동이 돌기둥의 '미래 코드'를 조작하자, 크로노스의 에너지 발사가 0.1초 늦춰지는 시간의 균열이 발생했다.
찰나의 지연. 그러나 그 0.1초는 수연에게 충분한 시간이었다. 수연은 그 틈을 타 숨겨둔 EMP 디바이스를 작동시켜 파수꾼들의 갑옷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꽤 하는군." 크로노스는 자신의 일격이 막히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힘 없이는 이 도시의 시스템을 이길 수 없다. 네가 가진 조각은 겨우 첫 번째 조각일 뿐이다. 다른 조각들이 없이는 넌 이 도시의 먼지 한 줌에 불과해."
크로노스는 파수꾼들에게 회수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제로 포인트의 근원 에너지를 향해 시간의 규율을 휘둘렀다. 붉은 에너지 파동이 제로 포인트를 강타하자,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섹터 전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후퇴한다! 유산의 계승자를 놓치지 마라!" 크로노스는 파수꾼들을 이끌고 빠르게 사라졌다.
가륜은 급히 이실을 부축했다. 이실은 피를 흘리면서도 가쁜 숨을 내쉬었다.
"괜찮네... 하지만 조각의 파동을... 크로노스에게 노출시켰어. 그는... 이제 자네의 움직임을 예측할 걸세. 다음 조각은... 아케디아의 심장부, '시계탑'에 숨겨져 있다네. 그곳에는... 또 다른 진실이... 봉인되어 있지."
붕괴하는 섹터 0에서, 가륜은 이실과 수연과 함께 시계탑으로 향하는 절박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손에 쥔 푸른 조각은 이제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있는 무거운 책임이 되었다. 크로노스와의 대결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6부. 균열의 훈련, 시계탑의 그림자
심장을 건드리지 않고 시계를 멈출 수는 없다.
붕괴하는 섹터 0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가륜과 수연, 이실은 아케디아의 버려진 구 지하철 노선으로 몸을 피했다. 이실은 크로노스의 공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지혜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계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네." 이실은 낡은 방벽에 기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은 아케디아 중앙 시스템 '제우스'의 물리적 심장부일세. 도시의 모든 질서, 시간, 그리고 계급이 그곳에서 송출되지. 감시국이 가장 삼엄하게 경비하는 곳이다."
"두 번째 조각이 그곳에 있다는 건 확실한가요?" 수연이 노트북을 펼치며 물었다.
"아르카디우스는 모든 파멸을 막기 위해 네 개의 조각을 남겼네. 첫 번째는 '각성', 두 번째는 '진실', 세 번째는 '균형', 마지막은 '완성'을 상징하지. '진실'의 조각은 도시의 시간 그 자체를 기록하는 시계탑에 봉인되어 있다네."
가륜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목에는 푸른 조각이 피부 아래로 스며든 듯 희미한 푸른빛의 문양으로 남아 있었다. 각성 이후, 그는 미세하게 주변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수연이 물을 마시는 컵이 넘어지기 0.5초 전, 그는 그 컵이 공중에서 정지하는 '균열'을 보았다.
"저는 이 힘을... 통제해야 합니다. 크로노스처럼 거대한 파괴가 아닌, 정교한 조작으로." 가륜이 말했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되돌리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네." 이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훈련을 시작하자. 수연, 자네는 도시의 보안망에 가상의 오류를 심어 우리의 움직임을 감춰주게."
훈련은 지하철 폐노선에서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수연은 가륜에게 초정밀 전자 장치들을 던져주고, 그는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시간의 균열'을 일으켜 멈추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조각의 힘이 너무 강해 던져진 장치들이 폭발하거나 완전히 녹아버렸다.
"너무 힘을 쏟지 마! 가륜!" 수연이 소리쳤다. "조각의 힘은 폭탄이 아니야! 아주 미세한, '순간의 왜곡'을 만들어야 해. 시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 동안 다른 궤적을 기록하는 거야!"
가륜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다시 한번 깨진 전자 부품을 공중에 던졌다. 숨을 멈추고, 그의 모든 의식을 조각에 집중했다. 그의 눈에 부품이 깨지는 0.01초의 '미래'가 보였다. 그는 그 미래를 거부했다.
파동!
부품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공중에서 멈춘 것도 아니었다. 부품은 마치 진흙 속을 지나가는 것처럼 느리게 회전하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완벽하게 파괴를 피했다.
"성공이야!" 수연이 환호했다. "0.005초의 미세한 왜곡! 그 정도면 감시국의 적외선 감지기도 속일 수 있어! 아주 좁은 공간에서 총알의 궤적도 바꿀 수 있을 거야!"
이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계탑으로 갈 시간이네. 크로노스는 자네가 능력을 안정화시킬 시간을 주지 않을 걸세. 가장 빠르고, 가장 위험한 경로를 택해야 한다."
밤이 깊어지자, 가륜과 수연은 아케디아의 지상으로 향했다. 그들은 평범한 상층부 정비공 복장을 하고, 수연이 해킹으로 조작한 '정비용 드론'을 앞세웠다.
시계탑은 아케디아의 모든 계층에서 보이는 도시의 상징이었다. 높고 거대한 흑요석 건축물로, 사방이 감시국 병력과 고성능 레이저 감지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계탑의 꼭대기에서는 푸른빛의 홀로그램 시계가 도시의 '공식적인 시간'을 끊임없이 송출하고 있었다.
"저 시계탑의 12층, 제어실 중앙 금고에 두 번째 조각이 있을 거야." 수연은 귀에 숨긴 통신 장치로 속삭였다. "감시망을 해킹해서 15분의 시간차를 만들었어. 그 시간 안에 시계탑으로 진입해야 해."
그들이 시계탑 근처의 외벽을 타고 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사방의 경비 드론들이 비상등을 켰다.
"젠장, 크로노스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움직이고 있어!" 수연이 당황했다. "경보 시스템이 다시 활성화됐어! 15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3분도 안 돼!"
공중에서 무장 드론들이 빠르게 접근해왔고, 지상에서는 강화 전투복을 입은 감시국 요원들이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가륜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피할 곳은 없었다. 그는 품속의 조각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제 훈련의 결과가 시험대에 오를 시간이었다.
"내가 길을 열게. 수연, 넌 해킹을 계속해."
가륜은 벽을 타고 내려오는 감시국 요원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요원들이 충격총을 조준하는 순간, 가륜은 조각의 힘을 그들의 방아쇠에 집중했다.
시간의 균열!
요원들의 손은 0.001초 동안 멈춘 듯했지만, 그 짧은 찰나의 왜곡이 방아쇠의 기계적인 작동 시간을 늦추었고, 발사는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가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요원들을 덮쳤다. 그의 공격은 단순한 주먹질이었지만, 시간의 왜곡으로 인해 요원들의 방어 반응은 너무 늦었다.
하지만 드론들이 발사한 에너지탄들이 가륜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른 에너지탄의 궤적이 그의 눈에 정확히 보였다.
시간의 흔적을 읽어라.
가륜은 자신의 파동을 에너지탄의 '예정된 궤적'에 투사했다. 에너지탄은 가륜의 몸을 통과하기 직전, 아주 미세하게 휘어지더니, 바로 뒤에 있던 다른 드론을 격추시켰다.
"대단해, 가륜!" 수연은 놀라면서도 다시 해킹에 집중했다.
그는 조각의 힘을 이용해 아케디아의 심장부로, 시계탑의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심장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뛰었지만, 그의 눈빛은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가 만드는 찰나의 왜곡이, 이 거대한 도시의 절대적인 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7부. 시계탑의 진실: 오류의 기록
역사는 승자가 쓰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그 기록을 지울 수도 있다.
가륜과 수연은 시계탑의 중앙 환기구를 통해 12층 제어실 바로 아래층에 간신히 도착했다. 가륜이 만들어낸 찰나의 '시간 균열' 덕분에 수많은 드론과 요원들의 감시망을 뚫을 수 있었지만, 그의 몸은 급격한 에너지 소모로 인해 극도로 피로한 상태였다.
"후우... 3층만 더 올라가면 돼. 감시국은 우리를 이 밑에서 찾고 있을 거야." 수연은 노트북을 꺼내 건물 내부 구조를 스캔했다. "하지만 문제는 12층이야. 그곳은 시계탑의 핵심 제어실로, 물리적 잠금장치 외에도 '시간 기반 보안 시스템'으로 보호되고 있어. 해킹이 거의 불가능해."
가륜은 벽에 기대앉아 숨을 골랐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문양이 깜빡거렸다. "시간 기반 보안 시스템이라면, 내가 만든 '균열'이 통할 수도 있어. 잠금장치의 작동 순간을 아주 미세하게 뒤틀면... 시스템에 오류가 날 거야."
그들이 1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를 때, 제어실 복도에서 두 명의 감시국 요원이 순찰하는 모습이 보였다. 수연은 가륜의 능력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의 주특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가륜, 저기 보이는 복도 끝의 '순환 공기 조절기'를 봐. 내가 시스템에 과부하를 걸어서 찰나의 정전을 일으킬게. 넌 그 순간을 이용해야 해."
수연이 신호를 보내자, 그녀의 노트북 화면에 복잡한 코드가 빠르게 지나갔다. 복도 끝의 조절기가 굉음을 내며 터졌고, 복도 전체에 스파크와 함께 짧은 정전이 발생했다.
어둠 속에서, 가륜은 몸을 날려 두 요원의 움직임에 '시간 균열'을 투사했다. 요원들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의 궤적이 미세하게 엇나가, 두 요원은 서로에게 걸려 넘어졌고, 그들의 충격총은 엉뚱한 방향으로 발사되었다. 완벽한 무력화였다.
제어실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홀로그램 시계가 공간을 압도했다. 그리고 그 시계탑의 심장부, 중앙에 거대한 티타늄 금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찾았어. 저게 '진실'의 조각이 봉인된 금고야." 수연이 금고 앞에 섰다. 금고의 개폐 시스템은 1초 단위로 무작위 변경되는 20자리의 시퀀스 암호와 지문 인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건 해킹으로 풀 수 없어. 시퀀스 자체가 이 도시의 '시간 기록'과 동기화되어 있어."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가륜은 금고의 티타늄 표면에 손을 댔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미세하게 사용했다. 금고 개방 시퀀스가 완성되는 '미래'를 읽고, 그 시퀀스 기록에 아주 미세한 '지연'을 새겨 넣는 것.
가륜의 손목 문양이 푸른빛을 내며 떨렸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초당 수많은 시퀀스가 바뀌는 금고의 시간 흐름 속에서, 그는 오직 한 순간, 0.0001초의 '균열'을 만들어내야 했다.
파동!
금고 시스템의 녹색 불빛이 일제히 깜빡거리더니, 곧이어 거친 기계음과 함께 금고가 '잠금 오류' 상태로 돌아갔다. 티타늄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금고 안에는 두 번째 유산 조각이 있었다. 그것은 첫 번째 조각보다 크고 맑은 은색 결정체로, 시계처럼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낡은 데이터 칩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가륜이 은색 조각을 만지려는 순간, 데이터 칩이 자동으로 활성화되며 제어실 전체에 홀로그램 영상이 투영되었다.
영상 속에는 아케디아의 창립자인 '아르카디우스'가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영웅이 아닌, 절망에 빠진 과학자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젊은 시절의 집행관 크로노스가 서 있었다.
아르카디우스: "크로노스! 네가 제안한 '시간의 되감기' 계획은 너무 위험해! 대혼란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희생과 인과율의 파괴를 감당해야 한다!"
젊은 크로노스: "아버지(아르카디우스의 양자였음)! 완벽한 질서를 위해 이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합니다! 코드를 활성화시켜, 인류의 가장 큰 실수를 지워야 합니다!"
아르카디우스: "아니다! 나는 네가 이 코드-오메가를 악용할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이 두 번째 조각에 '오류 기록'을 봉인한다. 만약 네가 나의 뜻을 거스르고 시간을 조작하려 한다면, 이 기록은 네 모든 계획을 파괴할 열쇠가 될 것이다!"
영상은 아르카디우스가 은색 조각 옆에 데이터 칩을 봉인하는 장면으로 끝났다.
수연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크로노스가... 아르카디우스의 양자였고, 도시의 설립 비밀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려는' 계획이 진실이었어. 그가 대혼란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어!"
가륜은 은색 조각을 쥐었다. 첫 번째 조각이 '개시'였다면, 이 두 번째 조각은 '기록'의 힘을 상징하는 듯했다. 은색 조각이 그의 몸에 닿자,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시간의 흐름과 아케디아의 초기 역사 데이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바로 그때, 제어실 문이 파괴되는 굉음과 함께 집행관 크로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어리석은 가륜! 네가 감히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보았군. 네가 그 두 번째 조각을 쥐는 순간, 네 운명은 영원히 파멸로 기록될 것이다!"
크로노스는 은빛 지팡이 '시간의 규율'을 휘둘렀고, 제어실의 홀로그램 시계가 깨지며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가륜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가륜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도망인가, 아니면 이 시간 조작의 대가와 맞서 싸우는 것인가?
8부. 시공간의 그림자, 시간의 규율
크로노스가 발사한 파동은 단순한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륜의 몸을 통과하며 그가 방금 경험한 '미래의 훈련'과 '각성의 순간'을 강제로 뒤섞고, 그의 기억을 왜곡하려 했다.
"네가 가진 미약한 균열은 나의 '규율' 앞에서 무력하다! 나는 시간을 기록하고, 지우고, 재구성한다!" 크로노스가 소리쳤다.
가륜은 고통 속에서도 은색 조각을 꽉 쥐었다. '기록'의 조각이 그의 몸에 닿자, 왜곡되려던 기억들이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당신은 영웅이 아니야! 과거를 조작해서 거짓된 질서를 세우려는 독재자일 뿐!" 가륜은 외치며 두 개의 조각이 만들어내는 파동을 크로노스에게 역으로 투사했다.
시간 균열과 시간 규율의 파동이 제어실 중앙에서 충돌했다. 쾅! 엄청난 빛과 함께 시계탑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수연은 폭발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서버 랙 뒤로 몸을 숨겼다.
크로노스는 가륜의 역공에 잠시 주춤했지만, 곧 분노에 찬 미소를 지었다. "흥미롭군. 두 조각의 힘을 동시에 쓰는 법을 배웠나! 하지만 너의 균열은 순간적이지만, 나의 규율은 영속적이다!"
크로노스는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시계탑의 정교한 시계 바늘들이 미친 듯이 회전하더니, 크로노스의 주변 시간 흐름이 주변보다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주변의 시간을 조작하여 나의 반응 속도를 수백 배로 올릴 수 있다! 넌 나의 그림자조차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가륜의 눈에는 크로노스가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크로노스는 재빨리 가륜의 뒤로 이동하여 '시간의 규율'을 휘둘렀다. 은빛 지팡이가 가륜의 어깨를 스치자, 그 부분의 전투복이 순식간에 수십 년 된 것처럼 낡아버렸다.
"안 돼! 가륜!" 수연이 외쳤다. 그녀는 재빨리 제어실의 전력선을 해킹하여 크로노스의 주변 시간 흐름을 방해하는 '전자기 펄스'를 시도했다.
수연의 방해로 크로노스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한 틈을 타, 가륜은 탈출을 시도하기로 했다.
"수연, 탈출구가 필요해! 난 저자와 싸우면서 시간을 끌 수 없어!"
"시계탑 꼭대기, 종루로 가는 비상 통로가 있어! 내가 문을 열게!"
가륜은 두 조각의 힘을 동시에 폭발시켜 제어실의 중앙 시계를 완전히 파괴했다. 도시에 시간을 부여하는 심장부가 멈춘 것이다. 혼란의 틈을 타, 가륜과 수연은 종루로 향하는 비상 통로로 몸을 던졌다.
크로노스는 파괴된 시계를 보며 분노했다. "가륜! 네가 도시의 질서를 파괴했군! 하지만 그것은 네 파멸을 재촉할 뿐이다. 네 다음 목적지는 내 예측 범위 안에 있다. 세 번째 조각, '균형'의 조각은 결코 너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9부. 종루의 약속과 제3의 유산
종루는 시계탑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거대한 종과 함께, 아케디아의 모든 통신을 감시하고 송출하는 무선 중계 장치들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종루의 바닥에 기대어 숨을 헐떡였다. 아래에서는 감시국 요원들이 12층 제어실의 붕괴를 수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탑이 멈췄어. 이제 아케디아 전역에 혼란이 일어날 거야." 수연은 공포 반, 기대감 반의 표정으로 말했다.
"크로노스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실의 말대로, 그는 우리의 다음 목표를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가륜은 은색 조각이 그의 손에 전해주는 '기록'의 정보를 되새겼다.
그의 머릿속에 이실이 언급한 '세 번째 조각'의 위치가 떠올랐다.
세 번째 조각, '균형'의 조각은 대혼란 때 파괴된 문명의 잔해, '침묵의 계곡'의 중앙 발전소에 숨겨져 있다.
"침묵의 계곡... 아케디아 외곽의 방사능 오염 지역이잖아요. 그곳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곳은 단순히 오염 지역이 아니야. 아케디아가 파괴했다고 기록한 기술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야. 크로노스가 그곳을 감추고 있어." 가륜은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 해. '균형'의 조각을 찾아야 크로노스의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막을 수 있을 거야."
그때, 종루의 무선 중계 장치에서 갑자기 이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실: "가륜, 수연! 잘 들어! 나는 감시국에게 붙잡혔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나는 너희가 침묵의 계곡으로 가는 길을 열어두었다네. 이실은 이 도시의 과거를 지키고, 너희는 미래를 지키게!"
이실의 목소리가 끊기자마자, 종루의 무선 장치가 폭발했다. 감시국이 이실을 추적하여 그를 붙잡았고,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들에게 탈출 경로를 제공한 것이었다.
"이실..." 수연은 눈물을 글썽였다.
"이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해." 가륜은 두 개의 조각을 쥐고 종루의 난간으로 다가갔다. 아래에는 혼란에 빠진 도시와 요원들이 보였다. "수연, '침묵의 계곡'으로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찾아줘. 우린 이제 도시를 벗어나야 해."
10부. 붉은 모래 바람: 침묵의 계곡
가륜과 수연은 수연의 해킹 기술과 가륜의 '시간 균열'을 이용해 시계탑의 외벽을 따라 내려와 도시의 하수구 네트워크를 통해 외곽으로 향했다. 하수구는 아케디아의 더러운 비밀처럼 복잡하고 악취가 심했다.
며칠간의 은신과 이동 끝에, 그들은 마침내 아케디아의 거대한 보호 장벽 외곽, '침묵의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보호 장벽은 도시를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부터 격리하고 있었다.
"이곳의 경비 시스템은 느슨해 보여요. 도시가 이곳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죠." 수연이 말했다.
"아니,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크로노스가 이곳이 무의미하다고 믿도록 조작한 거야." 가륜은 보호 장벽의 거대한 철문에 손을 댔다. 그의 조각은 이 문이 닫힌 '수십 년의 시간 기록'을 읽어냈다.
수연은 철문의 전력 시스템을 해킹했다. 가륜은 문이 열리는 '미래의 궤적'을 0.5초 왜곡시켜, 문을 지키는 센서가 그들의 진입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철문이 열리자, 붉은 모래 바람과 함께 거대한 폐허가 그들을 맞이했다. 침묵의 계곡은 아케디아의 화려한 기술과는 대조적으로, 거대한 고층 빌딩의 잔해와 폐기된 기계들의 무덤이었다. 방사능 수치는 수연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높았다.
"방호복이 버티기 힘들겠어요. 중앙 발전소는 이 계곡의 중앙에 있어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요." 수연이 방호복의 필터를 조절하며 말했다.
그들이 계곡을 가로질러 이동할 때, 가륜은 주변의 폐허에서 이상한 '시간의 잔향'을 느꼈다. 어떤 잔해는 다른 것보다 훨씬 빨리 녹슬고 있었고, 어떤 잔해는 막 지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는 크로노스가 이 계곡에서도 시간을 조작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발전소의 잔해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수연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가륜! 매복이야! 저들은 우리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붉은 모래 폭풍 속에서, 감시국의 특수팀 '시간의 파수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의 장비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크로노스의 오른팔이자 시간 조작 능력을 부분적으로 전수받은 사령관 **테온(泰溫)**이었다.
"유산의 계승자여! 크로노스 님의 예측은 정확했다. 이 침묵의 계곡은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다! '균형'의 조각은 이미 크로노스 님의 손에 있다!" 테온이 비웃듯이 외쳤다.
11부. 균형의 조각과 테온의 덫
테온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크로노스는 이미 '균형'의 조각을 확보한 상태였다.
"거짓말 마! 이실은 조각이 여기 있다고 했어!" 수연이 외쳤다.
"이실은 과거의 예언자일 뿐. 크로노스 님은 미래를 예측하고 조작하신다!" 테온은 오른손에 은색 빛을 내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 장갑은 크로노스 님께서 직접 만드신 '시간의 메아리' 장치다. 네놈들의 균열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테온이 장갑을 휘두르자, 그 주변의 모래 폭풍이 순간적으로 응축되더니, 거대한 모래 폭풍 구체가 되어 가륜과 수연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가륜은 두 개의 조각을 모아 파동을 방출했지만, 테온의 장갑에서 나온 '시간의 메아리' 파동과 충돌하자, 가륜의 균열 파동이 오히려 테온에게 흡수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네놈의 힘은 나의 메아리를 통해 강화될 뿐이다! 너의 균열이 곧 나의 균형이다!" 테온은 더욱 강력해진 모래 폭풍을 조종하며 그들을 중앙 발전소 건물 잔해 쪽으로 몰아붙였다.
"이대로는 안 돼! 그의 장갑이 우리의 능력을 역이용하고 있어!" 수연이 소리쳤다.
가륜은 급히 발전소 잔해 안으로 몸을 던졌다. 잔해 내부에는 폐기된 중앙 제어판과 거대한 냉각 시스템이 녹슬어 있었다.
"이실의 정보가 잘못되었을 리 없어. '균형'의 조각은 발전소 안에 숨겨져 있을 거야. 하지만 크로노스가 이미 가져갔다면..." 가륜은 주변을 살폈다.
수연은 제어판에 자신의 노트북을 연결하며 말했다. "이 발전소의 폐쇄 기록을 읽어봐야겠어요. 만약 크로노스가 가져갔다면,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을 거예요."
수연이 발전소의 낡은 기록을 해독하기 시작했을 때, 가륜은 발전소의 거대한 중앙 축전기에 손을 댔다. 축전기는 엄청난 양의 잔류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 사이에, 세 번째 조각의 희미한 '잔향'이 느껴졌다.
"조각은 아직 여기 있어! 크로노스가 가져가지 못했어! 하지만... 그는 조각을 숨기는 대신, 함정으로 만들어 놓았어!" 가륜이 외쳤다.
수연은 해독을 끝내고 경악했다. "맞아요! 이 기록에 따르면, 크로노스는 '균형'의 조각을 중앙 축전기의 에너지 방출 시스템과 동기화시켰어요. 누군가 조각을 만지면, 축전기의 에너지가 폭발해서 계곡 전체를 날려버리게 돼! 조각 자체가 폭탄이야!"
그때, 테온이 발전소 입구를 파괴하며 들어섰다.
"발견했다! 유산의 계승자여!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12부. 시간의 방어, 에너지의 포옹
테온은 미소를 지으며 발전소 중앙으로 다가왔다. "크로노스 님은 네놈들이 여기에 올 것을 알고 계셨다. 균형의 조각은 네놈들이 만질 수 없는 파멸의 선물이 될 것이다!"
가륜은 수연에게 소리쳤다. "수연, 이 축전기를 조종할 수 있어? 조각을 건드리지 않고 에너지를 빼낼 방법은?"
"불가능해요! 에너지가 조각과 하나로 묶여 있어요! 조각을 꺼내려면 폭발을 감수해야 해요!"
가륜은 결심했다. "아니, 내가 폭발을 막을 수 있어. 이실의 말대로 '균형'의 조각은 폭발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균형을 잡기 위해 존재해!"
가륜은 두 개의 조각(각성과 기록)을 중앙 축전기의 폭발 시스템 코어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시스템 전체에 강렬한 진동이 울렸다.
"멈춰라!" 테온이 외치며 '시간의 메아리' 장갑으로 파동을 발사했다.
테온의 파동은 폭발 시스템을 강제로 가속시켜 폭발을 유도했다. 축전기가 굉음을 내며 붉은색 섬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가륜은 세 번째 조각의 힘에 완전히 집중했다. 그의 몸과 조각, 축전기 내부의 에너지가 일체화되는 느낌이었다.
균형. 에너지의 흐름을 균형 있게 재분배한다.
가륜은 폭발하려던 축전기의 엄청난 에너지를 '균열'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폭발이 아닌, 시간의 흐름으로 변환하여 발전소 전체에 방출했다.
폭발 직전의 에너지는 가륜의 능력을 통해 거대한 푸른빛의 보호막이 되었다. 이 보호막은 폭발을 막는 동시에, 테온의 시간 메아리 파동을 흡수했다.
"이럴 수가! 네놈이 그 힘을...!" 테온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가륜은 보호막 안에서 세 번째 조각인 '균형'의 조각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거대한 축전기 에너지 속에 숨겨져 있던, 거울처럼 맑은 청동 조각이었다. 조각을 쥐는 순간, 가륜은 폭발 직전의 위험했던 상황에서 완벽하게 균형을 잡는 초월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세 번째 조각을 확보한 가륜은 더 이상 테온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수연, 나가자!"
가륜은 '균형'의 조각을 이용해 발전소의 파괴된 출구를 순식간에 복원시켰다. (시간의 역행이 아닌, 균형 상태로의 복원). 발전소는 순식간에 복원되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크로노스 님은 옳았어. 네놈은... 파멸의 씨앗이다!" 테온은 분노했지만, 복원된 발전소 속에서 자신의 장갑이 무력화되는 것을 느끼며 그들을 쫓지 못했다.
가륜과 수연은 침묵의 계곡을 벗어나 아케디아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분명했다. 마지막 조각, '완성'의 조각을 찾고, 감시국에 붙잡힌 이실을 구출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의 혼란을 끝내는 것이었다.
13부. 복귀와 반격의 서막
가륜과 수연은 다시 아케디아의 지하 네트워크로 돌아왔다. 세 개의 조각(각성, 기록, 균형)을 모두 손에 넣은 가륜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몸은 이제 세 가지 시간의 힘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세 번째 조각 '균형' 덕분에 이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어요." 수연이 가륜의 상태를 분석하며 말했다. "하지만 크로노스도 만만치 않을 거예요. 이실의 구출이 최우선이에요. 크로노스는 이실을 미끼로 삼아 우리를 함정으로 유인할 거예요."
"이실은 어디에 잡혀 있을까? 크로노스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있겠지." 가륜이 단호하게 말했다.
수연은 해킹으로 감시국의 보안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찾았어요! 이실은 '아르카디우스 기념관'의 지하 구금실에 있어요. 그곳은 크로노스의 개인 연구소와 연결되어 있어요. 크로노스가 마지막 조각을 찾기 위해 이실의 지식을 이용하려 할 거예요."
아르카디우스 기념관은 도시의 영웅 아르카디우스를 기리는 명목으로 세워졌지만, 사실상 크로노스가 도시의 통제력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마지막 조각은 분명 그 기념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야. 크로노스가 이실을 미끼로 삼는다면, 우린 그 미끼를 물어줘야지." 가륜은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기념관의 보안 시스템에 '시간 균형'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수연, 내 계획은 이래. 내가 기념관 보안 시스템의 '시간 기록'을 조작해서, 그 시스템이 우리가 이미 지나갔다고 인식하도록 만들 거야. 일종의 시간적 유령을 만드는 거지. 그 틈을 타서 지하 연구소로 잠입해야 해."
14부. 기념관의 유령
가륜과 수연은 기념관의 뒷문으로 몰래 잠입했다. 기념관 홀에는 아르카디우스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었고, 그 동상을 중심으로 크로노스가 창조한 아케디아의 '역사 기록'이 홀로그램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가륜은 기념관 중앙 보안 서버에 손을 댔다. 세 개의 조각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서버의 시간 흐름을 과거로 돌렸다.
균열! 기록! 각성!
서버 시스템은 혼란에 빠졌다. 시스템은 가륜과 수연이 방금 진입한 것이 아니라, 3분 전에 이미 이 구역을 지나쳐 나갔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제 움직임은 시스템상으로는 '잔상'이나 '유령'처럼 인식되었다.
"성공이야! 우리가 보안 시스템에 시간적 오류를 심었어. 이제 3분 동안은 우리는 투명 인간이야!" 수연이 속삭였다.
그들이 지하 구금실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찾으려 할 때, 홀로그램으로 된 전시물 사이에서 집행관 크로노스가 나타났다.
"네 번째 조각을 찾으러 왔느냐, 가륜?" 크로노스는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네놈의 '시간적 유령' 기술은 꽤 놀랍군. 하지만 내 '시간의 규율'은 이 모든 것을 읽어낼 수 있지!"
크로노스는 지팡이를 휘둘러 가륜과 수연에게 '시간의 정지' 파동을 발사했다. 파동이 그들을 덮치자, 수연의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수연!" 가륜은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그의 몸 역시 둔화되었다.
"네 균열은 나보다 느리다! 내가 너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고, 네가 도착하기도 전에 너의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크로노스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가륜은 굳어버린 수연의 손에 '균형'의 조각을 슬쩍 쥐여주었다. 수연은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니라, 균형의 조각 덕분에 아주 미세한 의식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실은 네 연구소에 있다. 내가 널 막는 동안, 넌 이실을 구출해야 해." 가륜은 굳어진 입술로 속삭였다.
15부. 시간의 역설과 심연의 유산
가륜은 크로노스에게 달려들었다. 크로노스의 움직임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빨랐지만, 가륜은 세 번째 조각의 '균형'을 이용해 크로노스의 '시간 둔화 영역' 속에서도 자신의 파동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시간을 멈추는 것은 네 기술이지만, 나는 시간을 읽고 그 흐름을 조작한다!"
가륜은 크로노스의 다음 공격 궤적을 예측하여, 미리 그 지점에 '시간 균열'을 심었다. 크로노스가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의 손목 관절의 시간이 0.1초 뒤틀리며 공격이 완전히 빗나갔다.
"이런... 놀랍군! 네놈이 나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 크로노스가 놀랐다.
가륜이 크로노스와 싸우는 동안, 수연은 굳어진 몸을 이끌고 지하 연구소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 그녀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균형의 조각이 그녀의 몸을 시간 조작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지하 연구소는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그곳의 중앙에는 이실이 결박된 채, 끔찍한 '시간 에너지 추출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크로노스는 이실의 지식과 생명 에너지를 강제로 뽑아내 마지막 조각, '완성'의 위치를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이실!" 수연이 재빨리 장치로 달려갔다.
"늦었구나, 수연..." 이실은 쇠약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크로노스는... 마지막 조각의 위치를 알아냈다. 조각은... 아르카디우스의 동상... 바로 심장부에 숨겨져 있다! '시간의 완전한 조작'을 위한 핵심 조각이다!"
수연은 이실을 풀어주는 동시에, 연구소의 중앙 서버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크로노스가 그 조각을 손에 넣기 전에, 내가 동상의 보안 코드를 잠가버리겠어요!"
한편, 가륜은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분노한 듯 '시간의 규율'을 휘두르며 기념관의 모든 전시물을 파괴했다.
"네놈은 이미 늦었다! 마지막 조각은 나의 것이다!" 크로노스는 가륜을 시간의 파동으로 제압한 후, 지상 홀로그램 전시실 중앙에 서 있는 아르카디우스 동상으로 달려갔다.
"크로노스! 안 돼!" 가륜이 외쳤다.
16부. 완성의 조각과 파국의 시작
크로노스가 아르카디우스 동상 앞에 섰을 때, 수연이 지하 연구소에서 동상의 잠금장치를 원격으로 조작했다.
"잠겼어! 크로노스, 넌 절대 그 조각을 손에 넣지 못할 거야!" 수연이 통신으로 외쳤다.
"어리석은 짓!" 크로노스는 동상의 티타늄 받침대에 '시간의 규율'을 내리쳤다. 그의 강력한 시간 조작 능력으로, 동상의 잠금장치가 순식간에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며 녹슬어 파괴되었다.
동상의 심장부에서 마지막 유산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검은색의 빛을 내는 사면체 결정이었다. '완성'의 조각.
크로노스가 검은 조각을 쥐는 순간, 기념관 전체에 강력한 시간 에너지 파동이 폭발했다. 파동은 아케디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도시의 하늘이 붉게 물들고, 홀로그램 시계가 역방향으로 미친 듯이 회전했다.
"성공이다! 내가 '완성'의 조각을 손에 넣었다!" 크로노스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포효했다. "가륜! 이제 네놈의 시간은 끝났다! 나는 이 조각으로 대혼란 직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도시에 영원한 질서를 선사할 것이다!"
가륜은 급히 수연과 이실에게 달려갔다. 이실은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다.
"가륜... 마지막 조각은... 조작된 시간의 기록을 현실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네. 크로노스가 시간을 되돌리려 하면... 인과율이 파괴되고, 이 도시는 영원히 사라질 거야! 네 개의 조각이 모두 모여야만... 그 파괴를 막을 수 있다네!"
크로노스는 '완성'의 조각과 자신의 '시간의 규율'을 결합하여, 기념관 중앙에 거대한 '시간의 문'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문은 붉은색과 검은색의 섬광을 내뿜으며 대혼란 이전의 시간으로 연결되려 하고 있었다.
17부. 최후의 결전: 시간의 문 앞에서
가륜은 수연과 이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크로노스에게 달려갔다.
"크로노스! 멈춰! 네가 시간을 되돌리면 이 도시는 파괴돼!"
"파괴가 아니다! 재건이다! 완벽한 시대로의 회귀다!" 크로노스는 검은 조각의 힘에 완전히 지배된 듯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문 앞에서 '시간의 규율'을 휘두르며 가륜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공격은 이제 시간을 되돌리거나, 시간을 가속시켜 가륜의 몸을 부패시키려 했다.
가륜은 세 개의 조각(각성, 기록, 균형)을 온몸에 집중했다. 그의 온몸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그는 '완성'의 조각을 제외한 모든 유산의 힘을 동시에 폭발시켰다.
"내 조각은 너의 조작된 기록을 거부한다!"
가륜의 파동이 크로노스의 시간 조작을 만나자, 거대한 시공간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두 사람의 능력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며 기념관을 뒤흔들었다.
수연은 이실의 옆에서 마지막으로 이실에게 받은 고대 암호문을 해독했다. "찾았어요! 이실이 남긴 마지막 기록! 네 번째 조각이 없다면, 세 번째 조각, '균형'의 조각이 시간의 문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어요!"
18부. 균형의 희생
"가륜! '균형'의 조각을 시간의 문 입구에 던져! 조작된 문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어!" 수연이 간절하게 외쳤다.
가륜은 크로노스의 강력한 시간 파동을 피해, 손에 쥔 '균형'의 조각을 전력을 다해 시간의 문 입구에 던졌다.
조각이 문에 닿자마자, 검은색의 '완성'의 파동과 푸른색의 '균형'의 파동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시간의 문은 붕괴 직전의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고, 크로노스는 잠시 균형을 잃었다.
"이런... 어리석은 놈! 네가 나의 완성을 방해했어!" 크로노스가 분노했다.
크로노스는 검은 '완성'의 조각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어 시간의 문을 안정화시키려 했다. 동시에, 그는 '시간의 규율'로 가륜을 문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가라! 대혼란 속으로! 네놈의 존재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겠다!"
가륜은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도, 남은 두 개의 조각(각성과 기록)의 힘을 크로노스의 '시간의 규율'에 투사했다.
시간의 역설.
가륜의 파동은 '시간의 규율'이 가진 가장 오래된 기록을 강제로 되살렸다. 그것은 규율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불완전했던 코드였다.
19부. 크로노스의 몰락과 시간의 정화
크로노스의 '시간의 규율'은 가륜의 파동을 맞자, 강제로 초기 불완전 상태로 돌아가며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규율은 크로노스 자신에게 강력한 시간 역행 에너지를 방출했다.
"안 돼! 나의 규율이... 나를...!" 크로노스는 고통 속에서 절규했다.
크로노스의 몸은 검은 조각을 쥔 채, 강제로 시간이 되감기기 시작했다. 그의 강화복이 벗겨지고, 그의 육체가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의 존재 자체가 아케디아의 역사에서 지워진 것이다.
크로노스가 사라지자, 그가 쥐고 있던 검은 '완성'의 조각은 중력을 잃고 허공을 떠돌았다. 시간의 문은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가륜은 문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겨우 멈추고, 마지막 남은 두 개의 조각을 들고 검은 조각을 향해 다가갔다.
"가륜, 안 돼! 네 개의 조각이 합쳐지면 폭발할 거야!" 수연이 절규했다.
"이실의 마지막 기록을 기억해야 해. 네 개의 조각이 모두 모여야만 파괴가 아닌 정화가 가능해." 가륜은 심호흡했다.
가륜은 두 조각(각성, 기록)을 검은 조각(완성)과 '균형'의 조각이 박혀 있는 시간의 문 중앙에 합쳐 넣었다.
네 개의 조각이 하나로 합쳐지자, 시간의 문은 폭발하는 대신, 눈부신 은하수 같은 푸른빛을 방출했다. 이 빛은 아케디아 전체를 뒤덮었다.
이 빛은 크로노스가 조작했던 모든 시간의 오류를 정화했다. 시계탑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전처럼 통제된 시간이 아닌,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송출했다. 도시의 계급 시스템을 지탱하던 중앙 서버의 '잘못된 기록'이 모두 지워지고, '진실'의 조각에 기록되어 있던 아르카디우스의 염원만이 남았다.
가륜은 모든 힘을 소진한 채 쓰러졌고, 수연과 이실이 그를 부축했다.
20부. 새로운 시간, 가능한 바퀴
파란빛이 사라진 후, 아케디아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도시의 통제 시스템은 무너졌고, 감시국은 힘을 잃었다. 모든 시민은 크로노스의 '시간 조작'으로 인한 혼란에서 벗어났고, 이제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자유를 얻었다.
아르카디우스 기념관은 파괴되었지만, 그곳에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남아 있었다. 네 개의 조각이 합쳐져 만들어진, 거대한 푸른빛의 결정체. **'새로운 유산'**이었다.
며칠 후, 이실은 아르카디우스의 후계자로서 아케디아 시민들 앞에 섰다.
"크로노스가 남긴 모든 시간의 오류는 지워졌습니다. 이제 이 도시는 특정 계층에 의해 통제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가능한 바퀴(可輪)'입니다."
이실은 새로운 아케디아의 질서를 세우는 데 전념했다. 수연은 도시의 네트워크를 복구하고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 해방 위원회'를 이끌게 되었다.
그리고 가륜. 그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다시 평범한 수리공으로 돌아갔다. 그는 영웅 대접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의 손목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푸른 문양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시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어느 날, 수연이 가륜의 낡은 수리점으로 찾아왔다.
"새로운 유산 결정체가 빛을 잃어가고 있어요." 수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크로노스의 힘이 너무 강해서, 모든 시간이 안정화된 후에는 필요 없어진 것 같아요."
가륜은 미소 지었다. "필요 없어진 게 아니야. '완성'된 거야. 더 이상 외부의 힘이 필요 없다는 뜻이지."
가륜은 수연에게 낡은 공구 상자를 건넸다. "새로운 도시를 위한 새로운 시계가 필요해. 가장 정확하고, 가장 공정하고, 가장 자유로운 시간을 기록할 시계. 너의 기술과 나의 경험으로 그걸 만들자."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가륜은 도시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시계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가륜은 더 이상 시간의 균열을 만들지 않았지만, 그의 손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가장 완벽한 톱니바퀴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영웅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시계를 작동시키는 가능한 바퀴가 된 것이다.
파멸은 끝났고, 이제 새로운 시간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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