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천혈주: 멸문의 밤, 비상하는 까마귀의 날개깃🦅

2025. 12. 3. 08:51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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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피로 물든 백목련, 스러지는 신화

칠현문(七賢門)의 비극이 일어난 밤은, 마치 천지의 기운마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만월이 희미하게 구름에 가려, 세상은 짙은 먹빛에 잠겨 있었다. 백 리 안에 정적이 감도는 이곳, 명산(名山) 취령봉(翠靈峰)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칠현문은 강호에서 단순한 문파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정도(正道)의 상징이자, 무림의 평화를 수호하는 굳건한 축이었다.

그날 밤, 그 신화가 무참히 찢겨 나갔다.

취령봉, 칠현문 정문.

평소라면 날카로운 눈빛의 제자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을 곳이지만, 지금은 핏물과 함께 흩뿌려진 백목련 꽃잎만이 스산한 달빛 아래 나뒹굴 뿐이었다.

"크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쇠가 부딪히는 끔찍한 소리가 칠현문의 맑은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무고한 산새들도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

스무 살의 청년, **비연(飛硯)**은 피와 살이 뒤섞인 아비규환 속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 채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칠현문의 장문인, 즉 그의 사부(師父)가 마지막 순간 건네준 작은 옥패 하나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옥패는 차가웠지만, 비연의 심장은 뜨겁게 타오르는 화로처럼 고동쳤다.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씨앗까지 말려버려야 한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날아들었다. 그것은 이 파멸을 주도하는 이, 즉 **천마신교(天魔神敎)**의 간부 중 한 명일 터였다. 그들의 무자비한 살육은 칠현문 제자들의 굳건했던 저항을 점차 짓밟고 있었다.

비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눈꺼풀 안에서도 붉은 피와 시신들이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그는 칠현문의 꼴통이라 불릴 정도로 무공에 재능이 없었다. 남들보다 몇 배를 노력해도, 기재(奇才)들의 뒤꽁무니조차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강점은 오직 경공(輕功)과 은신술(隱身術), 그리고 비상한 관찰력뿐이었다. 그의 사부는 늘 그에게 말했다.

"비연아, 너는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재주는 없으나, 그림자를 숨기는 재주로는 천하 제일이다. 살아남는 것이 곧 무공이다. 절대 잊지 마라."

그리고 지금, 그 사부의 가르침이 그를 살리고 있었다.

숨어 있는 곳 바로 옆, 사백(師伯)의 시신이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의 심장에 박힌 검은 사파(邪派) 특유의 사기가 서린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비연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온몸이 분노와 슬픔으로 떨렸지만, 그는 단 하나의 미세한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 움직이는 것은 죽음이었다.

잠시 후, 살육을 끝낸 검은 옷의 무리들이 마치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뒤처럼 칠현문의 잔해 위를 배회했다. 그들의 무기는 피로 번들거렸고, 그들의 얼굴에는 잔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보물 창고는? 장문인의 서고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이 늙은이들이 워낙 치밀해서..."

"닥쳐! 이 칠현문에는 천하를 바꿀 만한 무공의 진수가 숨겨져 있다! '파천비록(破天秘錄)'과 '칠현검보(七賢劍譜)'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파천비록. 비연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것은 칠현문의 시조(始祖)가 남긴, 무(武)의 극한을 담은 비전(秘傳)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파천비록은 문파의 창고가 아닌, 그의 사부가 아끼던 서안(書案) 밑 비밀 공간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때, 비연의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놈이 마지막 남은 씨앗일 것이다! 찾아라!"

검은 무리들의 발소리가 점점 비연이 숨어 있는 은밀한 공간 쪽으로 다가왔다. 흙과 피의 냄새가 뒤섞인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비연은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다가오는 발소리, 핏물을 뚝뚝 흘리는 검, 그리고 그의 귓가에 울리는 사부의 목소리.

'살아남는 것이 곧 무공이다.'

비연은 결심했다. 살아야 했다. 이 처참한 멸문의 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언젠가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불씨가 되어야 했다.

발소리가 가장 가까워졌을 때, 비연은 자신의 온 경공술을 응축했다.

'취령비(翠靈飛)!'

땅을 박차는 소리조차 나지 않게, 비연은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는 칠현문의 가장 높은 망루를 향해, 죽음이 도사리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저기 있다! 잡아라!"

뒤늦게 그의 존재를 알아챈 천마신교도들이 포효했다. 수십 개의 그림자가 그를 쫓기 시작했다.

비연은 망루의 끝에서 잠시 멈췄다. 아래는 지옥이었고, 위는 망망한 밤하늘이었다. 그는 손에 쥔 옥패를 힘껏 움켜쥐고, 피로 물든 칠현문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공포가 아닌, 집착적인 생존 의지깊은 증오가 서린 차가운 빛이었다. 그는 까마귀처럼 칠현문의 담장을 넘어, 취령봉의 험준한 산세를 따라 미끄러지듯 도망쳤다.

칠현문은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멸문의 복수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진, 무공 재능 없는 한 청년, 비연뿐이었다.

강호는 이 밤을 '칠현문의 비극'이라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강호는 알지 못했다. 이 절망적인 밤에, 훗날 강호를 피로 물들일, 아니 강호를 파천(破天)할 혈주(血主)의 씨앗이 심어졌다는 것을.

 


제1장. 지옥에서 벗어난 그림자, 묵룡당의 덫

1. 산속의 조우: 죽음과 기연 사이

칠현문을 뒤로하고 무작정 도망치던 비연은, 온몸의 기력이 소진된 것을 느꼈다. 그의 필사적인 경공은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였지만, 무공의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아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천마신교도의 날카로운 비도(飛刀)가 스쳐 지나간 상처가 깊게 패여 있었다. 욱신거리는 통증보다 더 심각한 것은 체내를 잠식하는 사파의 독기였다. 독은 그의 피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 온몸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낼 수는..."

비연은 이를 악물었다. 사부와 사제들의 핏자국이 그의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는 쓰러지면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숨길 곳을 찾았고, 결국 취령봉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작은 동굴 입구에 겨우 몸을 기댈 수 있었다.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할 무렵, 비연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동굴 안쪽에서 들려오는, 철컹거리는 쇳소리와 미세한 기계음. 무인들의 움직임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다듬는 소리였다.

그때, 비연의 뇌리에 칠현문 사부의 가르침이 스쳤다.

'무인들의 눈을 피하는 가장 좋은 곳은, 무인들이 관심 갖지 않는 곳이다. 상인이나 은자(隱者)들이 드나드는 곳을 찾아라.'

비연은 죽을힘을 다해 기어 들어갔다.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은, 동굴 입구 주변의 풀과 이끼가 인위적으로 덧대어져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곳은 단순한 동굴이 아니었다.

동굴 깊은 곳, 조잡하게 만들어진 횃불 아래, 중년의 남자가 거대한 쇠붙이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는 검은 옷에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져 있었고, 손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무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숙련된 **야장(冶匠)**에 가까웠다.

남자는 비연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큭, 피 냄새를 풀풀 풍기는군. 네놈은 누구냐? 그리고 대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비연은 말을 할 힘조차 없었다. 독기와 출혈로 그의 피부는 창백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사부가 준 옥패를 힘겹게 들어 보였다.

"이... 이것은... 칠현문의... 표식..."

남자의 눈이 옥패를 보자마자 차갑게 빛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비연에게 다가와 옥패를 낚아챘다. 그리고 비연의 어깨 상처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흥, 칠현문이라. 이제는 이름만 남은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잔당이로군. 게다가 이 독기는 천마신교의 것이다. 제 발로 지옥을 등에 지고 왔으니."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동굴 안쪽 깊숙한 곳으로 비연을 끌고 갔다. 비연은 저항할 수 없었다. 남자가 그에게 주사를 놓았는지, 아니면 특수한 약을 먹였는지, 비연은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2. 묵룡당: 강호의 거대한 암흑 경제

비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전의 동굴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깔끔하게 정돈된 방에 누워 있었다. 어깨의 상처는 깨끗하게 소독되고 약재가 발려져 있었으며, 몸속을 휘젓던 독기 또한 신기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중년의 야장이 아니었다.

흰 비단옷을 입은,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단아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호수처럼 고요했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깨어났군요. 칠현문의 마지막 남은 '그림자'시여." 여인이 잔잔하게 입을 열었다.

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여인이 조용히 손짓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제가 해독에 쓴 약재는 천금(千金)에 달하는 귀한 것입니다. 함부로 몸을 놀리면 그 효험을 잃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이곳은 어디고?" 비연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여인은 우아하게 찻잔을 들고는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이 깊은 산속에서 무기 연구와 제작을 하는 조직, **묵룡당(墨龍堂)**의 '매화(梅花)'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발견한 야장은 이 묵룡당의 장로 중 한 분이시죠."

비연의 눈이 커졌다. 묵룡당. 강호에서는 그 이름이 공공연하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그 존재를 짐작하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묵룡당은 무림의 모든 분쟁에 관여하지 않지만, 그들이 만드는 암기(暗器)와 병장기는 천하 제일이었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심지어 정파(正派)와 사파(邪派) 모두에게 물건을 팔았다. 그들의 힘은 순수한 무력이 아닌, 강호의 경제권정보력에 있었다.

"묵룡당이 왜 저를 살렸습니까? 천마신교가 저를 찾고 있을 텐데,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을 텐데요." 비연은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무림에서 대가 없는 호의는 없었다. 특히 묵룡당 같은 조직이라면 더욱.

매화는 미소를 지었다. 차갑지만 매혹적인 미소였다.

"당신이 칠현문의 옥패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옥패는 곧 '파천비록'을 찾을 수 있는 단서이자, 칠현문의 잔여 재산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옆에 놓인 작은 은비수(銀匕首)를 가리켰다.

"비연 님, 저는 당신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칠현문이 멸문당한 밤, 수십 명의 고수들의 눈을 피해 망루까지 도달한 당신의 경공술과 은신술은 무공의 재능과는 별개로, 천재적입니다."

"당신의 사부가 당신을 '그림자'라 칭했다고 들었습니다. 묵룡당은 '그림자'가 필요합니다. 무공을 익히지는 못했으나,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며, 어떤 정보도 놓치지 않는 그림자 말입니다."

매화는 비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 묵룡당은 당신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무기와 정보, 그리고 천마신교에 맞설 수 있는 자금과 힘을 은밀하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대신, 당신은 묵룡당의 그림자가 되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때로는 우리의 무기를 시험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거래였다. 지옥에서 겨우 빠져나온 비연에게 내밀어진, 독이 든 꿀이었다.

비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이미 칠현문의 순진한 제자가 아니었다. 멸문당한 문파의 복수심으로 가득 찬, 생존 본능만이 남은 짐승의 눈빛이었다.

"묵룡당의 그림자라... 좋아요. 당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겠습니다."

비연은 고개를 들고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언젠가 천마신교의 수장에게 칼을 꽂을 때, 그 칼은 제 손으로 꽂아야 합니다. 그때까지 당신들은 저를 그림자처럼 숨겨주고, 제가 원하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매화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입니다. 묵룡당은 늘 약속을 지키는 집단입니다. 환영합니다, 비연 님. 이제 당신은 칠현문의 제자가 아닌, 묵룡당의 그림자... 묵영(墨影)입니다."

새로운 이름, 새로운 운명. 비연은 복수를 위해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날개깃은 이제 피로 물든 복수의 먹빛을 띠기 시작했다.

제2장. 묵영(墨影)의 탄생: 그림자를 조련하는 어둠

1. '흑노'와 피의 계약 이행

묵룡당의 본거지는 취령봉의 깊은 동굴 뒤편에 숨겨진 거대한 지하 도시였다. 강호의 모든 무기와 정보가 이곳을 거쳐 나가는, 말 그대로 '암흑 경제의 심장부'였다.

비연은 매화와의 계약 이후, 곧바로 묵룡당의 비밀 훈련장으로 보내졌다. 그의 훈련을 맡은 자는 묵룡당에서 '묵영'들을 조련하는 **흑노(黑老)**라는 노인이었다. 흑노는 한쪽 눈이 움푹 들어가 있었고,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보기만 해도 냉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었다.

"네놈이 칠현문의 그림자라는 비연인가?" 흑노는 비연의 몸을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내공은 바닥이고, 골격은 검을 쥐기에 부적합하다. 사파의 하급 무인에게도 목숨을 잃을 재목이로군."

"저는 무공이 아닌, 그림자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비연은 주눅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복수심이 배어 있었다.

"좋다. 네놈의 재능이 정말 그림자를 만들 수 있는지 보자."

흑노의 훈련은 자비가 없었다. 그것은 무공 수련이 아니라, 극한의 환경에서 오직 살아남는 법을 체득시키는 생존 훈련이었다. 비연의 약점을 보완하는 대신, 타고난 강점인 경공과 관찰력을 **무(武)**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2. 극한의 그림자 훈련

첫 번째 훈련은 **'무흔도(無痕道)'**였다. 훈련장 바닥에는 모래보다 더 고운 흑색 화약이 얇게 깔려 있었다. 이 위를 지나갈 때, 발자국이나 먼지 한 톨이라도 일으키면 실패였다.

"경공은 속도가 아니다. 하중을 분배하는 정교함이다. 네놈의 몸무게를 허공에 뿌려라!"

비연은 처음에는 넘어지고, 화약을 사방에 흩뿌리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칠현문 멸문의 밤, 망루를 향해 날아오르던 필사적인 감각을 되살렸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찰나의 순간, 몸의 무게를 수십 개의 지점으로 쪼개는 듯한 정밀함을 익혀나갔다. 한 달 후, 그는 흑색 화약 위를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유유히 지나갔고, 심지어 흑노가 던진 쇠구슬을 밟고도 소리 없이 착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음은 '청음무(聽音霧)' 훈련이었다. 완전히 빛이 차단된 지하 통로에서, 비연은 오직 소리와 기류의 변화만으로 장애물을 피하고 적을 식별해야 했다.

"그림자는 눈이 아니라 귀로 봐야 한다. 작은 숨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발목이 땅을 누르는 미세한 압력의 차이를 읽어라. 그것이 곧 정보고, 생명이다."

비연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는 원래부터 예민했던 감각을 극한까지 확장시켰다. 습기가 많은 곳, 건조한 곳, 심지어 독성이 있는 연기가 감도는 곳에서도 그는 발소리의 울림, 공기의 밀도 차이만으로 통로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려냈다.

흑노는 비연의 무공 재능은 없지만, 생사를 가르는 위기 속에서 솟아나는 정신력관찰력만큼은 천하 제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은 검을 다루기에 부적합했으나, 경공을 익히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민첩한 움직임을 타고났던 것이다.

3. 묵룡당의 첫 번째 임무

석 달 후, 비연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의 몸은 군더더기 없이 단련되었고, 그의 눈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꿰뚫어 보는 듯 냉정해졌다. 그는 묵룡당의 **묵영 칠호(墨影七號)**로 명명되었다.

매화가 그를 다시 찾았다. 그녀는 여전히 단아했지만, 그의 성장을 눈치채고는 경계심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비연 님, 아니 묵영 칠호."

"명령을 내리십시오, 매화 님." 비연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의 첫 임무는 정찰입니다. 최근 천마신교가 남쪽 변방의 한 중소 문파, **'혈도맹(血刀盟)'**과 접촉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비연의 눈이 번뜩였다. 천마신교. 그의 복수의 대상이었다.

"혈도맹은 보잘것없는 조직이지만, 그들의 배후에는 강호에서 은둔한 지 오래된 **무기 장인 '공벽(孔璧)'**이 있습니다. 그는 최근 강철보다 가볍고, 검기에 반응하는 특수한 재질의 암기 제작 기술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매화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천마신교는 이 암기를 대량으로 확보하여, 대규모 정파 공격에 사용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묵룡당의 이익은 강호의 균형에 있습니다. 천마신교가 너무 강해지는 것은 우리에게도 위협이죠."

"당신의 임무는 혈도맹의 본거지에 침투하여, 공벽이 개발한 암기의 설계도납품 계획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싸움도 피하십시오. 당신의 가치는 '침투'와 '정보 획득'에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안전을 위해 묵룡당의 특수 은신용 연막탄 '묵운진(墨雲塵)'을 지급할 것입니다."

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몸은 이미 임무를 위해 최적화된 살인 기계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무공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그림자로서 목표를 완수하는 임무. 이것이야말로 그가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복수의 첫 단계였다.

"제가 확보한 정보는 곧 천마신교의 움직임입니다. 이 정보를 이용해 복수의 길을 열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길은 당신이 스스로 여는 것입니다." 매화는 옥패를 비연에게 돌려주었다. "이 옥패는 당신이 칠현문의 유일한 생존자임을 증명합니다. 파천비록의 단서가 되어 줄 수도 있죠. 잊지 마세요. 당신의 몸값은 천금이지만, 묵룡당의 정보는 강호의 목숨과 같습니다."

비연은 옥패를 품에 넣고, 묵룡당의 지하 통로를 통해 지상으로 향했다. 그는 이제 칠현문의 나약한 제자가 아니었다. 칠흑 같은 복수심절대적인 생존 능력으로 무장한 묵룡당의 그림자, 묵영 칠호 비연이었다. 강호는 그가 만들어낼 파란을 아직 알지 못했다.

제3장. 천겁곡의 그림자: 첫 번째 임무와 비밀의 단서

1. 천겁곡(千劫谷) 침투

혈도맹의 본거지인 천겁곡은 이름 그대로 천 가지 재앙이 도사리는 듯한 험준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독초와 맹수가 우거진 골짜기에는 음습하고 사악한 기운이 감돌았고, 혈도맹 특유의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그들의 잔혹함을 대변했다.

비연은 묵룡당에서 지급받은 칠흑 같은 천으로 온몸을 감쌌다. 그의 움직임은 바람에 스치는 낙엽만큼이나 가벼웠고, 그림자처럼 땅에 들러붙었다. 그는 경공술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극한의 은신술로 승화시켰다.

흑노의 훈련 덕분에, 비연은 혈도맹 무인들의 배치, 순찰 간격, 심지어 그들의 숨소리의 크기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의 경계는 삼엄했으나, 비연의 눈에는 그저 엉성한 벽에 난 커다란 구멍처럼 보일 뿐이었다.

밤 9시, 순찰조가 가장 멀리 떨어진 순간.

비연은 **묵운진(墨雲塵)**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경공과 은신술만으로 첫 번째 담장을 넘었다. 벽 위에는 혈도맹 특유의 독성 옻칠이 발라져 있었지만, 비연은 손가락 끝의 미세한 감각만으로 옻칠이 없는 틈새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는 건물 지붕 위를 밟았다. 훈련장에서 익힌 하중 분배 능력 덕분에, 기와가 삐걱거리는 작은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2. 무기 장인 공벽과의 조우

혈도맹 본채 깊숙한 곳, 가장 견고해 보이는 건물. 그곳이 바로 무기 장인 공벽의 공방이자 서고였다.

비연은 건물의 환기창을 통해 침투했다. 내부에는 퀘퀘한 쇠 냄새와 화약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쇳가루가 쌓여 있었다. 그는 청음무 훈련을 통해 단련된 감각으로 내부의 기류 변화를 감지하며 서고의 위치를 특정했다.

서고의 문은 단순한 자물쇠가 아닌, 정교한 기계 장치로 잠겨 있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파괴하려 했겠지만, 비연은 묵룡당의 훈련을 통해 접했던 복잡한 기계 장치에 대한 지식으로 자물쇠의 구조를 머릿속에 분석했다.

'이것은 단순한 잠금장치가 아니라, 묵룡당의 초기 모델과 유사한 기계식 경보 장치다.'

비연은 옷깃에서 얇고 유연한 은침을 꺼냈다. 그는 손에 힘을 완전히 빼고, 마치 물 흐르듯이 은침을 기계 장치의 틈새로 밀어 넣었다. '딸깍'하는 아주 미세한 소리. 문이 열렸다.

서고 안은 거대한 책장과 도면들로 가득했다. 비연은 주위를 경계하며 목표물인 암기의 설계도와 납품 계획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서고 구석의 책장 뒤편에서 희미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비연은 즉시 벽과 책장 사이의 좁은 틈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은신술은 이제 그림자조차 지우는 경지에 이르렀다.

기침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무기 장인 공벽이었다. 그는 60대의 노인으로, 창백한 안색에 심각하게 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비단 천으로 감싼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공벽은 탁자에 앉아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움켜쥐더니, 낡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것이 바로 비연이 찾던 암기의 설계도일 터였다.

비연은 관찰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도면을 눈에 담았다. 도면에는 특이한 재질의 합금 비율과 암기의 구조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때, 공벽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흐흐... 천마신교주께서는 이 무기가 완성되면, **'천겁철(千劫鐵)'**로 명명하고, 첫 번째 시험 대상으로 **'그곳'**을 지목하셨지..."

천겁철. 그리고 '그곳'. 비연은 귀를 기울였다. 그 다음 공벽의 말이 비연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칠현문 멸문... 그들의 '비혈강(秘血鋼)'을 얻으려 했던 천마신교주의 집착은 이 천겁철을 만들기 위한 시작이었어!"

비연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칠현문 멸문의 진짜 이유는 무공 비급 때문이 아니었다! 비혈강(秘血鋼). 그것은 칠현문이 무기 제작에 사용하여 검과 병장기의 강도와 유연성을 높이던, 극소량만 제작되던 특수한 강철이었다.

비연은 사부에게서 비혈강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칠현문의 무인들만이 아는 극비 사항이었다. 천마신교는 '파천비록'을 구실로 삼았지만, 진짜 목적은 칠현문의 무기를 만드는 재료였던 것이다.

공벽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비혈강은 오직 칠현문의 특수 제련법을 통해서만 합금될 수 있어... 그 제련법을 기록한 **'파천비록의 진본'**은... 장문인만이 알았겠지..."

파천비록의 진본은 무공 비급이 아니라, 비혈강의 제련법이 기록된 서책이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 칠현문은 무림의 평화를 수호하는 문파였으나, 그들이 가진 특수한 강철 제작 기술 때문에 멸문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천마신교는 그 기술을 이용해 천겁철을 만들어 강호를 파괴하려 하고 있었다.

3. 도면 획득과 위기

비연은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재빨리 행동했다. 공벽이 잠시 기침하는 사이, 비연은 그림자처럼 움직여 탁자 위의 설계도를 낚아챘다.

설계도를 품에 넣으려는 순간, 비연의 등 뒤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왔다.

"네놈! 누구냐! 감히 이곳에 그림자를 숨기다니!"

공벽이 아니었다. 서고 천장에서 내려온 것은, 혈도맹의 실질적인 2인자인 **혈수마(血手魔)**였다. 그는 사파 중에서도 악명이 높은 독공(毒功)의 달인이었다. 그는 비연이 들어오기 전부터 천장에 은밀하게 숨어 있었고, 비연의 침투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비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어 날아오는 혈수마의 손톱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사파 독공의 기운이 그의 피부를 스치자마자, 온몸에 마비가 오는 듯했다.

"큭!"

"경공술은 꽤 쓸 만한 녀석이군. 하지만 독(毒) 앞에서는 그림자도 소용없다! 죽어라!"

혈수마는 자신의 온몸을 독기로 감싸며 달려들었다. 비연은 정면 승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무공은 혈수마의 발톱 하나도 막아낼 수 없었다.

비연은 지체 없이 주머니에서 묵운진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연기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지면서 서고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혈수마는 독기로 연기를 걷어내려 했지만, 묵운진은 묵룡당 특유의 특수 재료로 만들어져 독공으로도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이 짧은 찰나의 순간!

비연은 온몸의 기력을 끌어모아 '취령비'를 시전했다. 그는 지붕으로 연결된 환풍구를 향해, 마치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솟구쳐 올랐다.

"놓치지 않는다!" 혈수마가 연기 속에서 포효하며 비연을 향해 독기를 뿌렸으나, 이미 비연은 빠져나간 뒤였다.

비연은 천겁곡을 탈출하며, 손에 쥔 설계도와 공벽의 말을 떠올렸다.

멸문의 진실. 그것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강호의 패권을 다투는 거대한 무기 전쟁의 서막이었다. 비연의 복수는 이제 파천비록의 진본을 찾아, 천마신교의 무기 제조 음모를 저지하는 임무와 결부되었다.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어둠 속을 질주했다. 복수를 위한 그림자의 날개는 더욱 굳건해지고 있었다.

제4장. 낙양(洛陽)의 심연: 비록(秘錄)의 진본을 찾아서

1. 묵룡당의 충격과 전폭적 지원

천겁곡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비연은 묵룡당의 가장 깊숙한 지하 밀실에서 매화와 다시 마주했다. 비연의 몸은 전투의 흔적 대신, 극한의 임무를 완수한 그림자 특유의 차가운 침착함만이 감돌았다.

"혈도맹 암기 설계도입니다."

비연이 매화에게 건넨 두루마리는 단순한 무기 도면이 아니었다. 매화는 그것을 펼쳐보자마자, 날카롭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설계도의 핵심 재료는 바로 칠현문의 **비혈강(秘血鋼)**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칠현문은... 무공 비급 때문이 아니라, 제련술 때문에 멸문당했습니다. 파천비록의 진본은 무(武)의 비전이 아닌, 비혈강의 제련법이 담긴 공학 서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연의 보고는 차갑고 명확했다. 매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파천비록이 무공서가 아닌 제련술이라니... 이 정보를 천마신교가 독점한다면, 강호 무기 시장은 완전히 붕괴됩니다. 그들이 비혈강을 이용해 설계도대로 천겁철을 대량 생산한다면, 정파는 물론 우리 묵룡당의 무기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매화는 비연이 가져온 정보의 무게를 즉각적으로 파악했다. 이는 단순한 문파 간의 복수극이 아니라, 강호의 힘의 균형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묵룡당은 무기 상인 집단으로서, 이 균형을 유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었다.

"묵영 칠호. 당신은 묵룡당의 존립을 위협하는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당신의 복수는 이제 우리 묵룡당의 최우선 임무가 되었습니다."

매화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묵영 칠호가 아닌, 묵룡당의 **특급 묵영(特級墨影)**으로 격상됩니다. 당신은 묵룡당의 모든 자원과 정보를 무제한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파천비록의 진본을 찾아 천마신교의 무기 제조를 저지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복수이자, 강호를 구하는 일입니다."

비연은 고개를 숙였다. 전폭적인 지원은 복수를 향한 그의 길을 몇 배나 단축시켜 줄 터였다. 그의 복수심은 이제 개인의 원한을 넘어, 강호의 질서를 되찾는 명분까지 얻게 되었다.

2. 특급 묵영, 낙양으로 향하다

비연은 묵룡당 최고의 보급 창고에서 새로운 장비를 지급받았다.

그에게 지급된 것은 묵룡당이 자랑하는 특수 경공화 **'천공화(天空靴)'**였다. 발목 부분에 섬세한 내공 진동 장치가 숨겨져 있어, 미세한 내력만으로도 발을 디딜 때의 충격을 흡수하고 반발력을 증폭시켜 주는 최첨단 장비였다. 이는 내공이 부족한 비연의 경공술을 천하 제일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터였다.

또한, **'청심안(聽心眼)'**이라는 특수 제작된 망원경 모양의 암기를 받았다. 이는 단순히 멀리 보는 것을 넘어, 특수 약재가 발린 렌즈를 통해 멀리 있는 사람의 미세한 심장 박동이나 호흡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관찰 보조 도구였다. 비연의 타고난 관찰력과 결합될 경우, 그는 살아있는 **천리안(千里眼)**이 되는 셈이었다.

새로운 임무는 **낙양(洛陽)**이었다.

"칠현문 장문인께서는 생전 낙양의 상인들과 교류가 깊었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낙양의 서안가(書案街)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파천비록의 진본은 무공에 관심 없는 상인이나 문인에게 맡겨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낙양은 강호의 중심부이자, 천하의 모든 상인과 무인, 정보가 교차하는 거대한 도시였다. 그만큼 천마신교를 비롯한 모든 세력의 눈과 귀가 집중된,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3. 낙양의 붉은 실크, 비단회(緋緞會)

낙양으로 향하는 길목, 매화는 비연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낙양에는 강호의 모든 정보를 다루는 거대한 상단이자 정보 조직인 **비단회(緋緞會)**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고급 비단과 보석을 거래하지만, 실상은 강호의 모든 정보를 사고파는 조직이죠."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비단회의 총수 **'홍안주(紅顔主)'**는 천마신교와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칠현문 멸문 이후, 칠현문의 모든 기록과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단회. 겉과 속이 다른 이 조직이, 파천비록 진본을 찾는 열쇠일 터였다.

낙양성 문에 들어선 비연은 압도적인 인파와 활기에 잠시 숨을 멈췄다. 거대한 도시의 냄새, 돈과 권력, 음모와 욕망이 뒤섞인 강렬한 기운이었다.

그는 낡은 행색을 버리고, 묵룡당이 제공한 고급 비단옷으로 갈아입은 채, 한 명의 유력 상인 행세를 했다. 그의 이름은 '묵호(墨虎)'. 묵룡당의 새로운 신분이었다.

낙양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그의 귀에는, 사방에서 수많은 정보의 파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천마신교가 곧 대규모 움직임을 시작한다던데...' '새로운 무기가 대량으로 유입된다는 소문이 있어...' '비단회의 홍안주가 최근 어떤 귀한 물건을 비밀리에 사들였다더군...'

비연은 청심안을 작동시키듯, 이 모든 소리들을 분석하고 분류했다. 무공의 대가는 아니었지만, 정보의 세계에서 그는 이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절대자였다.

비연은 낙양에서 가장 화려하고 은밀하다는 비단회의 본점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걸음은 묵영 특유의 소리 없는 발걸음이었으나, 그 발걸음은 멸문당한 문파의 굳건한 복수심으로 천근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비단회의 홍안주가 숨기고 있는 파천비록의 진본, 그리고 칠현문 멸문의 마지막 비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낙양의 심연이, 그림자 묵호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제5장. 비단회의 경매: 그림자의 '무공 없는' 결전

1. 어둠의 경매장, 홍안주(紅顔主)

낙양 비단회 본점의 지하 깊은 곳에는, 강호에서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정보가 거래되는 '어둠의 경매장'이 숨겨져 있었다. 비연, 즉 묵호(墨虎)는 묵룡당의 특급 신분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이 비밀 경매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아냈다.

경매장은 화려한 붉은 비단과 묵직한 황금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으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은 탐욕과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정파와 사파의 거물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보상들이 모여 있었다.

무대의 중심에는 비단회 총수 홍안주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붉은색 비단 치파오를 입고 있었으며, 30대 중반의 농염한 미모는 경계를 늦추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비단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녀는 칠현문 멸문의 유산으로 부를 축적한 장본인일 터였다.

경매가 무르익을 무렵, 홍안주가 우아한 손짓으로 마지막 물건을 소개했다.

"강호의 모든 분들이 기다리셨을 물건입니다. 20년 전 멸문당한 칠현문의 마지막 비밀. 천하 제일의 무공 비급으로 알려진, **파천비록(破天秘錄)**의 진본입니다."

경매장 안의 모든 시선이 중앙 무대에 집중되었다. 그녀의 옆에 선 경호원이 낡고 두툼한 비단 표지의 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비연은 '청심안'을 이용해 책의 상태를 관찰했다. 책의 표지는 낡았지만, 그 안에 배어 있는 기운은 단순한 종이가 아닌, 특수한 제련술 서책 특유의 쇠 냄새와 특유의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비연이 칠현문 멸문의 밤에 발견했던 파천비록의 진실과 일치했다.

"경매 시작가... 묵금(墨金) 50만 냥입니다."

숨 막히는 정적이 경매장을 짓눌렀다. 50만 냥은 중소 문파 하나를 사고도 남을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2. 천마신교의 등장: 흑수사

그때, 경매장 구석에서 칠흑 같은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가 일어섰다. 그들의 등 뒤에는 천마신교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 무리의 선두에 선 사람은 **흑수사(黑手士)**였다. 그는 날카로운 매의 눈빛과 고위 간부 특유의 잔혹함을 지니고 있었다.

"흥. 칠현문의 찌꺼기를 가지고 장난치는군. 홍안주. 우리는 묵금 100만 냥을 제시한다. 더 이상 쓸데없는 소모전은 원치 않는다. 파천비록은 오직 천마신교의 것이다."

흑수사는 권력과 무력으로 경매를 찍어 누르려 했다. 다른 무인들은 천마신교의 위세에 눌려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바로 그때, 비연이 몸을 숨기고 있던 2층 난간 아래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묵금 100만 냥에... 10만 냥을 더 얹겠다."

모두의 시선이 비연이 숨어 있는 2층으로 쏠렸다. 묵호의 신분으로 위장한 비연은 여전히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목소리만으로 경매에 참여했다.

흑수사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었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천마신교의 거래에 끼어들다니!"

"저는 묵룡당의 후원 아래 움직이는 일개 상인일 뿐입니다. 파천비록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 진가를 얻을 자격이 있겠죠." 비연은 그의 말을 그대로 되받아쳤다.

홍안주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그녀는 묵룡당의 자금력과 정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묵호 님의 110만 냥! 더 없습니까?"

흑수사는 비연의 정체가 묵룡당의 특급 묵영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저 강호의 정보를 독점하려는 묵룡당의 움직임이라 생각하고 분노했다.

"좋다! 묵금 200만 냥! 지금 즉시 내놓겠다! 묵룡당은 더 이상 이 이상한 책에 돈을 낭비하지 마라!" 흑수사는 협박했다.

3. 그림자의 행동: 정보와 기계의 역습

200만 냥. 비연이 가진 묵룡당의 자금 한계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더 이상의 경쟁은 무의미했다. 이제는 **'묵영(墨影)'**의 방식으로 움직일 때였다.

"200만 냥이라... 좋습니다. 하지만 천마신교의 흑수사 님, 당신이 가져온 200만 냥은 위조된 것일 가능성이 높군요." 비연의 목소리가 냉정하게 울려 퍼졌다.

경매장 안이 술렁였다. 흑수사는 코웃음을 쳤다. "무슨 헛소리냐! 감히 천마신교의 금전 출처를 의심하다니, 죽고 싶은가!"

"의심이 아닙니다. 관찰입니다." 비연은 청심안의 특수 렌즈로 흑수사가 가져온 금고와 그 옆의 무인들을 빠르게 분석했다.

"당신이 가져온 묵금 상자에서는 칠현문의 비혈강을 제련할 때 발생하는 특수한 쇠비린내화약 잔여물이 감지됩니다. 위조 금전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특수 상자에 그 금전을 담았군요. 게다가 당신의 호흡은 평소보다 5회 이상 빠릅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의 전형적인 심리적 불안정 상태입니다. 당신은 파천비록의 진본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무력으로 탈취하려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비연의 분석은 너무나 정확했고, 마치 예언과 같았다. 흑수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비연은 무공 없이, 오직 정보와 관찰력만으로 상대의 심리를 꿰뚫어 본 것이다.

"저자를 잡아라!" 흑수사는 분노하며 경매장에 숨어 있던 천마신교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경매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연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순간,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품속에서 **천공화(天空靴)**의 미세 진동 장치를 작동시켰다.

"죄송하지만, 파천비록은 제가 가져가야겠습니다."

비연은 2층 난간에서 몸을 날렸다. 그는 일반적인 경공이 아닌, 발이 난간에 닿는 순간 진동 장치의 힘을 이용해 수직으로 튕겨 나가는 특수 경공을 선보였다. 공중에서 그는 마치 새처럼 가볍게 몸을 틀어, 파천비록이 놓인 무대로 곧장 향했다.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암기를 던지며 그를 저지하려 했으나, 비연은 발바닥이 땅에 닿는 미세한 순간의 힘을 조절하여 모든 암기를 피했다. 그의 경공은 이미 무공의 영역을 넘어선, 예술적인 기예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비연이 파천비록을 손에 넣는 순간, 홍안주는 경고했다.

"묵호! 그걸 가져가면, 비단회와 묵룡당은 결별이다!"

"비단회의 총수님. 칠현문 멸문의 유산을 사파와 거래한 당신이 묵룡당과 결별을 논할 자격은 없습니다. 강호의 균형은 돈이 아닌, 진실로 세워지는 법입니다."

비연은 책을 품에 안고, 흑수사를 향해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일격을 가했다. 무공이 아닌, 묵룡당의 특수 **은신용 연막탄 '묵운진'**을 그의 얼굴 정면에 던져 넣었다.

펑!

연막탄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묵룡당 특유의 특수 재료는 일종의 마비 독을 포함하고 있었고, 정면에 직격당한 흑수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비연은 칠흑 같은 연기 속에서 그림자처럼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손에는 멸문의 진실이자, 강호를 구할 유일한 희망인 파천비록의 진본이 들려 있었다.

 

제6장. 파천비록의 진실: 제련의 치명적 약점

1. 파천비록의 해석과 묵룡당의 반격 전략

비연은 낙양에서 탈출하여 묵룡당의 본거지로 무사히 복귀했다. 그의 손에 들린 낡은 비단 책, 파천비록의 진본은 천마신교의 무기 제조 음모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핵심이었다.

매화는 묵룡당 최고의 무기 제련 전문가들과 함께 파천비록을 분석했다. 예상대로 책의 내용은 무공 비급이 아닌, **비혈강(秘血鋼)**을 제련하는 고도의 야금술(冶金術)과 관련된 기록이었다.

며칠 밤낮의 연구 끝에, 전문가들은 비혈강이 가진 놀라운 강도와 유연성의 비밀을 밝혀냈다. 그것은 강철에 특수한 광물을 합금할 때, 특정한 **'음양의 기운'**이 필요한데, 이 기운을 얻기 위해 취령봉(翠靈峰) 깊은 곳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약초를 미세하게 첨가하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분석팀은 비연이 가져온 천겁철 설계도와 파천비록을 대조하던 중, 치명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매화 님, 큰일 났습니다! 이대로라면 천마신교는 자멸하게 될 것입니다!" 한 제련 전문가가 소리쳤다.

파천비록의 마지막 장에는 칠현문의 시조가 경고하는 중요한 주석이 달려 있었다.

'비혈강은 고열에 의해 단련되나, 특수 약초의 음기가 사라지면 그 강도는 열 배로 치솟는다. 허나, 그 강도가 극한에 달하면 외부의 작은 음파 진동에도 내부의 분자 구조가 취약해져 모래처럼 부서진다. 비혈강은 오직 정의로운 힘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악의 기운이 깃들면 스스로 파멸할 것이다.'

즉, 비혈강은 극한의 고강도를 지니지만, 특정 주파수의 진동에 극도로 취약해지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천마신교가 이 약점을 모른 채 비혈강으로 무기를 만든다면, 그 무기는 정작 자신들을 공격하는 부메랑이 될 터였다.

매화는 비연을 바라보았다. "비연 님, 당신의 복수가 현실이 될 때가 왔습니다. 천마신교는 파천비록의 마지막 장, 즉 이 치명적인 약점을 모른 채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것입니다."

묵룡당은 즉시 천마신교에 대한 대규모 역습 계획, **'파천(破天) 계획'**을 수립했다. 비연이 가져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묵룡당은 비혈강 무기에 반응하는 '특수 진동 암기' 개발에 착수했다.

2. 마철곡(魔鐵谷) 침투와 재회의 적

천마신교의 무기 생산 기지는 서쪽 변방의 깊고 험한 계곡, **마철곡(魔鐵谷)**에 있었다. 쉴 새 없이 쇳물 타는 냄새와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진동하는, 사파 무기의 심장부였다.

비연의 마지막 임무는 명확했다. 특수 진동 암기가 완성되기 전, 마철곡에 침투하여 천마신교의 무기 생산 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결정적으로 칠현문 멸문의 주범 중 하나인 핵심 간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마철곡의 책임자는 **혈화독(血花毒)**입니다. 칠현문 멸문의 밤, 장문인께서 마지막까지 싸우셨던 그 천마신교의 고수입니다." 매화가 경고했다. "그는 독공과 무력을 모두 겸비한 강자입니다. 절대로 정면 승부를 하지 마십시오."

혈화독. 비연의 눈앞에 칠현문이 멸망하던 밤, 사부의 가슴에 검을 꽂았던 그림자가 떠올랐다. 복수의 대상이었다.

비연은 묵룡당이 새로 지급한 **진동 암기(震動暗器)**를 챙겼다. 이는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었으나, 비혈강의 취약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데 중점을 둔 특수 무기였다.

마철곡으로 향하는 길. 비연은 더 이상 그림자처럼 숨어 다니지 않았다. 그의 경공은 이제 산세를 타고 흐르는 바람과 같았고, 그의 내면은 복수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었다.

3. 화로 속의 그림자

마철곡의 경계는 천겁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삼엄했다. 수십 명의 고수들이 순찰을 돌았고, 곳곳에는 독성 안개가 자욱했다.

하지만 비연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청심안으로 독성 안개의 미세한 흐름을 읽고, 천공화로 독 안개 위를 밟지 않고 날아다녔다.

마침내, 가장 깊숙한 제련소. 거대한 화로들이 쉼 없이 타오르고 있었고, 수십 명의 야장들이 붉게 달아오른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천겁철 무기들이었다.

제련소 중앙, 화려한 의자에 앉아 모든 과정을 감독하는 인물이 있었다. 혈화독이었다. 그는 칠현문 멸문 이후, 승진하여 천마신교의 핵심 간부가 된 듯했다.

비연은 혈화독의 뒤편, 가장 높은 들보 위에 완벽하게 몸을 숨겼다. 그의 관찰력은 혈화독의 모든 움직임과 주변의 기류 변화를 읽어냈다.

혈화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야장들에게 명령했다. "서두르지 마라! 이 천겁철 무기들만 완성되면, 정파 놈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 될 것이다! 칠현문의 비혈강을 이용한 이 무기는 절대적이다! 하하하!"

비연은 조용히 진동 암기를 꺼냈다.

'절대적이라고?' 비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당신들은 그 무기가 스스로를 파멸시킬 함정이라는 것을 모르는군.'

비연은 암기를 혈화독이 가장 아끼는, 완성 직전의 천겁철 검이 담긴 수레를 향해 조준했다.

이때, 혈화독이 비연이 숨어 있는 들보 아래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비연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습관적으로 제련소의 **'기운'**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누구냐! 살기(殺氣)는 없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혈화독의 직감은 놀라웠다. 비연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인 순간, 더 이상 숨지 않았다. 그는 묵운진을 발아래 던지는 동시에, 진동 암기를 수레를 향해 발사했다.

혈화독이 당황하는 찰나, 진동 암기가 수레에 명중했다. 암기가 발하는 특정 주파수의 진동이 붉게 달아오른 천겁철 검을 강타했다.

파삭!

천하 제일의 강철이라 자부했던 천겁철 검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모래처럼 부서지며 쇳가루로 변해버렸다.

"뭐... 뭐지?! 내 천겁철이!" 혈화독은 경악했다.

비연은 부서진 검을 바라보는 혈화독을 향해, 들보 위에서 그림자처럼 내려섰다. 그의 얼굴은 이제 더 이상 숨지 않았다.

"혈화독. 당신은 당신이 만든 무기의 치명적인 약점을 몰랐군. 파천비록의 진본에는 당신들이 모르는 마지막 비밀이 있었다."

"네... 네놈! 칠현문의 잔당!"

혈화독은 분노하여 독공을 끌어올렸다. 비연은 무공으로 그에게 맞설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당신의 복수는, 제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제7장. 복수의 완성과 파천혈주의 날개 (終)

1. 무공 없는 자와 독공의 대가

"네놈... 감히 내 앞에서 칠현문의 이름을 들먹이다니!"

혈화독은 분노와 경악에 질려 독공(毒功)을 폭발시켰다. 맹렬한 녹색 독기(毒氣)가 거대한 제련소 내부를 휘감았다. 그의 독공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라, 닿는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맹독이었다.

비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무공을 펼치는 대신, 공간을 읽었다.

제련소는 그의 가장 완벽한 전장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화로, 쇳물이 담긴 거대한 솥, 그리고 천마신교 야장들이 정신없이 드나드는 통로. 이 모든 것이 비연의 '청심안'과 '천공화'에게는 정교한 계산의 요소였다.

쉬이이익!

혈화독의 손끝에서 발사된 독침이 굉음을 내며 비연의 머리를 노렸다. 비연은 천공화를 이용해 발을 디딜 틈조차 주지 않고, 수직으로 튀어 올랐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거대한 화로의 증기 기둥을 타고 오르는 연기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빠르군! 하지만 좁은 곳에서는 내 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혈화독은 바닥에 웅크린 야장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방으로 독기를 분출했다. 독기가 공기를 타고 흘러 제련소 전체를 덮치기 시작했다.

비연은 숨을 멈추고, 독기의 미세한 흐름을 읽었다. 그는 공중에 매달린 쇠사슬을 밟고, 뜨거운 쇳물 솥의 가장자리를 스치듯 지나쳤다. 그의 경공은 이미 무공의 대가들조차 상상하지 못할 **'지능형 경공술'**이었다.

2. 진동 암기, 연쇄 파멸을 시작하다

비연의 목표는 혈화독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천겁철 무기 그 자체였다.

그는 회피 도중, 미리 준비한 진동 암기들을 혈화독의 뒤편에 쌓여 있는 완성 직전의 천겁철 무더기와 쇳물 솥에 던져 넣었다.

타앙! 타앙!

진동 암기가 연속적으로 폭발했다. 무공의 위력은 없었지만, 암기가 터지면서 발생시킨 특정 주파수의 음파는 제련소 안을 울렸다.

파삭! 와르르!

방금까지 천하 제일의 강철이라 불리던 천겁철 무기들이, 마치 유리 세공품처럼 무너져 내렸다. 쌓여 있던 검과 창들이 순식간에 모래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아아아! 내 무기들! 내 야망이!" 혈화독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칠현문이 멸망하고 얻은 모든 영광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당신이 믿었던 것은, 칠현문의 마지막 유산입니다. 그리고 그 유산은 당신을 파멸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었지." 비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3. 복수의 칼날: 마지막 일격

혈화독은 이성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옆구리에 차고 있던 가장 아끼는 천겁철 장검을 뽑아 들고 비연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칠현문의 잔당! 네놈의 몸을 녹여 내 독공의 거름으로 만들겠다!"

혈화독의 검은 독기를 머금고 맹렬한 살기를 뿜어냈다. 비연은 상대의 압도적인 힘에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하지만 비연은 이미 혈화독의 검이 뽑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검은 비혈강이다. 극한의 강도를 지녔지만, 극한의 취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

혈화독의 장검이 비연의 목을 베기 위해 쇄도하는 찰나, 비연은 천공화의 진동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발을 바닥에 구르며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다.

콰앙!

발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제련소의 돌바닥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강력한 저주파 충격파가 발생했다. 이는 묵룡당이 비연의 천공화에 마지막으로 심어준, 광역 진동파 기능이었다.

진동파는 혈화독의 장검을 직격했다.

쨍그랑!

무시무시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혈화독의 천겁철 장검이 칼날 중간부터 손잡이까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며 흩날렸다.

검을 잃은 혈화독은 비연의 기습적인 충격에 몸의 중심을 잃었다. 그때 비연이 마지막 행동을 취했다.

그는 흩날리는 검 파편들 중, 가장 큰 파편 하나를 잡아 혈화독의 심장을 향해 던졌다.

이 파편은 혈화독이 그토록 신봉했던 천겁철의 파편이었다.

퍼억!

놀랍게도, 혈화독의 단단한 독공 보호막은 자신이 만든 독이 묻지 않은 비혈강 파편에 의해 뚫렸다. 복수는 무공이나 독이 아닌, 정보와 과학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혈화독은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심장에 박힌 쇳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네... 네놈은... 무공이 없으면서..."

"무공은 힘을 만들지만, 정보는 승리를 만듭니다."

비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가 멸문의 밤에 잃었던 것은 힘이었지만, 복수를 통해 얻은 것은 힘을 압도하는 전략과 지혜였다.

4. 까마귀의 날개, 강호를 향해 비상하다

혈화독이 쓰러지는 순간, 비연은 마지막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화로의 쇳물 공급 밸브와 독공 정화 장치를 모두 파괴하고, 제련소 탈출을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마철곡은 이미 스스로 파괴되고 있었다. 쇳물이 터져 나오고, 진동 암기에 의해 분자 구조가 깨진 천겁철 무더기들이 거대한 건물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비연은 마철곡의 무너지는 잔해 위에서, 검은 그림자처럼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칠현문의 나약한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정보와 전략으로 천마신교의 핵심을 무너뜨린, 묵룡당의 특급 묵영이자 멸문의 밤을 이겨낸 까마귀였다.

그의 눈앞에는 천마신교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복수는 끝났다.

비연은 칠현문의 복수를 완성하고, 강호의 균형을 되찾았다는 임무 완수의 보고를 위해 묵룡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의 경공은 더 이상 도망치는 그림자가 아니라, 강호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파천혈주(破天血主)**의 굳건한 날개짓이었다.

제8장. 첫 번째 임무: 천마신교의 잔당과 흑룡채(黑龍寨)

1. 그림자 세계의 새로운 규칙

낙양을 떠난 비연은 지난 육 개월 동안 강호의 외곽을 떠돌았다. 그는 묵룡당의 특급 묵영 신분을 유지했지만, 매화에게는 철저히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의 임무는 특정 세력의 정보를 수집하고, 강호의 균형을 위협하는 움직임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었다.

비연의 무기는 이제 무공이 아닌, **'정보의 힘'**이었다. 그는 묵룡당의 방대한 정보망을 그림자처럼 이용하고, 청심안(聽心眼)으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여 미래의 위협을 예측했다.

어느 날 밤, 비연은 묵룡당의 비밀 거점에서 전달받은 하나의 보고서에 주목했다.

*남쪽 해안가의 해적 조직인 **흑룡채(黑龍寨)**가 최근 알 수 없는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여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력 무기가 과거 천마신교가 비밀리에 거래하던 사철(邪鐵) 계열로 바뀌었으며, 흑룡채의 총수 **'용마(龍魔)'*는 최근 중원 진출에 대한 강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천마신교는 무너졌으나, 그들의 잔당과 자금은 강호의 음지에 숨어들어 새로운 불씨를 지피고 있었다. 비연은 직감했다. 흑룡채의 배후에는 천마신교의 숨겨진 거물이 있을 터였다. 이것은 강호의 평화를 위협하는 첫 번째 움직임이었다.

2. 흑룡채의 본거지, 광룡도(狂龍島)

흑룡채의 본거지는 중원의 통제가 닿지 않는 망망대해의 작은 섬, **광룡도(狂龍島)**였다. 섬 전체가 천혜의 요새였고, 파도가 험하여 일반적인 배로는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비연은 섬 근처 해상에 은밀히 숨어, 청심안으로 광룡도의 모든 경계 상황을 관찰했다. 섬의 구조, 순찰 무인들의 실력과 배치, 그리고 흑룡채 총수 용마가 머무는 주력 건물의 위치까지. 비연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벽한 입체 지도가 그려졌다.

"경계는 무력에 집중되어 있다. 정보와 은신에는 취약하다."

흑룡채 무인들의 무공 수준은 높았으나, 그들의 경계 방식은 단순하고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과 지형적 이점을 과신하고 있었다.

비연은 밤이 깊어지자, 천공화를 신고 섬의 절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험준한 절벽의 미세한 돌출부를 밟고 오르는 그의 경공술은 마치 거미가 벽을 기어오르듯 소리 없이 진행되었다.

3. 용마의 밀실과 천마신교의 흔적

비연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총수 용마가 머무는 주력 건물, 즉 **용궁(龍宮)**에 도달했다. 용궁의 내부 경계는 외부보다 훨씬 삼엄했지만, 비연은 환기구와 벽 뒤의 좁은 공간을 이용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용마는 방대한 체구에 얼굴 가득 험악한 흉터가 있는 사내였다. 그는 지금 한 명의 노인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 노인이다. 천마신교의 잔당.' 비연은 노인의 옷깃에서 칠현문 멸문의 밤에 보았던 것과 유사한 천마신교 특유의 사기가 서린 기운을 감지했다.

"용마. 네놈이 중원을 장악하면, 천마신교가 약속한 비밀 재단은 네놈의 것이 된다. 이 자금으로 더 많은 사철 무기를 확보하라." 노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용마는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시오, 묵풍(墨風) 장로. 중원은 곧 흑룡채의 것이 될 것이오. 정파 놈들은 우리의 새로운 사철 무기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묵풍 장로. 천마신교의 핵심 자금과 정보 관리자였다. 비연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거물을 잡은 것을 깨달았다.

대화가 끝난 후, 묵풍 장로는 용마에게 작은 비단 주머니를 건넸다.

"이 주머니에는 다음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비밀 표식이 담겨 있다. 절대 잃어버리지 마라. 우리의 모든 재산이 이곳에 달려있다."

비연의 눈이 주머니에 고정되었다. 저것을 확보하면, 흑룡채뿐만 아니라 천마신교 잔당의 모든 재정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4. 암흑 속의 훔치기: 그림자의 기예

묵풍 장로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용마가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 비연은 행동에 돌입했다.

비연은 **묵운진(墨雲塵)**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경공의 완벽한 정숙함만을 이용했다. 그의 움직임은 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는 용마의 뒤편, 천장에서 내려왔다. 천공화의 미세 진동 조절로 착지 소리를 완전히 지운 비연은, 용마의 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초저주파 영역에서 움직였다.

용마는 방심한 상태였지만, 고수의 본능은 미세한 공기의 흐름 변화를 감지했다.

"누구냐!" 용마가 고개를 뒤로 돌리는 찰나!

비연은 이미 용마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비단 주머니를 손가락 끝의 극한 감각으로 낚아챈 후였다. 그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다시 천장으로 튕겨 올라갔다.

용마는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오직 술잔의 물결만 미세하게 흔들렸을 뿐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대체 방금 뭐가 지나갔지?" 용마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허리춤을 만졌다.

'사라졌다! 표식이!'

용마의 포효가 광룡도를 뒤흔들었지만, 이미 비연은 용궁을 빠져나와 섬의 반대편 해안 절벽으로 달아난 후였다.

비연은 손에 쥔 비단 주머니의 감촉을 확인했다. 천마신교 잔당의 자금줄이었다. 무력으로 수백 명의 해적을 상대하는 대신, 비연은 단 하나의 움직임으로 그들의 심장을 끊어낸 것이다.

그는 흑룡채가 자신들의 자금줄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혼란에 빠질 틈을 이용해, 광룡도를 빠져나갔다. 파천혈주의 첫 번째 임무는 성공이었다.

 

제9장. 강호의 기재들: 천군(天軍)의 함정

1. 묵룡당의 분석: 천군(天軍)의 실체

광룡도(狂龍島) 임무를 완수한 비연은 천마신교 잔당의 자금줄이 담긴 비단 주머니를 매화에게 전달했다. 묵룡당 정보팀이 주머니 속의 비밀 표식을 해독한 결과, 그 자금은 중원에 깊숙이 뿌리내린 또 다른 거대한 조직을 위한 것임이 밝혀졌다.

"묵풍(墨風) 장로가 이 자금을 이용해 비밀리에 강호의 젊은 **기재(奇才)**들을 포섭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의 이름은 천군(天軍). 하늘의 힘을 가진 군대라는 뜻입니다." 매화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묵풍 장로는 칠현문 멸문의 진실(파천비록이 제련술 서책이라는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는 파천비록이 천하제일의 무공 비급이라 확신하고, 그 비급을 얻을 인재, 혹은 그 비급을 대체할 새로운 무공을 창조할 인재를 모으고 있던 것이다.

"천군은 겉으로는 강호 무림을 정화할 새로운 정파 세력을 표방합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천마신교의 재건을 위한 무력 집단입니다. 이 기재들은 이미 각 문파와 세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천마신교에 합류한다면, 강호는 다시 피로 물들 것입니다."

비연은 벽에 걸린 천군의 주요 인물 명단을 응시했다. 젊은 나이에 각자의 분야에서 무서운 성취를 이룬 자들. 무공으로는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강자들이었다.

"임무는 천군 본거지 침투입니다. 묵풍의 최종 목적과, 포섭된 기재들의 정확한 정체, 그리고 천군이 숨기고 있는 무공 수련 방식의 비밀을 밝혀야 합니다. 정면 대결은 절대 금물입니다."

2. 새로운 전장: 무림 기재들의 은밀한 수련원

천군의 본거지는 중원의 명산 중 하나인 취하산(翠霞山) 깊은 곳에 있는 '청하정사(靑霞精舍)'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수련원이었다. 겉보기에는 정파의 선비들이 심신을 단련하는 곳 같았지만, 묵룡당의 정보에 의하면 이곳은 묵풍이 철저히 통제하는 비밀 훈련 기지였다.

비연은 묵룡당에서 준비한 새로운 신분, **'청하정사에 물품을 납품하는 잡상인'**으로 위장하여 취하산에 잠입했다. 그의 짐 속에는 외부와의 연락을 위한 특수 암기와, 청하정사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초소형 관찰 장비들이 숨겨져 있었다.

비연은 잡상인 행세를 하며 청하정사의 외곽을 샅샅이 스캔했다.

**청심안(聽心眼)**을 작동시키자, 수련원 내부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젊은 기재들은 겉으로는 명상과 기초 수련에 집중하는 듯 보였으나, 비연의 청심안은 그들의 미세한 호흡 패턴과 내공 순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상하다. 이들은 일반적인 정파 무공 수련 방식이 아닌, 극한의 내공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위험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무언가 외부의 힘이 그들을 강제로 성장시키고 있다.'

비연은 수련원 중앙에 있는 가장 큰 건물, **'청하각(靑霞閣)'**에 주목했다. 묵풍 장로가 이곳에 머물며 기재들을 직접 통제하고 있을 터였다.

3. 천군의 핵심 인물: '파군성(破軍星)'

청하각 주변의 경계를 뚫고 가장 높은 지붕에 은신한 비연은, 청심안으로 수련장의 기재들을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그들 중 단연 돋보이는 한 청년이 있었다. 이름은 '무강(武江)'. 강호에서는 이미 10대 후반의 나이에 무림 일류 고수의 경지에 올랐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천군 내에서도 **'파군성'**이라 불리며, 묵풍 장로의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인물이었다.

비연이 무강에게 청심안을 집중했을 때,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무강의 신체는 놀라운 무공 재능을 지녔지만, 그의 심장 박동은 불규칙했고, 내공 순환 경로 곳곳에 억지로 내력을 주입한 듯한 미세한 파열의 흔적이 보였다.

*'이것은 사부의 문파에서 보았던 **'잠재력 극대화 술법'*의 부작용이다. 무공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대신, 수명을 깎고 신체를 파괴하는 금지된 술법. 묵풍이 이들을 단순한 제자가 아닌, 일회용 무기로 만들고 있다!'

비연은 묵풍의 잔혹함을 깨달았다. 그는 이 강자들을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이룬 후,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에 버리거나 폭발시켜 버릴 계획일 터였다.

4. 내부 침투: 발각의 위기

비연은 묵풍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청하각 내부로 침투를 시도했다. 밤 11시, 모두가 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간 시간.

그는 천공화를 이용해 청하각의 2층 창문으로 소리 없이 진입했다. 복도는 칠흑같이 어두웠으나, 묵룡당의 은신술에 단련된 비연의 시야에는 모든 것이 선명했다.

그가 묵풍 장로의 서재 문 앞에 섰을 때였다.

휘익-!

등 뒤에서 섬뜩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비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벽에 붙여 피했지만, 그의 귓가를 스친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강렬한 검기(劍氣)**가 벽에 미세한 칼자국을 남겼다.

"흥. 쥐새끼 한 마리가 건물에 들어온 줄 알았는데, 꽤 능숙한 그림자로군."

어둠 속에서 파군성 무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수련을 마치지 않고 밤늦게까지 홀로 남아 내공을 다지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감각이 비연의 미세한 침투를 감지한 것이다.

"넌 누구냐. 너에게서 무공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지만, 네 움직임은 강호의 그림자 조직의 그것이군. 묵룡당인가?"

비연은 자신의 무공 실력으로는 무강을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무강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비연은 대답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특수 연막탄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동시에, 온몸의 기력을 끌어모아 천공화의 진동력을 최대한의 소음을 내도록 조절했다.

콰앙!!!

연막탄과 함께 터져 나온 고주파 소음은 무강의 귀를 직격했다. 무강은 단련된 무인이었으나, 그의 내공이 강제로 증진되면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이 소음은 그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크아악! 시끄럽다! 머리가...!" 무강은 고통에 몸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비연은 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소음과 연막 속에서 재빨리 서재 문을 열고 몸을 숨겼다. 파천혈주의 **'정보를 이용한 전략적 약점 공략'**이 무공의 대가에게 통하는 순간이었다.

 

제10장. 서재의 결투: 무공 없는 자의 승리

1. 천군의 최종 계획

서재로 몸을 피한 비연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주변을 살폈다. 묵풍 장로의 서재는 단순한 책장이 아니라, 비밀 문서와 특수 장비로 가득 찬 핵심 공간이었다.

책상 위, 묵풍이 급히 정리하려 했던 듯한 낡은 두루마리 하나가 비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군(天軍) 최종 작전 개요'**라 적혀 있었다.

비연은 재빨리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 안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묵풍은 무강을 포함한 젊은 기재들을 **'활인지(活人紙)'**로 만들 계획이었다. 이는 기재들의 내공을 단기간에 극한으로 끌어올린 후, 특정 명령이 내려지면 내공이 폭발하여 주변 수십 장을 초토화시키는 인간 폭탄 제조법이었다.

'정파의 심장인 무당산(武當山)과 소림사(少林寺)를 비롯해, 묵룡당의 주요 거점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다. 이 혼란을 틈타 천마신교의 잔존 세력이 중원을 장악한다.'

비연은 분노했다. 묵풍은 파천비록의 진본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순수한 젊은이들을 속여, 무참히 파괴할 계획이었다. 칠현문의 멸문이 무기 때문이었다면, 이번에는 인간이 무기가 되는 잔혹한 계획이었다.

문서를 확보하는 순간, 바깥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울렸다.

콰아앙!

파군성 무강이 고통에서 회복하여, 문짝을 통째로 부수고 서재 안으로 난입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분노로 인해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네놈! 감히 내 수련에 방해를 놓다니! 너에게서 묵룡당의 냄새가 난다. 네놈을 갈가리 찢어놓겠다!"

2. 무공 대 무(無)의 극한 대결

무강의 검은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강렬한 장풍(掌風)이 서재의 책장들을 뒤흔들었다. 비연은 무력으로는 0이었기에, 오직 회피만이 살 길이었다.

쉬이이익!

비연은 천공화를 이용해 무강의 장풍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장풍이 비연을 스쳐 지나가자, 뒤편의 책장은 산산조각이 났다.

"네놈은 무공이 없으면서! 어떻게 나를 피하는 거지!" 무강이 소리쳤다. 그의 무공은 속도와 파괴력 모두 극에 달해 있었지만, 비연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다.

비연은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사방으로 흩날리는 책과 나무 파편들을 이용했다.

그는 무강이 장풍을 쏘는 순간 발생하는 미세한 공기의 진동청심안으로 포착했다. 그리고 그 진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발을 굴러 책장의 잔해를 무강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흥!" 무강은 단순한 파편 공격에 신경 쓰지 않고, 주먹으로 잔해를 쳐냈다.

하지만 이것이 비연의 함정이었다.

파편 속에는 묵룡당의 특수 제작된 유리알 모양의 소형 발화 암기가 섞여 있었다. 무강의 주먹에 맞은 암기들은 터지면서 강렬한 섬광을 일으켰다.

파아앗!

순식간에 시야를 잃은 무강은 비틀거렸다. 그의 눈은 강제로 강화된 내공 때문에 섬광에 극도로 취약했던 것이다.

3. 천재의 약점: 정보의 일격

시야를 잃은 무강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펼쳤다.

비연은 빛과 어둠 속에서 오직 소리만을 믿었다. 청심안은 무강의 숨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발이 바닥을 밟는 압력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냈다.

비연은 재빨리 묵풍의 책상 밑으로 기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숨겨진 묵풍의 비밀 개인 금고를 발견했다.

'묵풍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파천비록의 정보가 아니라, 자신의 신변이다.'

비연은 금고의 복잡한 기계 장치를 재빨리 해독했다. (묵룡당 훈련에서 익힌 기계 지식 활용.) 금고가 열리자, 안에는 현금과 함께 작은 옥병이 들어 있었다. 옥병에는 **'심신안정단(心神安定丹)'**이라 적혀 있었다.

"이것이군. 무강의 내공 폭주를 막는 유일한 약물!"

비연은 옥병을 낚아채는 동시에, 바닥에 엎드린 채 금고의 마지막 자물쇠를 작동시켰다. 이 자물쇠는 단순한 잠금이 아니라, 강렬한 금속 마찰음을 발생시키는 일종의 소음 장치였다.

끼이이이익!

극한의 소음과 함께, 내공 폭주 직전에 있던 무강의 신경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만둬! 머리가... 터진다!"

무강은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 방금까지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은 미약하게 흩어졌다. 무공의 대가는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하려는 욕망 때문에, 평범한 소음에 의해 무릎을 꿇은 것이다.

4. 천군의 해체와 파천혈주의 존재감

비연은 쓰러진 무강을 뒤로하고, '천군 최종 작전 개요' 문서를 챙겨 청하각을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비연은 취하산 자락에서 은밀하게 대기하고 있던 묵룡당의 연락책에게 모든 정보를 전달했다.

천군의 계획은 묵룡당의 정보력과 비연의 행동 덕분에 미수에 그쳤다. 묵룡당은 즉시 이 정보를 강호의 주요 정파에 전달하여, 천군을 해체하고 묵풍 장로를 추적하도록 만들었다. 비연은 정파의 영웅이 되는 대신, 정보의 뒤편에서 강호를 지켜냈다.

강호는 청하정사의 갑작스러운 와해와 무강을 포함한 기재들의 신비로운 붕괴에 대해 궁금증을 품었으나, 그 뒤에 파천혈주라는 그림자가 있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연은 복수를 넘어, 강호의 균형을 유지하는 고독한 감시자가 되었다. 그의 천공화가 밟는 곳은 강호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였고, 그의 청심안이 읽는 것은 미래의 위협이었다.

제11장. 무영성(無影城): 그림자들의 심장부

1. 묵풍의 도주 경로 분석

천군(天軍)의 붕괴 이후, 묵풍 장로의 추적은 묵룡당에게도 난제였다. 비연은 매화와 함께 묵풍의 행동 양식을 면밀히 재검토했다.

"묵풍은 단순한 무인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자금 및 정보 관리자였습니다. 그는 돈과 정보가 흐르는 곳, 그리고 무공의 룰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도주했을 것입니다." 비연이 말했다.

비연은 과거 묵풍이 거래했던 사파 조직들의 명단을 훑어보았다. 그 결과, 묵풍이 천마신교의 잔존 자금을 이용해 **흑암상단(黑暗商團)**이라는 거대 범죄 조직의 은밀한 보증을 받았음을 발견했다.

"흑암상단은 강호의 모든 범죄자를 숨겨주는 대가로 막대한 자금을 취합니다. 그들의 본거지는 관부의 눈을 피해 지하에 건설된 **무영성(無影城)**입니다." 매화가 확인했다.

무영성. 무력과 권력이 아닌, 돈과 기술로 유지되는 그림자 도시. 비연의 경공과 관찰력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장이었다.

2. 폐광 갱도의 극한 침투

무영성으로 통하는 입구는 중원의 잊힌 산맥 깊은 곳에 있는 낡은 폐광 갱도였다. 비연은 **천공화(天空靴)**를 신고, 그림자처럼 갱도에 진입했다.

갱도의 길은 수백 장에 달했고, 곳곳은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위험한 구간이었다. 비연은 **청심안(聽心眼)**을 이용해 갱도 벽면의 미세한 균열과 공기의 흐름을 읽어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밟는 순간 붕괴할 지점들을 비연은 깃털처럼 가볍게 피하거나, 천공화의 진동 기능을 이용해 충격을 상쇄시키며 지나갔다.

갱도 깊숙한 곳, 천마신교 잔당들이 설치해 놓은 경보 장치가 있었다. 얇은 비단실에 연결된 작은 종이 매달려 있었고, 갱도를 지나는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릴 정도로 예민했다.

비연은 잠시 멈췄다. 그는 호흡을 극한까지 줄여 소리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치 연체동물처럼 몸을 비틀어, 비단실과 종 사이의 1밀리미터 간격을 통과했다. 그의 경공은 이미 무공의 영역이 아닌, 정교한 신체 제어 기술의 극한이었다.

마침내, 갱도의 끝. 거대한 철문이 열리자, 무영성의 활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하에서 피어나는 인공 조명과 수많은 사파 무인들의 웅성거림. 비연은 묵운진을 이용해 위장하고, 무영성 내부로 깊숙이 침투했다.

3. 흑암루에서의 대면: 멸문의 충격적 진실

비연은 흑암루(黑暗樓)의 환풍구를 통해 묵풍 장로가 은신한 VIP 밀실에 도착했다. 방 안에는 묵풍과 함께, 무영성의 최고 경비를 담당하는 두 명의 거한 **'암영쌍마(暗影雙魔)'**가 지키고 있었다.

비연은 청심안을 이용해 묵풍의 심장 박동을 분석했다. 그의 심장은 극도로 불안정했고, 이는 묵풍이 숨기고 있는 더 큰 공포가 있음을 의미했다.

묵풍은 비연을 보자마자 비웃음을 거두고 격렬하게 분노했다.

"파천혈주! 네놈이 끝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네놈이 천군을 무너뜨린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천군을 파멸시킨 것은 당신의 잔혹한 야망 때문입니다. 칠현문 멸문의 진짜 배후에 대해 말하십시오." 비연은 단호하게 압박했다.

묵풍은 절규하듯 웃었다. "배후라! 네놈은 그저 천마신교가 칠현문을 멸문했다고 믿겠지! 하! 그 모든 것은 강호의 맹주라 불리는 그 정파의 거물이 계획한 것이다!"

비연의 온몸이 굳었다. 칠현문이 믿고 따랐던 정파의 거물이라니.

"말도 안 돼! 칠현문은 정도(正道)의 문파였다!"

"정도? 흥! 네놈의 사부, 칠현문 장문인은 강호의 맹주가 원하는 무공의 통합에 반대했다. 맹주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칠현문이 가진 **비혈강(秘血鋼)**의 제련술을 독점하기 위해 천마신교를 이용한 것뿐이다! 천마신교는 그저 총알받이였지!"

묵풍은 흥분하며 품속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것은 그 맹주와 우리 천마신교 사이의 비밀 거래 서한이다! 네놈이 복수하려 했던 것은 그저 그림자였을 뿐이다!"

비연은 묵풍이 종이를 꺼내는 순간, 그의 손목에 묶인 작은 옥팔찌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칠현문 멸문의 밤, 사부가 그에게 건넨 옥패와 같은 재질이었다.

비연은 곧바로 자신의 옥패를 꺼내 청심안으로 분석했다. 옥패의 뒷면에는 묵풍의 말대로 미세한 **'청천각(淸天閣)'**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청천각. 정파 맹주의 본거지였다!

4. 옥패의 진실과 소음 함정

비연은 눈앞의 진실에 망연자실할 틈이 없었다. 옥패를 확인하는 순간, 묵풍이 이미 호위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였다.

"암영쌍마! 저놈을 죽이고! 파천비록의 행방을 알아내라!"

암영쌍마는 무영성 최고의 실력자로, 합공(合功)이 뛰어난 무공 대가들이었다. 좁은 방 안에서의 대결은 무공이 없는 비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꽝!

암영쌍마의 주먹이 터지자 방 안의 공기가 갈라지는 듯했다. 비연은 천공화의 극한 제어를 이용해 주먹 사이의 미세한 압력 차이를 파고들며 몸을 날렸다.

비연은 반격 대신, 방 전체를 무너뜨릴 전략을 세웠다.

그는 무영성의 경계망이 소리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비연은 회피 도중, 방 안에 있던 묵풍의 개인 금고를 향해 몸을 던졌다.

"저놈이 금고를 노린다! 막아라!" 암영쌍마가 달려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비연은 금고의 문을 부수는 대신, 묵룡당 훈련에서 배운 특수 해제 코드를 입력했다. 금고는 해제되는 순간, 보안 장치로서 고강도의 파열음을 발생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익!!

파열음은 좁은 방 안을 뒤흔들며 고막을 찢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암영쌍마는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귀를 막았다.

비연은 소음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지막 남은 진동 암기를 묵풍의 발밑에 던졌다.

"이것이 당신이 믿었던 천마신교의 종말입니다."

진동 암기는 폭발하는 대신, 금고의 소음과 **공명(共鳴)**하며 특정 주파수의 저주파 진동을 방출했다. 무영성이 지어진 지하의 취약한 지반을 강타하는 진동이었다.

쿠구궁!

방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천장과 벽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묵풍과 암영쌍마는 무공 대신, 무영성의 붕괴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했다.

제12장. 청천각(淸天閣)의 심판: 빛 뒤의 그림자

1. 무영성 탈출과 최후의 증거

무영성의 흑암루는 비연이 유발한 진동과 소음 공명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비연은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와 먼지 속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여 폐광 갱도로 탈출했다. 뒤에서는 묵풍 장로와 암영쌍마의 절규가 들려왔으나, 비연은 돌아보지 않았다. 천마신교 잔당의 핵심은 그렇게 지하에 묻혔다.

비연은 묵룡당 본부로 돌아와 매화에게 확보한 **'비밀 거래 서한'**과 옥패의 **'청천각 문양'**을 제시했다.

"칠현문 멸문의 진짜 배후는 천마신교가 아닌, **정파 맹주(盟主)**가 이끄는 **청천각(淸天閣)**입니다. 그들은 비혈강(秘血鋼)의 제련술을 독점하고, 사부님을 제거하기 위해 묵풍과 거래했습니다." 비연의 목소리는 분노를 넘어선 냉철한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매화는 충격에 휩싸였다. 정파 맹주가 강호의 질서를 유지하는 대신, 가장 잔혹한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은 묵룡당에게도 엄청난 파장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강호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증거가 없다면, 맹주는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절대 권력입니다." 매화가 말했다.

비연은 고개를 저었다. "강호의 질서는 거짓 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증거를 이용해 맹주를 심판하고, 칠현문의 복수를 완성할 것입니다. 이것이 파천혈주로서 강호에 내리는 첫 번째 명령입니다."

2. 청천각: 강호의 심장부로

청천각은 무당산과 소림사에 버금가는 정파의 중심이었으며, 맹주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 경계는 무영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철저했으며, 내부에는 강호에서 손꼽히는 정파 고수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무력으로 침투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비연은 다시 한번 그림자가 되기로 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맹주가 거주하는 **'청천루(淸天樓)'**에 침투하여 멸문의 증거를 맹주의 면전에서 폭로하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비연은 청천각의 후원 쪽 산맥을 통해 침투했다. 이곳은 절벽과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경계가 상대적으로 허술했다.

천공화는 산악 지형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비연은 깎아지른 절벽을 마치 계단을 오르듯 빠르게 타고 올랐다. 그는 경계 무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死角地帶)**와 바람의 흐름만을 이용했다.

3. 청천루의 숨겨진 비밀

청천루는 맹주가 집무를 보는 곳이자, 강호의 주요 문서들이 보관된 곳이었다. 비연은 청천루 지붕에 은신하여, 청심안으로 내부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맹주는 밤늦게까지 홀로 서재에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강호의 평화를 걱정하는 현자의 모습이었으나, 비연의 눈에는 그 뒤에 숨겨진 음모가 선명하게 보였다.

비연은 청천루 서재로 통하는 환기구를 발견했다. 환기구 주변에는 특수 방어술이 시전되어 있었으나, 비연은 묵룡당에서 배운 지식을 이용해 방어술이 가장 약해지는 **특정 시간(내공 순환의 틈)**을 계산했다.

쉬익!

비연은 단 하나의 소리도 내지 않고 환기구를 통해 서재 내부로 내려섰다. 맹주는 자신의 서재에 그림자조차 침입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맹주는 책상에 앉아 붓을 들고 있었다. 비연은 벽의 그림자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맹주를 향해 다가갔다.

4. 맹주와의 대면: 파천혈주의 최후 통첩

비연이 맹주의 등 뒤에 다가섰을 때였다.

'정파 맹주... 그는 무공의 대가이자, 강호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자.'

비연은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강호의 맹주께, 칠현문 멸문의 잔당, 파천혈주가 인사드립니다."

맹주는 글을 쓰던 붓을 내려놓았다. 그의 움직임은 느리고 우아했으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의 기운은 방 전체를 압도할 정도였다.

"후후... 묵룡당의 그림자였군. 네놈이 마철곡과 무영성에서 벌인 짓은 짐작하고 있었다. 감히 이 청천각까지 발을 들이다니, 네놈의 용기가 가상하다." 맹주가 뒤돌아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고요했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잔인함이 서려 있었다.

"저는 멸문의 복수를 위해 왔습니다. 당신이 천마신교와 공모하여 칠현문을 멸문시킨 죄, 그리고 강호의 질서를 파괴한 죄를 묻기 위해서입니다." 비연이 비밀 거래 서한을 맹주의 책상 위에 던졌다.

맹주는 서한을 보더니 잠시 눈썹을 움직였다. "흥. 묵풍의 찌꺼기를 가져왔군. 증거? 강호는 이런 종잇조각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네놈은 무공이 없다. 이 서재에서 네놈의 목숨은 내 손안에 있다."

맹주는 주먹을 쥐었다. 그 주먹에는 천하를 가를 듯한 강력한 내공이 응축되었다. 비연은 그 압도적인 무력 앞에 서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저는 무공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맹주께서 저를 죽이는 순간, 제가 이 청천루의 모든 장소에 설치해 놓은 묵룡당의 특수 통신 암기가 작동할 것입니다. 이 암기는 모든 증거와 맹주의 만행을 강호의 주요 문파들에게 동시에 전송할 것입니다."

맹주의 얼굴이 마침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비연의 움직임은 감지하지 못했지만, 그의 정보와 전략은 맹주의 무력보다 훨씬 강력한 위협이었다.

"네... 네놈이 언제...!"

"맹주께서 붓을 잡고 계시는 단 5초 동안입니다. 맹주께서 저를 죽이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청천각은 멸문하고, 당신의 권위는 영원히 땅에 묻힐 것입니다."

비연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복수는 이제 힘이 아닌, 정보의 최후 통첩으로 완성될 단계에 이르렀다.


최종장. 파천혈주: 새로운 질서의 새벽

1. 심판과 강호의 재건

비연의 협박은 성공적이었다. 맹주는 분노로 몸을 떨었으나, 자신의 명예와 청천각의 존립을 걸고 비연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비연은 맹주에게 모든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 은퇴할 것을 종용했다.

비연이 청천각을 떠난 직후, 묵룡당은 맹주와의 비밀 거래 서한을 강호 전체에 배포했다. 강호는 충격에 휩싸였고, 맹주는 하루아침에 모든 권위와 명예를 잃었다. 청천각은 맹주의 죄로 인해 붕괴되었고, 강호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게 되었다.

비연은 칠현문의 복수를 완성하고, 강호의 가장 큰 악을 그림자 속에서 제거했다.

2. 에필로그: 그림자의 영원한 감시

비연은 묵룡당으로 돌아와 매화에게 마지막 임무 완수 보고를 했다. 그는 묵룡당의 모든 지원을 거절하고, 오직 천공화청심안만을 지닌 채 강호로 나섰다.

그는 강호의 모든 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묵룡당의 정보와 자신의 전략을 이용해, 미래의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는 파천혈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강호는 평화로워졌으나, 사람들은 밤이 되면 문을 굳게 닫고 그림자를 두려워했다. 무공의 대가들이 무너진 자리에, 정보와 지혜로 무장한 새로운 존재가 강호의 질서를 수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자는 언제나 강호의 가장 어두운 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파천혈주. 멸문의 밤을 이겨낸 까마귀는 이제 강호의 영원한 감시자가 되어, 새로운 새벽을 열었다.

[ 파천혈주: 멸문의 밤, 비상하는 까마귀의 날개깃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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