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북해의 전설, 얼어붙은 진실의 문

2026. 1. 2. 11:23만화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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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북해의 전설, 얼어붙은 진실의 문

소림사에서 얻은 천하무림지도는 한운의 운명을 중원 대륙의 가장 북쪽 끝으로 인도했다. 그곳은 만년설이 지지 않고, 살을 에이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극한의 땅 북해(北海)였다. 낙양과 소림을 거치며 강호의 추악한 이면을 목격한 한운은 이제 소년의 티를 완전히 벗어던진 채, 한 자루의 고독한 검이 되어 북진을 계속했다.


1. 설원의 고독과 깨달음

중원을 벗어나 북해의 초입인 철령(鐵嶺)에 다다랐을 때, 한운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혹한을 마주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가 얼어붙는 것 같았고, 눈보라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시야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한운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극한의 환경은 빙천무황에게 배운 내공과 청운검보의 정수를 융합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한운은 설원 한복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전신에 쌓이는 눈을 털어내지 않은 채, 그는 내면의 기 흐름에 집중했다.

'빙(氷)은 정(靜)이며, 운(雲)은 동(動)이다. 멈춘 얼음 속에서 흐르는 구름의 기세를 찾아야 한다.'

청운검보 제3초식, 빙운환영(氷雲幻影).

그가 눈을 뜬 순간, 주변의 눈보라가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멈춰 섰다. 한운의 신형이 움직이자, 설원 위에는 수십 개의 잔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것은 단순한 신법이 아니었다. 주변의 수기(水氣)를 얼려 자신의 형상을 고정시키고, 본신은 구름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극의의 무공이었다. 이제 한운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2. 북해빙궁의 파수꾼

북해의 심장부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북해빙궁(北海氷宮)의 금지된 구역인 '천년빙동'이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인 빙풍곡(氷風谷)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이곳은 우리 빙궁의 성역이다. 중원의 무인은 발을 들일 수 없다."

은색 털가죽을 두른 장한들이 거대한 얼음 창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의 눈동자는 북해의 바다처럼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북해빙궁의 정예 무사들인 '빙원위(氷原衛)'였다.

한운은 청운검을 뽑지 않은 채 예의를 갖춰 포권했다. "저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청운검문의 후예로서 아버지가 남긴 진실을 확인하러 왔을 뿐입니다."

"청운검문? 그 이름은 수십 년 전 우리 궁주님과 절교한 문파가 아니냐. 더욱더 들여보낼 수 없다. 물러가지 않으면 얼음 조각으로 만들어주마!"

빙원위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창술은 중원의 것과 달랐다.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는 대지를 얼리고 상대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바로 북해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빙천무황의 유일한 제자라는 사실을.


3. 스승의 흔적, 그리고 빙궁의 성녀

한운은 가볍게 몸을 날려 창끝을 타고 올랐다. 그는 반격하는 대신 빙천무황의 고유한 기운인 '빙신강기'를 살짝 드러냈다. 맑고 투명한 푸른 진기가 한운의 전신을 감싸자, 공격하던 빙원위들이 경악하며 멈춰 섰다.

"이... 이 기운은? 우리 조상들이 전설로만 전해 듣던 빙천의 기운이 아니냐!"

그때, 빙풍곡 안쪽에서 서늘하면서도 고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멈춰라."

안개 속에서 백설처럼 하얀 의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미모는 차가운 얼음 조각상처럼 완벽했고, 눈빛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북해빙궁의 성녀이자 차기 궁주인 설하(雪夏)였다.

설하는 한운을 빤히 바라보더니 나직하게 읊조렸다. "빙천무황의 제자가 정말로 왔군요.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신 그 아이가 당신입니까?"

한운은 의아했다. 빙천무황은 북해빙궁과 어떤 관계란 말인가? 설하는 한운의 의문을 읽은 듯 말을 이었다. "빙천무황 어르신은 우리 북해빙궁의 전대 궁주님이자, 제 할아버님이십니다. 그분이 중원으로 떠나신 지 수십 년... 이제야 자신의 후계자를 보내셨군요."


4. 천년빙동의 비밀

설하의 인도로 한운은 빙궁의 가장 깊숙한 곳, 천년빙동에 발을 들였다. 그곳은 만년설보다 더 오래된 태고의 얼음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동굴 벽면에는 고대 문자와 함께 누군가 검으로 새긴 듯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이곳에 당신의 아버지가 남긴 것이 있습니다."

설하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얼음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벽 안에는 한 자루의 검집과 두루마리가 봉인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그 검집은 한운이 들고 있는 청운검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양이었다.

한운이 얼음 벽에 손을 대자, 청운검이 강렬하게 반응했다. 쩌적, 소리와 함께 얼음이 갈라지며 봉인이 풀렸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거기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무림맹과 혈해종은 본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다. 그들은 '천마(天魔)'의 부활을 위해 수백 년간 정파와 사파라는 연극을 하며 무림의 정기를 모아왔다. 낙양의 비극도, 소림의 변고도 모두 천마의 부활을 위한 제물이었다.]

한운의 손이 떨렸다. 강호의 모든 역사가 거대한 사기극이었다는 사실. 정파와 사파의 끊임없는 전쟁은 그저 천마에게 바칠 피를 모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5. 가려진 흑막, 천마의 부활

"이게... 사실이란 말입니까?"

설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빙궁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중원 무림과 거리를 두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무림맹주와 혈해종주가 손을 잡고 이곳 북해의 '빙령핵'을 노리고 있습니다. 천마를 부활시키기 위한 마지막 열쇠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죠."

그 순간, 동굴 밖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대지가 진동하고 천장의 고드름들이 떨어져 내렸다.

"찾았다. 천마의 심장이 잠든 곳을."

동굴 입구에 나타난 자는 무림맹의 비밀 결사단과 혈해종의 고수들이 뒤섞인 연합군이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무림맹주 '금천위'와 혈해종주 '혈마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정사(正邪)를 대표하는 두 절대자가 한자리에서 손을 잡고 있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한운, 그 지도를 넘겨라. 그러면 너에게 천마의 부활 후 새로운 세상을 다스릴 권위를 주마."

맹주 금천위가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수많은 빙궁 무사들의 시신이 쌓여 있었다.


6. 청운검의 진정한 각성

한운은 분노를 넘어선 차가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는 등에 매고 있던 청운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기만과 어둠을 끝낼 유일한 빛이었다.

"권위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이 만든 이 추악한 연극, 제가 끝내겠습니다."

한운의 전신에서 푸른 진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북해의 극한 한기가 그의 몸으로 흡수되며 청운검의 위력을 극대화했다.

무명검전 제6장, 빙운파천(氷雲破天).

한운은 두 절대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청운검이 허공을 가르자, 동굴 전체가 푸른 빛으로 뒤덮였다. 맹주와 종주는 비웃으며 자신들의 강기를 합쳤다. 금색과 핏빛이 뒤섞인 거대한 기둥이 한운을 덮쳤다.

콰아앙!

동굴이 무너져 내릴 듯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하지만 한운의 검기는 그들의 강기를 뚫고 들어갔다. 그것은 단순히 힘의 충돌이 아니었다. 진실을 깨달은 자의 의지가 거짓된 힘을 분쇄하는 과정이었다.


7. 설하와의 공조, 그리고 후퇴

"지금은 저 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일단 피해야 해요!"

설하가 한운의 앞을 가로막으며 빙벽을 소환했다. 맹주와 종주의 합격술은 한운이 감당하기엔 아직 너무나 강력했다. 설하는 비밀 통로를 열어 한운을 밀어 넣었다.

"성녀님!"

"가세요! 당신은 이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빙궁은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북해의 가장 깊은 곳, '심연의 샘'으로 가세요. 그곳에 빙천무황 어르신이 남긴 마지막 비기가 있습니다!"

한운은 입술을 깨물며 어두운 통로 속으로 몸을 던졌다. 뒤에서 설하의 비명과 맹주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8. 심연의 끝에서 본 희망

어두운 지하 수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온 한운은 마침내 거대한 호수 앞에 멈춰 섰다. 그곳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연이었지만, 호수 중앙에서 은은한 청백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수 위에는 낡은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고, 그 곁에는 익숙한 술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놈, 좀 늦었구나."

술병 뒤에서 빙천무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신형은 흐릿했다. 그것은 본신이 아닌, 기(氣)로 만들어진 영체였다.

"스승님..."

"울지 마라. 이 늙은이는 이미 중원에서 네 길을 열어주다 명을 다했다. 하지만 내 정수는 이곳에 남겨두었지. 한운, 이제 청운과 빙천을 하나로 합쳐라. 천마라는 괴물을 벨 수 있는 유일한 검은, 오직 너만이 완성할 수 있다."

한운은 무릎을 꿇고 스승의 영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밖에서는 천마의 부활을 알리는 불길한 진동이 북해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한운은 눈을 감고 스승이 남긴 마지막 진기를 받아들였다.

북해의 차가운 심연 속에서, 강호를 구원할 마지막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14화: 천마강림, 무림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북해의 심연은 차갑다 못해 모든 감각이 마비될 정도의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호수 중앙에서 흐릿한 영체로 나타난 빙천무황은 한운을 바라보며 쓸쓸하면서도 대견한 미소를 지었다. 밖에서는 대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천마의 부활을 알리는 불길한 기운이 북해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지만, 이 깊은 지하 호수만큼은 태초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1. 스승의 마지막 선물

"이놈아, 울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 늙은이는 죽어서도 술 한 잔 기울일 곳만 있으면 그만이다."

빙천무황의 영체가 한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실체가 없는 기(氣)의 손길이었으나, 한운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묵직한 온기를 느꼈다.

"한운, 잘 들어라. 천마는 단순히 강한 무인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절망과 탐욕을 먹고 자라는 혼돈의 결정체다. 무림맹과 혈해종이 손을 잡은 것도 결국 그 혼돈에 잠식되었기 때문이지. 그를 베기 위해서는 검의 예기(銳氣)만으로는 부족하다. 네 마음속에 있는 가장 맑은 의지, 즉 청운(靑雲)의 뜻을 빙천(氷天)의 냉정함에 녹여내야 한다."

노인의 영체가 점차 밝은 빛을 내며 한운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빙천무황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순수한 진원(眞元)의 정수였다. 한운의 단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청운검은 주인의 변화에 공명하며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가라, 내 제자야. 가서 저 가식적인 무림의 하늘을 찢고, 진정한 새벽을 가져오너라."

스승의 마지막 목소리가 뇌리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투명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전신에서는 만년설보다 더 차갑고 고결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2. 무너지는 북해빙궁

지상으로 올라온 한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생지옥이었다. 웅장했던 북해빙궁은 무너져 내렸고, 설원 위에는 빙궁 무사들과 무림맹, 혈해종 무인들의 시신이 뒤엉켜 있었다. 하늘은 검붉게 물들었고, 공중에는 거대한 마기의 소용돌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맹주 금천위와 종주 혈마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방금 막 봉인에서 깨어난 한 사내가 공중에 떠 있었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전신에서 대기를 부식시키는 검은 안개를 뿜어내는 존재. 그가 바로 수백 년 만에 부활한 천마(天魔)였다.

"오랜만이구나, 이 비릿한 인간들의 세상."

천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살아남은 무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금천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님, 약속하신 대로 저희에게 영생과 절대적인 힘을..."

천마는 가소롭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영생? 힘? 너희 같은 미천한 그릇들에게 그런 것은 과분하다. 너희는 그저 내 부활을 위한 거름이었을 뿐."

천마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무림의 두 절대자였던 금천위와 혈마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탐욕의 끝은 허무한 죽음이었다.


3. 청운의 검, 마기를 가르다

"그들의 탐욕은 끝이 났지만, 당신의 존재는 허용할 수 없습니다."

눈보라를 뚫고 한운이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검은 마기가 정화되며 하얀 얼음꽃이 피어났다. 천마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돌려 한운을 바라보았다.

"빙천의 기운... 그리고 청운의 의지라. 꽤나 골치 아픈 조합을 들고 왔구나. 하지만 고작 인간의 검으로 나를 베겠다고?"

한운은 대답 대신 청운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검신에는 스승의 정수와 아버지의 비급이 하나로 녹아든 새로운 무공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무명검전 최종장, 빙천청운무(氷天靑雲舞).

한운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그는 더 이상 땅을 밟지 않았다. 구름처럼 자유롭고 얼음처럼 날카로운 그의 신법은 천마의 마기 장막을 순식간에 뚫고 들어갔다.

챙! 채쟁!

청운검과 천마의 마검이 충돌할 때마다 북해의 대지가 갈라졌다. 천마의 공격은 파괴적이었으나, 한운은 그 파괴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긴 채 가장 치명적인 빈틈을 노렸다.


4. 절망 속의 희망, 동료들의 지원

전투가 격렬해질 무렵, 무너진 잔해 속에서 설하와 남궁설이 나타났다. 그들은 부상을 입은 채로도 한운을 돕기 위해 마지막 내공을 끌어올렸다.

"한운 공자! 혼자가 아닙니다!"

남궁설의 연검이 화려한 검막을 형성해 천마의 배후를 교란했고, 설하는 북해빙궁의 금기된 진법을 펼쳐 천마의 움직임을 찰나의 순간 구속했다.

"하찮은 벌레들이!"

천마가 분노하며 거대한 마기를 폭발시키려 했다. 그 찰나의 순간, 한운은 보았다. 천마의 가슴 중앙, 모든 마기가 응집되는 그 핵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5. 최후의 일격, 무명(無名)의 완성

한운은 자신의 모든 내공을 청운검에 쏟아부었다. 검은 이제 청백색의 거대한 빛의 기둥으로 변했다. 이것은 복수를 위한 검도, 권력을 위한 검도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삐뚤어진 강호를 바로잡겠다는 순수한 의지의 결정체였다.

"이것은 아버지가 남긴 정의이며, 스승님이 남긴 긍지다!"

청운검보 제7초식, 천지개벽(天地開闢).

한운의 검이 천마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천마는 검은 마기를 모아 막으려 했지만, 한운의 검기는 마기를 얼려버리고 그 틈을 뚫고 지나갔다.

푸슉!

청운검이 천마의 가슴을 관통했다. 천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인간의 의지가 자신의 마도(魔道)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인간의... 의지가... 이 정도였단 말이냐..."

천마의 육신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를 지탱하던 검은 연기들이 흩어지고, 북해의 하늘을 덮었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6. 새벽의 시작

천마가 사라진 자리에는 고요만이 남았다. 무림맹과 혈해종의 연합군은 수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으며, 살아남은 무인들은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붉은 하늘 사이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한운은 청운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서 있었다. 전신의 내공을 소진한 그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은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극한의 무공을 펼친 대가였으나,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끝났군요... 공자."

남궁설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설하 역시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그들 곁에 섰다.

북해의 차가운 바람은 여전했지만, 그 바람 속에는 더 이상 피 냄새와 마기가 섞여 있지 않았다. 맑고 깨끗한 자연의 기운이 다시 북해를 채우고 있었다.

제15화: 외전(外傳), 바람이 머무는 자리

천마의 소멸과 함께 북해의 혹한이 잦아든 지도 어느덧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강호는 빠르게 변했다. 무림맹이라는 거대 조직은 해체되었고, 각 문파는 자치적인 질서를 찾아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낙양의 저잣거리에는 다시금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했던 은발의 무사, 한운의 행방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 이름 없는 산문의 아침

중원의 남단, 안개에 싸인 무명산(無名山)의 중턱에는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은백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한 사내가 마당을 쓸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한운이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과거의 날카로운 살기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맑은 눈빛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마당 한편에 세워진 두 개의 무덤 앞에 섰다. 하나는 아버지 한청운의 것이요, 다른 하나는 비록 시신은 찾지 못했으나 스승 빙천무황의 유품을 묻은 가묘(假墓)였다.

"아버지, 스승님. 오늘도 세상은 평온합니다."

한운은 맑은 물 한 잔을 무덤가에 올렸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빗자루의 움직임은 기이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것은 무공의 초식을 넘어선, 자연의 흐름 그 자체였다. 그는 이제 검을 들지 않아도 검의 이치를 행하고 있었고, 내공을 운기하지 않아도 천지의 기운과 소통하고 있었다.


2. 뜻밖의 방문객

조용하던 산길에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운은 빗질을 멈추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이는 화려한 비단옷 대신 수수한 여행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남궁설이었다. 그녀는 삼 년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결국 이곳에 계셨군요."

남궁설의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서운함이 교차했다. 한운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남궁 낭자, 먼 길을 오셨군요. 남궁가는 이제 안정을 찾았습니까?"

"낭자라니요, 이제는 가주라고 불러주셔야죠."

남궁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운이 내준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남궁가의 가주가 되어 무림의 재건에 힘쓰고 있었다. 그녀가 전한 소식에 따르면, 설하는 북해빙궁의 궁주가 되어 북방의 질서를 바로잡고 있으며, 소림사의 공공 대선사 또한 건강을 회복하여 불법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당신이 만든 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정작 당신은 왜 이렇게 숨어 지내는 건가요?"


3. 검이 잠든 이유

한운은 방 안에서 천으로 정성스럽게 감싼 청운검을 들고 나왔다. 검은 여전히 청백색의 영롱한 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날카롭게 진동하지는 않았다.

"검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집니다. 지금처럼 맑은 하늘 아래에서 이 검이 불려 나올 이유는 없지요.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검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라, 검이 다시는 쓰이지 않기를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한운은 검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이 검이 정의의 상징이 되길 바라셨지만, 저는 이 검이 망각의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청운검을 잊을 만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청운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남궁설은 그의 말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낙양의 무시장에서 한운이 노인에게 받았던 낡은 철패였다.

"무시장의 정보꾼들이 이것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빙천무황 어르신이 생전에 맡겨두신 물건이라면서요."


4. 스승의 마지막 장난

철패의 뒷면을 살피던 한운의 눈이 커졌다. 거기에는 미세한 글씨로 지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북해가 아닌, 서역의 끝자락에 있는 전설적인 주막 '만취루(萬醉樓)'였다.

그 옆에는 스승의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놈 한운아! 내 최고의 술은 아직 그곳에 남아있다. 은퇴는 무슨 얼어 죽을 은퇴냐. 검이 녹슬기 전에 가서 한 잔 걸치고 오너라. 술값은 네가 내는 거 잊지 말고!]

한운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죽어서도 제자를 가만히 두지 않는 스승의 성격은 여전했다. 남궁설 또한 그 문구를 보고 함께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당신의 은거는 조금 더 미뤄야겠네요."


5. 다시 시작되는 여정

한운은 빗자루를 내려놓고 다시 천으로 감싼 청운검을 등에 멨다. 비록 천마와 같은 거대한 악을 베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스승의 마지막 유업(?)을 완수하는 것 또한 제자의 도리였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서역의 술맛이 꽤나 좋다고 하더군요."

한운의 제안에 남궁설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가 가주로서 서역의 정세를 살피러 가는 것이니, 오해는 마세요."

두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운의 은발이 바람에 휘날렸고, 그의 등 뒤에 매여진 청운검은 마치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듯 은은한 빛을 냈다.


6. 강호의 전설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떠난 초가집 마당에는 바람만이 머물렀다. 한운이 정성껏 쓸어놓은 마당 위로 나뭇잎 하나가 떨어졌다.

강호의 역사는 기록하는 자들에 의해 남겨지지만, 진정한 전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쉰다. 청운검문의 후예, 빙천무황의 제자, 그리고 천마를 벤 영웅. 수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랐지만, 한운에게 가장 소중한 이름은 그저 '한운'이라는 평범한 한 인간의 이름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넓고, 길 위에는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걷는 길은 이제 핏빛 전장이 아닌, 우정과 풍류가 가득한 새로운 강호였다.


7. 만취루의 저녁 노을

수개월의 여정 끝에 다다른 서역의 끝. 거대한 사막의 입구에 자리 잡은 만취루의 간판이 노을빛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주막 안에서는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운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막 구석에서 한 노인이 술병을 들고 손을 흔드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한운은 술상 위에 청운검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 이 주막에서 가장 독하고 맛있는 술 두 잔 주십시오."

그의 주문에 주막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술병을 가져왔다. 한운은 술잔을 채워 하나는 자신의 앞에, 하나는 빈 맞은편 자리에 놓았다.

"스승님, 술값은 제가 냅니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며 술을 들이켰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술기운이 마치 살아있는 강호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8. 영원한 청운(靑雲)

밤이 깊어지자 만취루 위로 수만 개의 별이 쏟아져 내렸다. 한운은 남궁설과 함께 밤하늘을 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더 이상 숨지 않고, 필요한 곳에 나타나 도움을 주는 만행(萬行)의 길을 걷기로 했다.

청운검은 이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칼날이 아니라,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다.

"공자, 저 별들 중에 공자의 아버님과 어르신도 계실까요?"

"아마도요. 그리고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감시하고 계실 겁니다."

한운은 웃으며 청운검의 자루를 어루만졌다. 구름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얼음은 녹아 다시 물이 된다.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처럼 한운의 삶 또한 새로운 흐름을 타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제16화: 새로운 인연, 사막의 붉은 폭풍

만취루에서의 술 한 잔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서역의 끝자락, 거대한 모래바다인 타클라마칸 사막의 초입에서 한운과 남궁설은 스승 빙천무황이 남긴 마지막 지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철패에 새겨진 지도는 단순히 술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중원 무림의 비극과 연결된 또 다른 거대한 힘의 근원을 향하고 있었다.


1. 사막의 이방인

타오르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모래 언덕 위로 두 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은발을 휘날리는 한운과 붉은 차양 모자를 쓴 남궁설이었다. 한운은 등에 멘 청운검이 사막의 열기 속에서도 기분 좋은 냉기를 내뿜고 있음을 느꼈다.

"공자, 이 지도가 가리키는 '모래의 성'이라는 곳이 정말 존재할까요? 이 척박한 땅에 성이 있다니 믿기지 않아요."

남궁설이 땀을 닦으며 물었다. 한운은 지도를 다시 한번 살핀 뒤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은 결코 헛된 장난을 치실 분이 아닙니다. 이 지도는 중원의 기운과는 다른, 아주 오래된 마력(魔力)의 흐름을 가리키고 있어요. 천마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막 너머에서 느껴지는 이 불길한 진동은 무엇일까요."

그때, 고요하던 사막의 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 거대한 모래 기둥이 솟구치더니, 붉은색을 띤 폭풍이 무서운 속도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폭풍 속에는 누군가의 강렬한 살기와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2. 붉은 전사들의 습격

"피하십시오!"

한운이 남궁설의 어깨를 잡고 뒤로 날아올랐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초승달 모양의 곡도(曲刀)가 박혔다. 폭풍 속에서 붉은 복면을 쓴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눈은 중원의 사람들과 달리 이채로운 자줏빛을 띠고 있었고, 몸에서는 기괴한 주술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곳은 '혈사교(血沙敎)'의 성역이다. 중원의 벌레들이 감히 발을 들이다니!"

선두에 선 거한이 곡도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모래바람과 섞여 기괴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혈사교. 중원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막의 어둠 속에서 힘을 키워온 고대 종교였다.

한운은 청운검의 자루를 쥐었다.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지도가 가리키는 진실을 확인하러 왔을 뿐이다."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둘 수 없지. 그것은 우리 교주님이 찾으시는 '성소의 열쇠'다!"

십여 명의 혈사교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래 속으로 몸을 숨겼다가 나타나는 기묘한 보법을 사용했다.


3. 청운과 혈사의 격돌

한운의 청운검이 빛을 발했다.

"빙천청운무(氷天靑雲舞), 제1초식: 빙각(氷刻)!"

한운이 검을 바닥에 꽂자, 뜨겁던 모래바닥이 순식간에 하얗게 얼어붙으며 솟구쳤다. 모래 속에서 기습하려던 무사들이 얼음 기둥에 갇혀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남궁설 또한 연검을 휘둘러 곡도들의 공격을 유려하게 받아냈다. 가주로서의 수련은 헛되지 않아, 그녀의 검기는 이제 일류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혈사교 무사들은 쓰러져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다시 일어났다. 그들의 상처에서는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눈빛은 더욱 광기로 가득 찼다.

"주술로 신체를 강화했군. 평범한 공격으로는 끝이 없겠어."

한운은 검의 궤적을 바꿨다. 단순한 파괴가 아닌, 상대의 기 흐름을 끊는 정교한 검술이 필요했다.


4. 서역의 소녀, 아샤

전투가 격렬해질 무렵, 모래 언덕 위에서 한 소녀가 나타났다. 금색 장신구를 온몸에 두르고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녀였다. 그녀는 기이한 지팡이를 들어 허공에 원을 그렸다.

"멈춰라! 그들은 교주님의 손님이 아니다!"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푸른 광막이 전장을 덮었다. 그러자 광기에 날뛰던 혈사교 무사들이 일시에 동작을 멈추고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샤 공주님!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도우시는 겁니까!"

거한이 외쳤지만, 소녀 아샤는 냉정하게 지팡이를 내리쳤다. "내 아버지를 죽이고 교단을 찬탈한 자의 명령을 따르는 너희들이야말로 배신자다. 당장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사막의 정령들에게 너희의 영혼을 바치겠다."

공주라는 말에 혈사교 무사들은 주춤하며 물러났다. 그들은 붉은 폭풍 속으로 다시 사라졌고, 사막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5. 가려진 서역의 비극

아샤는 한운과 남궁설에게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중원의 영웅들께서 오셨군요. 빙천무황 어르신이 말씀하신 '청운의 주인'이 당신인가요?"

한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승님은 대체 얼마나 넓은 곳까지 손을 뻗치고 계셨던 것인가.

"스승님을 아십니까?"

"어르신은 저희 아버지, 즉 전대 혈사교주의 은인이셨습니다. 아버지가 현재의 찬탈자 '사마(沙魔)'에게 살해당하기 전, 중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서를 보내셨죠. 그 전서를 받으신 분이 바로 어르신입니다."

아샤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혈사교를 장악한 사마는 천마의 잔재를 찾아 사막 아래 잠든 고대 도시를 깨우려 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중원은 물론 온 세상이 다시 한번 어둠에 잠길 것이 분명했다.


6. 모래의 성, 아틀란

아샤는 두 사람을 사막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 거처로 안내했다. 그곳은 모래 아래에 건설된 거대한 유적이었다. 천장에는 야광주 대신 사막의 열기를 빛으로 바꾸는 고대 주술의 수정들이 박혀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이 '아틀란'입니다. 고대 혈사교가 수호하던 지혜의 보고이자, 사마를 막을 유일한 힘이 잠든 곳이죠."

한운은 그곳에서 청운검이 유독 강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석실 중앙에는 청운검과 비슷한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석판이 놓여 있었다.

"빙천무황 어르신은 이곳의 봉인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기운 일부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죠. 언젠가 자신의 제자가 와서 이 모든 고리를 끊을 것이라고."

한운은 스승의 깊은 배려와 멀리 내다보는 혜안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스승님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제자가 걸어갈 길을 닦아놓으셨던 것이다.


7. 다가오는 위협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거처의 진동이 시작되더니, 지상에서부터 거대한 마기가 침투해 오기 시작했다. 사마가 이끄는 혈사교의 본대가 아틀란의 위치를 찾아낸 것이었다.

"한운 공자, 시간이 없습니다. 저 석판에 청운검을 꽂으세요. 청운의 맑은 기운만이 사막 아래 잠든 고대 병기를 정화하고 깨울 수 있습니다."

아샤의 외침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온몸이 모래와 피로 뒤섞인 괴물 같은 형상을 한 사내, 그가 바로 혈사교를 찬탈한 사마였다.

"드디어 찾았군. 중원의 애송아, 네 검이 내 대업의 마지막 열쇠가 될 것이다!"


8. 새로운 결전의 서막

한운은 남궁설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미 검을 뽑아 들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자, 걱정 마세요. 뒤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한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청운검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진기와 은백색의 한기가 소용돌이치며 석실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정의, 스승님이 남겨준 힘,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지켜야 할 새로운 인연들.

"사마, 당신의 탐욕은 이 사막의 모래 아래에 영원히 묻히게 될 것입니다."

한운의 선언과 함께 청운검이 석판을 향해 뻗어 나갔다. 눈부신 빛이 아틀란 전체를 뒤덮었고, 사막 아래 잠들어 있던 고대의 힘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제17화: 태양의 신전, 부활하는 고대 병기

석실 중앙의 석판에 청운검이 박히는 순간, 아틀란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고동치기 시작했다. 검신을 타고 흘러 들어간 한운의 푸른 진기는 고대 유적의 혈맥을 따라 퍼져 나갔고,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수정구들이 일제히 태양보다 밝은 빛을 내뿜었다.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모래 벽들이 기계적인 소음을 내며 뒤로 물러나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신전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1. 사마의 탐욕

무너져 내린 천장 사이로 내려앉은 사마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붉은 모래들이 요동치며 주변의 고대 유산들을 부식시키려 했다.

"이것이구나! 고대 혈사교가 하늘의 불을 가두어 만들었다는 태양의 신전! 이 힘만 있다면 중원은 물론 천하를 내 발아래 둘 수 있다!"

사마가 거대한 곡도를 휘두르자, 핏빛 마기가 한운을 향해 쇄도했다. 한운은 청운검을 석판에서 뽑아내지 않은 채 한 손으로 검기를 받아냈다. 검을 통해 유적의 거대한 힘이 흘러들어오고 있었기에, 한운의 몸은 지금 그 자체로 신전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샤 공주님, 남궁 가주님! 지금입니다! 신전의 제어 장치를 가동하세요!"

한운의 외침에 아샤는 지팡이를 들어 허공에 고대 문자를 그렸고, 남궁설은 그녀를 보호하며 몰려오는 혈사교 무인들을 베어 넘겼다.


2. 신전의 수호자, 금갑신병(金甲神兵)

아샤의 주술이 완성되자, 신전 벽면에 조각되어 있던 거대한 기계 인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금빛 갑주를 두르고 타오르는 불꽃의 창을 든 금갑신병들이었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 안광을 번뜩이며 사마의 무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건... 전설 속의 파수꾼들이잖아?"

남궁설이 경탄하며 검을 휘둘렀다. 금갑신병들의 참전으로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마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가슴을 손톱으로 찢어 검붉은 피를 흘려보냈다.

"어리석은 것들. 고대의 힘이 너희들만의 것인 줄 알았더냐? 피의 계약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맺어졌다!"

사마의 피가 바닥에 닿자, 금갑신병들의 황금빛 안광이 핏빛으로 변하며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한운과 아샤를 향해 창끝을 돌렸다.


3. 청운검보 제8초식, 일월공명(日月共鳴)

사방이 적으로 변한 절체절명의 순간, 한운은 석판에 박힌 청운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버지가 남긴 비급에는 서역의 힘에 대응하는 초식은 없었으나, 한운은 스승이 남긴 빙천의 이치를 떠올렸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 가장 차가운 것은 가장 뜨거운 것과 맞닿아 있었다.

'해와 달이 한 하늘에 머물 때, 세상의 혼돈은 정화된다.'

무명검전과 청운검보가 융합된 새로운 경지. 한운은 유적의 뜨거운 태양 에너지를 자신의 차가운 빙청진기에 강제로 결합시켰다.

"청운검보 제8초식, 일월공명(日月共鳴)!"

한운의 전신에서 푸른색과 황금색의 기운이 꽈배기처럼 꼬이며 폭발했다. 그 기운은 핏빛으로 변했던 금갑신병들의 몸을 훑고 지나가며 사마의 저주를 씻어냈다.

"크아악! 내 주술이...!"

사마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한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석판에서 청운검을 뽑아 올렸다. 이제 검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태양의 광휘를 머금은 신검(神劍)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4. 아샤의 결단과 신전의 폭주

"한운 공자, 사마의 본체는 모래 속에 숨겨진 '혈사핵'에 있습니다! 저 괴물을 죽이려면 신전의 동력을 하나로 모아야 해요!"

아샤가 제단 위로 올라가 자신의 생명력을 매개로 신전의 모든 수정을 활성화했다. 신전 전체가 무너질 듯 진동하며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가 한운의 검 끝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아샤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남궁설이 그녀를 부축하며 한운을 바라보았다.

"공자, 서두르세요! 공주님이 버티지 못합니다!"

한운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검 끝에 실린 무게가 한 여인의 생명과 서역의 미래임을 직감했다. 그는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5. 사마와의 최종 결전

사마는 거대한 모래 괴물로 변해 신전의 천장을 가로막았다. 수천 개의 모래 손들이 한운을 찢어발기려 달려들었다. 한운은 공중에서 빙운보를 밟으며 환영을 만들어냈다.

"모든 환상은 진실 앞에서 부서진다!"

한운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태양의 빛을 머금은 푸른 검기는 모래 괴물의 팔들을 태워버리며 핵을 향해 나아갔다. 사마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마기를 폭발시켜 동귀어진을 시도했다.

"함께 죽자, 중원의 애송아! 이 신전과 함께 사막 아래에 묻어주마!"

검은 마기와 황금빛 검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신전의 기둥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고, 거대한 폭사(暴砂)가 석실을 뒤덮었다.


6. 진실의 문, 그리고 유산

폭풍의 중심에서 한운의 청운검이 사마의 심장에 박힌 혈사핵을 관통했다.

쩍, 소리와 함께 사마의 거구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수십 년간 갇혀 있던 원혼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한운은 쓰러지는 아샤를 받아 안았다. 신전의 동력이 차단되자 빛은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유적은 다시 깊은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주님, 정신 차리세요!"

아샤는 힘겹게 눈을 뜨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이제 아버님의 영혼이 자유로워졌어요. 그리고 보세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제단 뒤편의 벽이 열리며, 한 자루의 낡은 지팡이와 두루마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혈사교의 진정한 성물과, 중원 무림맹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서역의 비사(秘史)가 담긴 기록물이었다.


7. 드러나는 거대한 그림자

남궁설이 두루마리를 살펴보다 안색이 변했다. "공자, 이건... 중원 무림의 시조들이 사실은 서역에서 추방당한 자들이었다는 기록이에요. 그들이 중원으로 건너가 정파와 사파를 만든 건, 자신들의 과거를 지우고 서역의 힘을 가두기 위한 거대한 사기극이었던 거예요."

한운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천마의 부활보다 더 끔찍한 진실. 무림의 역사 자체가 기만 위에 세워진 탑이었다는 사실은 한운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걸까요?"

"아마도 그래서 청운검문을 통해 진정한 협(俠)을 세워 그 거짓을 덮으려 하셨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남궁설의 위로에 한운은 청운검을 거두었다. 이제 검은 다시 평범한 빛으로 돌아왔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이전보다 훨씬 무거워져 있었다.


8. 새로운 서역의 아침

신전을 빠져나온 세 사람의 앞에는 사막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붉은 폭풍은 걷혔고, 혈사교의 잔당들은 아샤 공주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한운 공자, 남궁 가주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저는 이곳에서 새로운 혈사교를 세우겠습니다. 더 이상 피와 마기가 아닌, 지혜와 평화의 교단을요."

아샤와의 이별은 짧았다. 한운과 남궁설은 다시 중원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공자?"

남궁설의 물음에 한운은 먼 하늘을 보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푸른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거짓으로 세워진 역사를 바로잡으러 갈 겁니다. 이제 청운의 이름은 단순히 한 문파의 이름이 아니라, 세상을 깨우는 진실의 종소리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사막 위로 길게 늘어지며, 전설의 다음 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중원은 이제 한 소년의 복수가 아닌, 거대한 변혁의 물결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제18화: 중원 귀환, 맹주의 마지막 승부수

서역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뒤로하고 중원의 관문인 옥문관(玉門關)에 들어섰을 때, 한운과 남궁설을 맞이한 것은 승전의 환호가 아닌 서늘한 살기였다. 사막 아래 태양의 신전에서 확인한 무림의 기만적 역사는 한운의 가슴 속에서 차가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정파와 사파의 시조들이 서역에서 추방된 자들이라는 진실, 그리고 그들이 세운 가짜 정의의 체계. 이제 한운은 그 거대한 거짓의 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원의 심장부로 향했다.


1. 변해버린 강호

삼 년 만에 다시 밟은 중원의 흙은 왠지 모르게 탁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낙양을 거쳐 무림맹 본산이 있는 황궁 근처로 향하는 동안, 한운은 기이한 광경들을 목격했다. 천마는 사라졌지만, 무림맹은 더욱 공고한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정의의 재건'이라는 명분 아래 각 문파의 비급을 강제로 회수하고, 이에 불응하는 자들을 사파로 몰아 숙청하는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게 공자가 지킨 세상인가요?"

남궁설이 참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가문인 남궁가 또한 맹주의 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압류당하고, 수많은 가신이 지하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권력은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 법이지요. 천마라는 거대한 악이 사라지니, 이제는 정의를 자처하는 자들이 그 괴물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군요."

한운의 목소리는 낮고 위압적이었다. 그의 은발은 더욱 창백하게 빛났고, 등에 멘 청운검은 이제 스스로 기운을 갈무리하며 폭풍 전의 고요를 유지하고 있었다.


2. 맹주 금천위의 생존

놀랍게도 북해에서 죽은 줄 알았던 무림맹주 금천위는 살아 있었다. 아니, 그는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기괴한 존재로 거듭나 있었다. 천마의 육신은 바스러졌으나, 금천위는 그 소멸의 순간에 천마의 파편을 자신의 단전에 받아들였던 것이다.

황궁 지하 깊숙한 곳, 금천위는 서역에서 가져온 고대 기록의 사본을 보며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한운... 그놈이 서역의 신전을 깨웠군. 드디어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어."

그의 피부 위로는 검은 혈관이 지렁이처럼 꿈꿈틀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정파의 수장이 아닌, 스스로 천마의 의지를 이은 새로운 마왕(魔王)이 되려 하고 있었다. 그는 한운이 가져올 서역의 진실이 담긴 두루마리를 빼앗아, 무림의 역사를 영원히 조작하고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마지막 도박을 준비했다.


3. 황궁의 야습

한운과 남궁설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수천 명의 금위군과 무림맹 집행단이 황궁의 담장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지만, 한운의 걸음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길을 비켜라. 내 검은 오직 진실을 가리는 자만을 벤다."

한운이 청운검을 뽑아 지면을 그었다.

청운검보 제9초식, 빙하대지(氷河大地).

푸른 냉기가 파도처럼 밀려 나가며 황궁 정문의 돌계단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달려들던 무사들은 발바닥이 지면에 붙은 채 얼어붙었고, 한운은 그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지나갔다. 남궁설은 연검을 휘둘러 화전(火箭)들을 쳐내며 그의 뒤를 지켰다.

"남궁설! 배신자 주제에 감히 이곳을 더럽히느냐!"

무림맹의 원로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한때 남궁설이 숙부라 부르며 따랐던 고수들이었으나, 지금 그들의 눈에는 탐욕과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진정한 배신자는 누구입니까, 숙부님? 강호의 도의를 팔아 권력을 산 당신들입니까, 아니면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는 저입니까?"

남궁설의 일갈과 함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4. 지하 전당의 결투

한운은 홀로 황궁 지하의 밀실로 파고들었다. 그곳은 역대 무림맹주들의 위패가 모셔진 전당이었으나, 지금은 피 냄새와 마기가 진동하는 제단으로 변해 있었다.

중앙 좌석에 앉아 있던 금천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왔느냐, 청운의 망령아."

"금천위, 당신의 욕심이 결국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었군요. 북해에서 끝냈어야 할 인연을 여기서 마감하겠습니다."

한운의 검 끝에서 서역 태양의 신전에서 얻은 황금빛 기운과 빙천의 냉기가 소용돌이쳤다.

금천위는 대답 대신 거대한 마기를 폭발시켰다. 그의 손에는 천마의 유산인 '혈령검'이 쥐어져 있었다.


5. 가짜 정의 vs 진정한 협(俠)

두 절대자의 충돌은 지하 전당을 무너뜨릴 듯 격렬했다. 금천위의 검은 파괴와 부식을 상징했고, 한운의 검은 정화와 안정을 상징했다.

"네가 가져온 서역의 두루마리는 여기서 불태워질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 패자의 진실 따위가 아니다!"

금천위의 외침과 함께 검은 마기 폭풍이 한운을 덮쳤다. 하지만 한운은 눈을 감았다. 그는 이제 검으로 적을 베는 단계를 넘어, 세상의 기운을 다스리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하늘 아래 부끄러움이 없다면, 구름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운의 전신에서 눈부신 백색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내공의 힘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발현이었다.


6. 마지막 도박, 혈제(血祭)

세력이 불리해지자 금천위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그는 전당 바닥에 새겨진 진법을 가동했다. 황궁 밖에 포진해 있던 수천 명의 무사들의 생명력을 강제로 흡수하는 혈제(血祭)였다.

"모두 죽여서라도 나는 신이 되겠다!"

무사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금천위의 기세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 날개가 돋아났고, 눈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한운은 가슴 통증을 느꼈다. 무고한 생명들이 탐욕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는 청운검을 거꾸로 쥐고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검은 주인의 의지를 담는 그릇. 나의 생명을 담아 이 거짓된 제단을 부수리라."


7. 청운검보 최종 오의, 만천화우(萬天和雨)

한운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눈부신 백색으로 타올랐다. 그는 자신의 진원(眞元)을 태워 청운검에 쏟아부었다.

"청운검보 최종 오의, 만천화우(萬天和雨)!"

검 끝에서 시작된 푸른 빛이 수만 개의 빗방울이 되어 전당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빗방울은 금천위의 마기를 정화하고, 흡수당하던 무사들의 생명력을 되돌려주었다.

"안 돼! 내 힘이... 내 영생이...!"

금천위의 거대한 마도가 빗방울에 닿는 순간 비누 방울처럼 허무하게 터져 나갔다. 한운의 검이 그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8. 무너지는 왕좌

금천위의 육신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한운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무림맹의 중심이었던 지하 전당이 굉음과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다.

남궁설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공자! 정신 차리세요!"

한운은 품 안에서 서역의 두루마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것을... 세상에 알리세요. 이제 사람들은 가짜 정의에 속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황궁 밖으로 나온 그들의 앞에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무림맹의 깃발은 불타 땅에 떨어졌고, 생기를 되찾은 무사들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운은 은백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미소 지었다. "이제... 정말로 끝났군요."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가짜 역사가 무너진 자리 위로, 진정한 인간의 의지로 써 내려갈 새로운 무림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제19화: 진실의 공표, 새로운 무림의 서막

황궁 지하 전당의 붕괴는 곧 천 년간 이어져 온 기만적 질서의 종말을 의미했다. 맹주 금천위의 소멸과 함께 그가 억지로 붙들고 있던 거짓된 정의의 장막도 걷혔다. 먼지와 연기가 자욱한 황궁 터 위로, 한운은 남궁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전신은 상처투성이였고, 은백색으로 변해버린 머리카락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1. 폐허 위에 선 군중

황궁 밖 광장에는 수천 명의 무사와 낙양의 백성들이 모여 있었다. 금천위의 혈제(血祭)에 이용당하다 겨우 목숨을 건진 무림맹 집행단원들은 창을 내린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운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한운은 맹주를 시해한 역적이자, 동시에 자신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올린 구원자였다.

"모두 들으시오!"

남궁설이 한운을 대신해 사자후를 토했다. 그녀의 손에는 서역 태양의 신전에서 가져온 고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정의라 믿었던 무림맹의 역사는 모두 거짓이었소! 정파와 사파의 시조들이 서역에서 쫓겨난 범죄자들이었으며, 그들이 세운 질서는 오직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 힘을 독점하기 위한 도구였음을 이 기록이 증명하고 있소!"

광장은 순식간에 술렁임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부정하며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허탈함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수백 년간 지켜온 가치관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2. 진실의 증명

한운은 떨리는 손으로 청운검을 허공에 치켜들었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광채가 남궁설이 든 두루마리에 닿자, 허공에 고대 서역의 언어와 그림들이 거대한 환영으로 투사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닌, 유물에 깃든 기억의 편린이었다.

환영 속에서 무림의 시조들이 서역의 성물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 중원에 정착해 자신들의 과거를 미화하며 가짜 전설을 조작하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 앞에 무사들은 하나둘씩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우리가 대체 무엇을 위해 피를 흘렸단 말인가."

한 늙은 무사가 자신의 부러진 검을 내려다보며 통곡했다. 정(正)과 사(邪)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 형제와 벗을 죽여야 했던 세월에 대한 참회였다.


3. 마지막 저항과 정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어둠에 매몰된 자들은 존재했다. 금천위의 가신들이자 기득권을 놓지 못하는 일부 원로들이 병기를 뽑아 들었다.

"닥쳐라! 저것은 요사스러운 서역의 주술일 뿐이다! 무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저 역도를 처단하라!"

그들이 한운을 향해 쇄도하려던 찰나, 공중에서 맑은 종소리와 함께 거대한 냉기의 파동이 몰아쳤다. 소림사의 공공 대선사와 북해빙궁의 궁주로 즉위한 설하가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었다.

"업보(業報)로다. 가려진 눈을 뜨지 못하고 여전히 탐욕을 쫓는가."

공공 대선사의 법력이 원로들의 기세를 억눌렀고, 설하의 한빙공이 그들의 발을 묶었다. 이제 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무림맹의 잔당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무기를 버렸다.


4. 청운검문의 부활 선언

한운은 피를 토하면서도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우러러보는 군중을 향해 마지막 힘을 짜내어 입을 열었다.

"청운검문은 오늘부로 무림의 권력을 탐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오. 내 아버지가 꿈꾸었던 세상은 거창한 명분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민초들이 억울함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땅이었소."

그는 청운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이제 정파도, 사파도 없소. 오직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무인들만이 남을 뿐이오. 무림맹은 해체될 것이며, 각 문파는 스스로의 도의를 세워 자치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오. 만약 다시 권력에 눈이 멀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자가 있다면, 이 청운의 검이 다시 일어날 것이오."

한운의 선언은 새로운 무림 헌장이나 다름없었다. 거대 조직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그의 외침은 현장에 있던 모든 무인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5. 보이지 않는 손들의 은퇴

사태가 진정되자 한운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황궁 뒷산의 정자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공공 대선사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 시주,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구려. 머리카락이 그리 변한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오."

"스님, 머리카락이야 다시 검어지지 않겠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습니다. 아버지가 보셨던 하늘을 이제야 저도 보는 것 같습니다."

한운은 웃었다. 비록 진원을 소진하여 예전과 같은 무공을 펼칠 수는 없었으나, 그의 내면은 이미 천하제일인의 경지를 넘어 자연의 섭리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6. 남궁설의 길, 그리고 작별

남궁설은 남은 이들을 규합하여 무림 재건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그녀는 한운과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자신의 가문과 무림에 남은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공자, 정말 가실 건가요? 당신이 없는 강호는 너무나 적막할 거예요."

"낭자, 당신이 있는 이곳이 이제 진정한 강호입니다. 저는 그저 바람처럼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지요. 가끔 술 한 잔이 생각나면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세요."

한운은 그녀에게 자신의 청운검보 사본을 건넸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새로운 무림의 초석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쌓아온 동료애는 연정보다 깊은 유대로 남았다.


7. 설하의 배려와 선물

북해로 돌아가야 하는 설하 역시 한운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녀는 한운의 단전에 남은 냉기 상처를 치료해주기 위해 북해의 비보인 '천년빙령주'를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수명을 보존해줄 거예요. 빙천무황 어르신이 계셨다면 저보다 더 좋은 것을 주셨겠지만요."

"궁주님, 북해의 평화도 공주님께 달렸습니다. 조만간 스승님의 흔적을 찾아 북해를 방문하겠습니다."

설하는 미소를 지으며 북쪽으로 향했다. 한운은 이제 홀로 남았다. 아니, 그의 곁에는 그가 구해낸 세상이 함께하고 있었다.


8. 새로운 여정의 시작

한운은 낡은 삿갓을 쓰고 등에 청운검을 멨다. 그는 낙양의 저잣거리를 지나 서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은발의 나그네가 자신들을 구한 영웅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놀았고, 상인들은 목청껏 물건을 팔았다.

그 평범한 풍경이 한운에게는 그 어떤 비급보다 소중했다.

"아버지, 스승님. 이제야 제 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한운은 지평선 끝으로 저무는 해를 향해 걸어갔다. 청운검문은 문파로서 사라졌을지 모르나, '청운'이라는 이름의 의지는 이제 중원 곳곳에 민초들의 숨결로 살아 숨 쉬게 되었다.

제20화: 만행(萬行)의 길, 전설이 된 그림자 (최종회)

낙양의 성문을 나선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무림맹의 폐허 위로 돋아난 새 풀들이 강호의 새로운 질서를 증명하듯 푸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중원의 지도는 더 이상 정파와 사파의 경계선으로 나뉘지 않았고, 무인들은 문파의 명예보다 개인의 도의를 먼저 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던 은발의 검객, 한운은 이제 만행(萬行)의 길 위에 서 있었다.


1. 이름 없는 길 위의 객

한운은 중원의 서쪽 끝,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란저우(蘭州)의 작은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은발은 여전히 눈부셨으나, 표정은 갓 구워낸 빵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농기구가 고장 나면 고쳐주는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등에 멘 청운검은 이제 두꺼운 무명천에 꽁꽁 싸여 있었다. 검을 뽑을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마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산적들이나 탐관오리들은 감히 발을 들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기운, 즉 '청운의 기세'가 마을 전체를 수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오늘도 저 멀리서 누군가 선생님을 찾아왔어요."

마을 아이 하나가 뛰어오며 소리쳤다. 한운은 붓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마을 입구에는 낡은 나귀를 탄 한 노승이 서 있었다. 소림사의 공공 대선사였다.


2. 공공 대선사와의 재회

"허허, 한 시주. 이런 구석진 곳에 숨어 사니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소."

공공 대선사는 나귀에서 내려 한운에게 합장했다. 한운은 정중히 맞절하며 그를 초가집으로 안내했다.

"스님, 멀리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소림의 불사가 바쁘실 텐데요."

"세상의 불사는 끝이 없는 법이지요. 하지만 시주에게 전해줄 소식이 있어 왔소. 남궁설 가주가 무림 재건을 마쳤고, 이제 각 문파는 비급을 공유하며 진정한 상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소. 서역의 아샤 공주 또한 새로운 교단을 세워 중원과 교류를 시작했다는구려."

한운은 찻잔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좋은 소식이군요. 제가 한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소. 사람들이 자꾸만 당신을 '청운검신'이라 부르며 신격화하려 한다는 것이오. 심지어 당신을 모시는 사당까지 생기려 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한운은 찻잔 속의 찻잎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답했다. "죽은 자는 기억되어야 하나, 산 자는 잊혀야 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영웅의 이름이 아니라, 그저 맑은 하늘 아래 흐르는 구름 같은 자유입니다."


3. 마지막 제자, 그리고 전승

공공 대선사가 떠난 뒤, 한운의 집 문을 두드린 또 다른 손님이 있었다. 부모를 여의고 시장터에서 구걸하던 어린 소년, '무명(無名)'이었다. 소년은 한운이 금천위와 싸우던 날, 황궁 광장에서 그의 뒷모습을 본 뒤로 수천 리 길을 따라온 아이였다.

"저에게 검을 가르쳐주세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처럼 힘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요."

소년의 눈빛에서 한운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증오로 가득 찼던 자신과 달리, 소년의 눈은 맑고 투명했다. 한운은 천천히 무명천을 풀어 청운검을 드러냈다.

"이 검은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은 팔의 근육이 아니라 가슴 속의 의지다. 네가 평생 그 의지를 지킬 수 있겠느냐?"

소년은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날부터 한운의 만행은 홀로가 아닌, 제자와 함께하는 여정이 되었다. 한운은 소년에게 청운검보의 기술이 아닌, 자연의 흐름을 읽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


4. 아버지의 묘비명

어느덧 겨울이 찾아오고, 한운은 제자와 함께 고향인 백운표국 터를 찾았다. 폐허가 된 터에는 이제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작은 추모비를 세워두었다.

한운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 섰다. 그리고 품 안에서 낡은 단검 하나를 꺼냈다. 청운검을 만들기 위해 합쳐졌던 청강단검의 파편으로 만든 작은 단검이었다.

"아버지, 이제야 아버지가 꿈꾸셨던 '평범한 이들의 강호'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저는 은발의 노인이 되었으나, 제 곁에는 새로운 희망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는 추모비 옆에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던 술을 뿌렸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얀 눈송이가 한운의 은발과 섞여 누가 눈이고 누가 머리카락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5. 빙천무황의 흔적

한운은 내친김에 북해의 심연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스승 빙천무황의 영체가 머물던 지하 호수. 하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영체도, 마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맑은 물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운은 호수 옆 바위에 앉아 청운검을 내려두었다. "스승님, 술값은 갚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서역의 주막까지 가기에는 제 다리가 이제 조금 무겁군요."

그는 품에서 서역의 최고급 술 한 병을 꺼내 호수에 부었다. 그러자 호수 수면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스승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했다. 한운은 그제야 스승이 진정으로 자유를 얻었음을 깨달았다.


6. 남궁설과의 마지막 약속

낙양으로 돌아오는 길, 한운은 남궁가에 들렀다. 남궁설은 이제 강호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가주복을 입고 있었지만, 한운을 대하는 태도는 삼 년 전 그날과 같았다.

"공자, 이제 정말로 떠나시는 건가요?"

"낭자, 구름은 한곳에 머물면 비가 되어 사라지는 법입니다. 저는 계속 흘러가야 합니다."

남궁설은 눈물을 참으며 미소 지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강호의 주인이 아니라, 강호 그 자체가 되기로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해 주세요. 매년 첫눈이 내리는 날, 이곳 낙양의 만취루에서 술 한 잔을 비워두겠습니다. 언제든 생각이 나면 들러주세요."

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가 강호에 남긴 유일한 약속이었다.


7. 전설이 된 그림자

다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은발의 무사는 이제 전설 속의 인물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승천했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중원 어딘가에서 짐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세상이 다시 어둠에 잠기려 할 때마다 푸른 검기를 휘두르는 정체불명의 고수가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고 홀연히 사라진다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청운객'이라 불렀다.

한운의 제자 무명은 이제 중년의 무인이 되어 청운검을 짊어지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또 다른 어린 소년이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스승님, 진정한 무(武)란 무엇입니까?"

무명은 하늘에 떠 있는 푸른 구름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것은 억울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가짜 진실에 맞서 당당히 검을 뽑을 수 있는 용기란다. 예전에 내 스승님이 그러셨지. 검은 마음의 그림자라고."


8. 대단원: 청운은 영원히 흐른다

태산의 정상,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노인이 된 한운이 앉아 있었다. 그의 은발은 이제 투명할 정도로 하얬고, 그의 곁에는 낡은 청운검이 평화롭게 놓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평생을 따라다녔던 복수심, 권력에 대한 유혹, 영웅으로서의 무게감. 그 모든 것이 저녁 노을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아버지, 스승님... 이제 저도 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한운의 신형이 서서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자연의 기운으로 돌아가는 탈태환골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의 육신은 수천 개의 푸른 나비가 되어 하늘로 흩어졌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청운검만이 남았다. 검은 스스로 바위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훗날 수많은 자가 그 검을 뽑으려 했으나, 오직 '맑은 마음'을 가진 자만이 검의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원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가끔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숲의 속삭임 속에서 은발 무사의 전설을 떠올렸다. 청운검문의 후예, 한운. 그의 이름은 사라졌으나 그가 남긴 '청운의 의지'는 영원히 흐르는 강물이 되어 천하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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