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나, 레온?” 심장을 파고드는 차가운 강철의 감촉과 함께,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기사단의 황금빛 갑옷은 이미 적들의 검은 피와 나의 붉은 피로 더러워진 지 오래였다. 한때 대륙의 구원자라 불리던 영웅, 성기사단장 카이엔. 그가 지금 내 가슴에 검을 꽂은 채 미소 짓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 세상은 매번 멸망의 도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왜 인간은 고작 신들이 짜 놓은 판 위에서 꼭두각시처럼 춤춰야 하느냐는 말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핏덩이를 삼키며 그를 노려보았다. 황궁의 대성전은 이미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마수들의 울부짖음과 동료들의 비명.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결성된 최정예 원정대는, 믿었던 동료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