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4. 22:35ㆍ만화 애니
퍽! 퍽!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숲속. 어린아이의 키만 한 통나무가 무참하게 매를 맞고 있었다. 주먹만 한 돌멩이를 쥐고 통나무를 내리치는 소년의 이마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아흔여덟…… 아흔아홉…… 백!”
마지막 백 번째 타격이 가해지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가 버티지 못하고 처참하게 부서져 내렸다. 돌가루와 함께 레온의 주먹에서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부와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레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작고 앙상한 손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쁘지 않아.’
지옥 같은 일일 퀘스트를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 매일같이 쏟아지는 패널티의 공포 속에서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이 악물고 완수해 냈다. 그리고 보상으로 주어진 ‘하급 근력 영약’을 매일 밤 아낌없이 들이켰다.
효과는 확실했다. 영양실조로 뼈대만 앙상했던 열 살짜리 육체에 눈에 띄게 탄탄한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전생의 경지였던 ‘그랜드 마스터’의 검로를 완벽히 구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또래 아이들 대여섯 명쯤은 맨손으로 접어버릴 수 있는 골격이 갖춰진 것이다.
[시스템] 일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 ‘하급 민첩 영약’ 1개가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체력이 모두 회복됩니다.
화아악!
언제나처럼 서늘한 알림음과 함께 상쾌한 마력이 온몸을 감쌌다. 짓무르고 터졌던 주먹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며 새살이 돋아났다.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진 레온은 보상으로 나온 녹색 유리병을 흔들림 없이 마셔버렸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감각. 레온은 숨을 길게 내쉬며 허리춤에 꽂아둔 나뭇가지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허공을 향해 검을 뻗었다.
스윽.
전생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성기사단의 기본 검식, 제1 초식 ‘종베기’. 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정직한 궤적이었지만, 나뭇가지 끝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미세한 파공음(破空音)이 발생했다.
기교가 아닌, 순수한 신체 스펙과 전생의 감각만으로 만들어낸 정교함이었다.
‘앞으로 3년.’
레온은 나뭇가지를 거두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을이 마수들에게 학살당하고, 카이엔이 가짜 영웅으로 등장하기까지 남은 시간. 그동안 르완 마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연(奇緣)을 독식해야 했다.
‘일단, 그 빌어먹을 약초꾼의 창고부터 털어야겠지.’
레온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르완 마을 동쪽 외곽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괴팍한 늙은이’라 불리는 약초꾼 ‘밀러’가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평범한 노인네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과거 제국 마법탑에서 도망친 파문 마법사였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3년 뒤 마수 습격 당시 밀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마법을 쓰지 않고 숨어 있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가 숨겨둔 지하 창고에서 ‘마력 개화의 비약’이 발견되었다.
훗날 그 비약을 차지해 마력을 각성하고 명성을 떨친 천재가 바로…… 성기사단장 카이엔이었다.
‘네놈의 가장 거대한 뿌리 중 하나를 내가 잘라내 주마.’
레온은 거침없이 숲을 헤치고 밀러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두막 주변은 조용했다. 노인은 마침 마을 주막으로 술을 마시러 간 시간이었다. 레온은 전생에 카이엔이 작성했던 전공 보고서의 내용을 떠올렸다.
[르완 마을 토벌지 보고서 : 마법사 밀러의 오두막 뒤편, 세 번째 썩은 사과나무 아래에 지하실로 통하는 마법 진이 숨겨져 있었음.]
정확했다. 썩은 사과나무 아래의 흙을 맨손으로 거칠게 파헤치자, 이끼 낀 단단한 돌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판 중앙에는 붉은색 마법 진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일반적인 열 살짜리 꼬맹이라면 건드릴 엄두도 못 낼 침입자 방지용 마법 진. 잘못 건드리면 전류가 흐르거나 신체가 타들어 가는 치명적인 덫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전생에 마왕군을 이끄는 상급 마족들의 결계마저 맨손으로 찢어발기던 성기사단장이었다. 마법의 원리와 흐름을 보는 눈은 여전히 최고 수준이었다.
“하급 마력 회로를 이따위로 꼬아놓다니. 가소롭군.”
레온은 손가락 끝에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는 전생의 투기(鬪氣)의 잔재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마법 진의 핵심 동력원인 우측 상단의 룬 문자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콰직!
마찰음과 함께 푸른 불꽃이 튀며 마법 진이 무력화되었다.
드르륵.
돌판이 열리며 아래로 이어지는 어두운 계단이 나타났다. 레온은 망설임 없이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지하 창고는 생각보다 좁았지만, 사방에 진귀한 약초와 마법 서적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중앙의 목재 테이블 위, 먼지가 뽀얗게 앉은 유리 상자 안에 은은한 보랏빛을 내뿜는 액체가 든 플라스크가 놓여 있었다.
[마력 개화의 비약(★)]
평범한 인간의 육체에 강제로 마력 회로를 뚫어주는, 제국에서도 수천 골드를 호가하는 초고가 령약이었다.
레온이 유리 상자를 열고 플라스크를 쥐려는 순간.
“……어떤 쥐새끼가 늙은이의 집에 발을 들였나 했더니.”
등 뒤의 계단에서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지팡이를 짚은 채, 눈을 번뜩이며 서 있는 노인 밀러가 있었다. 그의 지팡이 끝에는 이미 치명적인 화염 마법의 주문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내 결계를 해제한 걸 보면 평범한 도둑놈은 아닌 것 같군. 정체가 뭐냐? 황실의 사냥개냐? 아니면 마탑의 추격자냐?”
지독한 살기가 지하 창고를 가득 채웠다. 열 살짜리 아이라면 그 기세에 눌려 심장이 터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압박감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플라스크를 손에 쥔 채, 오히려 픗,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황실? 마탑? 영감님, 사람 잘못 보셨어.”
레온이 고개를 까딱이며 밀러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은 방금 전까지 살기를 뿜어내던 마법사 밀러조차 멈칫하게 만들 정도로 오만하고 서늘했다.
“나는 그냥, 당신이 허무하게 죽어서 이 아까운 약이 썩는 걸 막으러 온 평범한 꼬맹이야.”
“뭐…… 라?”
“선택해, 영감님.”
레온이 플라스크를 입가로 가져가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여기서 날 죽이고 마탑에 정체가 탄로 나 개처럼 쫓기다 죽을지. 아니면 나를 제자로 삼아 당신의 복수를 대신해 줄 괴물을 키워낼지.”
열 살짜리 고아 소년의 입에서 나온 파격적인 제안에, 은거하던 마법사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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